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범죄와 정보의 불균형
- n번방 사태와 대중의 분노
n번방 사태가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한 사람은 n번방을 시청한 모든 이들의 신상 공개를 청원했다. 그리고 그게 400만이 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조했다. 나도 거기에 신상공개 동의 청원을 눌러서 그 기분을 잘 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한 것이 생겼다. 사람들은 어째서 디지털 성범죄자들의 신상공개를 원할까?
단순 응보일까? 피해자에 대한 연민 때문일까? 그래 모두 맞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나도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일었고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 공부를 해보면 해볼수록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정보 비대칭
n번방 사태의 본질은 익명성과 원거리성이다. 가해자들은 디지털 상에서 본인의 신상을 가렸기 때문에 마음껏 피해자의 신상을 유포하고 아동 성착취물을 시청할 수 있었다. 또한 피해자와의 물리적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죄책감 없이 피해자를 약취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의 분노했던 지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와 피해자는 가해자를 알지 못하는데 가해자는 우리와 피해자를 알 수 있다는 불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다.
정보의 비대칭성 그것은 디지털 성범죄에 있어서 최대의 쟁점이었다. 이제껏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카메라 등의 기기로 정보 권력의 우위를 가지면서 우리와 피해자를 촬영하는데 우리는 이제껏 무방비로 당해왔던 것이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디지털 성범죄자들을 신상 공개함으로써 정보의 비대칭성을 대칭으로 바꾸는 것을 원했던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디지털 성범죄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디지털 성범죄자들도 앉아서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도 텔레그램을 탈퇴하고 기록을 지우려 시도하는 등 여러 방식을 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는 이것에 많이 분노했다. 자신들이 행한 행동의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을 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정보의 균형 회복 vs 사회적 낙인
내가 분노한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그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들이 신상 공개가 되면 디지털 성범죄자라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새겨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직장에서도 짤리게 되고 학교에서도 질시를 받게 된다. 익명성에서 누렸던 악의 평범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당연한 응보이긴 하지만 범죄자들은 그렇게 생각 안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 딜레마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 해야만 할까? 분명 가해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정보 권력의 불균형을 균형으로 맞추는 것은 필요한 작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상공개가 된 가해자들이 다시 재범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실제로 n번방 문형욱은 잡히기 직전에 피해자들의 영상을 전범위로 뿌리려고 시도했다) 실제로는 여러 상황 때문에 모든 시청자를 공개하기가 힘들다.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필자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 상태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사회와 사법부는 가해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정보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방법과 동시에 사회적 혼란을 잡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과제이다.
추신: 이렇게밖에 결론을 못내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