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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별 Nov 27. 2023

집 9화- 등기권리증을 받았어요.



“엄마, 집을 사야겠어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이냐.

두 딸의 집을 진즉에 사주지 않았던가? 아끼고 모아 대출 한 푼 없이 집을 사주고 이젠 더 이상 집을 살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얼 잘못한 건가? 갑자기 큰 파도가 밀려오듯 아득해졌다. 이만하면 됐다했던 게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마냥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서 쭈욱 근무할 거예요.”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비혼 주의로 혼자 잘 살고 있다며 큰소리치던 딸이었다. 혼자 잘 산다는 건 말이지 경제적으로도 부모 도움 없이 살아야 되는 거 아니냐고. 모아둔 돈이 없는 걸 아는데 집을 사겠다고 통보를 한다. 임용 공부 하느라 고생했다며 발령받은 후 해마다 해외여행을 나갔다.


"종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낼 거예요."

아니 대출을 내겠다고! 인생을 빚 갚으며 살 거냐.

그동안 잦은 근무지 이동으로 집을 여러 번 사고

팔았지만 대출 없이 집을 샀다. 딸들 집도 대출 없이 사고 증여세도 성실히 납부했다.

언젠가 거실 형광등이 고장 났다며 아빠를 불렀다. 남자 소개도 다 거절하던 딸이 괘씸해 혼을 냈다.

“언제까지 부모 의지하며 살 거냐. 스스로 해결해라.”

딸은 알았다며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오기로 집수리 시 필요한 공구 사용강좌를 이수하고 형광등도 혼자 고쳤다고 알렸다. 장난감 같은 공구들도 구비했다.


“하나님, 남 다 있는 사위를 왜 내게는 주지 않으십니까?”

가끔씩 혼자서 넋두리를 한다. 크면서 말썽 한번 부리지 않고 전교 일등도 하던 딸이 이리 속을 썩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애들은 어릴 적 크면서 효도를 다 받는다고 한다. 효도는 바라지 않으니 짝을 만나 내 노년을 가볍게 하소서. 그만 관심 갖지 않고 살게 해 주소서. 진정한 독립을 하게 하소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우선 네이버 부동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고양 일산은 집값이 비싸지 않다. 비싼 강남만 쳐다보지 않으면 살 집은 널려있다. 내 돈에 맞는 집을 찾으면 된다.

그동안 살던 전세금과 종로에 있는 딸 명의의 집을 월세에서 전세로 바꾸어 돈을 맞추기로 했다.

3호선 전철역을 중심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대의 집을 적어 정리해 나갔다.

용산 동부 이촌동 집에서 나중 살 경우를 대비해 경의 중앙선 행신 쪽도 알아봤다. 종로 집을 다니기 좋은 3호선은 화정 백석 마두 정발산 주엽역을 적었다.


일차 인터넷 손품 후 이차로 발품이다. 혼자서 3호선 역을 모두 둘러보았다. 원흥 원당 지축은 이미 몇 번씩 가본 곳이다. 원당은 꽃나무 사러 원흥은 주말농장 하러 다닌 곳이다. 지축은 땅 다지기 전부터 가보았다. 북한산 가면서도 지나간 곳이다. 그땐 허허벌판이었다. 구파발 바로 옆이다. 북한산의 수려한 산세를 배경으로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용산역의 철도 기지창이 지축으로 옮겨 와 있다.

화정역은 당시 살고 있는 곳이다. 대곡역은 환승역이지만 아직은 여기도 허허벌판이다. 대곡역을 지나갈 때면 4호선 오이도 가는 길에 있는 시흥의 신길온천역이 떠오른다. 여기도 허허벌판에 역이 있다. 온천은 있어본 적도 지금도 없다. 뜬금포 역이다. 정발산은 장구 연수하러 여러 번 가본 동네다. 깨끗하고 널찍한 좋은 동네다. 욕심나는 곳이다. 롯데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고 주엽역을 갔다. 내 돈으로 감당이 되는 아파트를 골라 살 수 있는 동네였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광역버스들이 줄지어 사람들을 태우고 오갔다. 사람 사는 동네다웠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동네 느낌이었다. 호수 공원도 가깝다. 각 동네별 단지별 특징을 적어 정리한 후 딸이 원하는 곳을 추렸다.


3차로 정리한 공책을 들고 딸과 함께 차로 둘러보았다. 여성 가족부의 업무를 종종 보러 다니기 때문에 서울 다니기 좋아야 한다며 내 돈에 딱 맞는 주엽역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역세권으로 주차도 불편하다며 배제를 했다. 경의 중앙선 역과 3호선 역들을 모두 둘러본 후 행신역과 화정역으로 범위를 좁혔다.


4차 과정으로 부동산을 통해 집을 보러 다녔다. 행신 동네 집은 빈 집이 꽤 있었다. 돈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많구나. 세를 주면 매매가 번거로우니 아예 집을 비워두고 파는 것이다. 임대차 3 법의 영향으로 임차인들이 집을 보여주지 않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서로 상생하는 관계였고 임대 물건이 많아야 임차인이 집 구하기가 좋다는 생각이었다. 임대차 3 법은 무주택자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서로 대치 상황이 벌어지는 각박한 법이었다. 계약 갱신 청구권도 마찬가지다. 다주택자는 증오의 대상이 아닌 임대 공급자 역할을 한다. 지난 정부는 다주택자를 적페라고 했다. 어느 글에서는 부자들 때문에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았다. 내 몫을 부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거다. 부는 무한하다. 한정된 피자판처럼 조각으로 나눠 가지는 게 아니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부라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며 배우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 부에는 고정된 직업이 없고 화물에는 영원한 주인이 없어 재능이 있는 자에게 재물이 폭주한다고 썼다.


부자들이 낸 세금으로 국가는 운영된다. 우리나라 근로 소득자 중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37%가 넘는다고 한다. 근로 소득이 없는 사람을 합하면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의 비율은 더 높아진다. 우리나라 주택 소유율은 56%라고 한다. 44%의 국민은 다주택자의 집을 세금 없이 이용하고 있다. 반면 유주택자는 집을 살 때 취득세를 내고 보유기간 동안은 재산세로 일 년에 두 번 낸다. 종합부동산세도 있다. 팔 때는 양도세를 낸다. 자녀에게 증여 시 증여세를 내고 죽으면 상속세를 낸다. 죽을 때까지 세금을 내는구나. 이 정도면 이미 집은 공공재라고 부를 만하다.


단지 내 부동산들은 매물을 서로 공유한다. 1층과 탑층은 사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보기만 하라며 데려갔다. 찜통 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이었다. 원당역 부동산을 통해 화정역 단지의 아파트를 계약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부동산 매물이었다. 화정역 부동산에 공유되지 않은 최저가 집이었다. 집주인은 자기 딸이 전교 1등으로 교대 간 초등교사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놈의 전교 1등 나도 했고 내 딸도 했지만 이리 속을 썩이고 썩고 산다. 전국에 전교 일등이 어디 한둘이냐고 아무 소용없다. 공부 잘하는 여자는 이쁜 여자 못 이기고 이쁜 여자는 복 있는 여자 못 이긴다는 말이 있다. 복이란 건 사람 보는 지혜의 안목이 아닐까 한다. 한때 공자에 빠졌었다. 사람 보는 안목을 가지라고 거듭 가르쳤다. 고리타분하게 여긴 공자왈 맹자왈의 견을 깰 수 있었다. 공자의 가르침은 고금을 통해 통용되는 진리와 지혜다.

계약한 집은 등기부 등본에 근저당이 일억 오천정도가 잡혀 있다. 이런 경우 중도금을 넉넉히 주어 잔금 전까지 근저당 해지 말소를 해달라고 계약서에 명시한다. 그러나 내 돈은 정기예금에 묶여 있다. 4.5%의 이자를 포기할 수 없다. 만기를 기다려야 한다. 중도금을 적게 줄 수밖에 없다. 대신 잔금일에 매도자 매수자 법무사 함께 은행에 가 직접 처리하기로 했다. 잔금일 며칠 전에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통상 등기부상 근저당 설정 금액은 실제 금액보다 10% 정도 높게 책정된다. 은행상환용 금액은 수표 한 장으로 따로 준비하고 나머지 금액은 당일 계좌이체했다. 셀프 등기를 하려고 했으나 은행 근저당 해지 말소를 당일에 처리하고 법원 소유권 이전 등기 접수를 해야 한다. 법무사를 쓰고 법무사 비용은 집값에서 조금 할인받았다. 무사히 잔금을 치르고 서로 건강하시고 부자 되시라며 덕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등기권리증을 받았어요. 사진 찍어 보내요."

일주일도 안되어 등기권리증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지금은 리모델링 중이다. 깔끔쟁이 딸은 큰돈을 들여 대대적인 공사를 한다. 우린 이사 갈 적마다. 리모델링을 한 적이 없다. 가능하면 리모델링을 할 필요가 없는 집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굳이 하지 않았다. 도배장판은 새로 했다. 저게 돈 무서운 줄 몰라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래 여유 부리며 사는 게 낫지. 그러라고 부모가 고생하며 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맞벌이하지 않고 주부로 아이들을 키웠다면 지금 보다 더 성공했겠지 위안 삼는다. 일하는 엄마는 죄책감이 평생 간다.

집을 보러 다니면서 하나 안 사실이다. 빨리 팔아야 되는 집은 계약일로부터 잔금까지의 기간을 짧게 잡고 값을 치르는 집이다. 소유권 이전을 단기간에 하는 거다. 쉽게 말해 급매다. 일시적 2 주택자로 양도세 혜택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대출금의 이자가 벅찬 상태다. 빈 집도 이에 속하는 경우가 있다. 집값을 싸게 조정할 수 있다.

이사 날 딸이 좋아하는 찰밥과 간장 게장 그리고 파김치를 가져가야겠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부모의 재산은 시너지이지 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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