서사의 권력

by 이엘

서사의 권력


사람들은 흔히 이야기를 소비한다. 전래동화에서부터 시작해서 애니매이션 고전 소설 그리고 마블 영화들까지 가지 각색의 이야기를 소비한다. 그 이야기를 소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소비되는 이야기에 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최근 들어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범죄자의 서사를 소비하지 말자고 범죄자의 서사란 무엇인가? 범죄자 자신이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이유를 마치 '이야기를 풀어내려가듯이' 써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나는 사회의 피해자이다. 나는 아동학대를 당해 아동학대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정신질환에 걸려 아동 성폭행을 했다 등등등 말이다. 이런 범죄자의 서사에는 의도가 있다. 자신이 한 범죄 행위에 대해 자신에게 면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미 면죄성이 부여된 범죄에 대해서는 일부 사람들이 거리낌이 없이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범죄자의 서사를 만들지 말고 피해자의 서사를 기억하자고 하는 것이다. 범죄에 대해서는 그 원인에 대해서만 차갑게 이해하고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지 범죄의 재생산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자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점점 더 교묘히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범죄자가 이렇게 서사를 만드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피해자와 대중간의 2차 관계에서 권력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이미 범죄자는 피해자와의 1차 관계에서 범죄로써 1차적 우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러한 1차적 우위는 대중간의 관계에서 법원간의 관계에서 불리한 소재가 된다. 그것은 타인을 핍박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한 범죄에 대해 불리한 위치를 가지지 않기 위해 자신이 한 범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렇게 대중들과 법원에 자신의 범죄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자신이 한 범죄에 대한 불이익을 감경한다. 불이익을 감경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을 때 자신의 이름이 더러워지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될 수록 피해자의 권리는 가해자의 서사 권력에 의해 핍박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 2차 가해이다.


서사의 권력은 한쪽이 부각될 수록 한쪽이 사라지게 되는 반비례 관계이다. 나라를 세운 시조가 자신의 건국 설화를 조각하면 그만큼 민중 서사도 사라지게 된다. 신의 서사가 인간의 마음속을 가득 채우게 되면 인간의 서사는 그만큼 사라지게 된다. 그런 불공평한 관계를 해소한 것이 오늘날의 근대이다. 근대는 중심부의 권력을 주변부로 옮긴 것이다. 그렇게 왕 중심이었던 사법을 피고인 중심의 사법으로 바꾸어 놓았고 무죄 추정의 원칙이 확립되었다. 종교 측면에서는 절대신이 죽고 신은 인간을 위한 신이 되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새로운 관계성을 맞이한 우리는 또 새로운 근대를 맞이해야 한다. 사람의 존엄을 파괴한 가해자의 서사 존엄을 파괴당한 피해자의 서사 어느 쪽을 존중해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영화 판의 미로에서는 가해자와 남성 권력을 상징했던 비달 대위의 시계는 버려지고 비달 대위의 죽음은 그의 아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비달 대위의 폭력의 서사를 더이상 후세가 계승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삶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폭력의 계승을 끊은 것이다.


더이상 우리는 가해자의 서사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 가해자의 범죄는 가해자의 책임이다. 가해자 본인의 서사가 기억되지 않는 것은 가해자 본인의 책임이자 업보이다. 우리는 그들의 서사를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폭력의 서사를 끊을 책임과 피해자를 보호할 책임 그 모두를 지고 있다.


인권은 반비례하지 않지만 서사의 권력은 반비례한다. 그것은 시대를 불변하고 진리이기에 우리는 가해자를 잊고 피해자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해자 쪽으로 기울었던 권력의 추를 피해자 쪽으로 옮기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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