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이는 별 Nov 27. 2023

집 10화 -경제 불황기와 집

IMF

     

어느 날 교무실에서 교감 선생님이 학교 가까이에 저축 은행이 생겼다며 이자를 높게 주는 곳이나 한번 가보라고 하셨다. 깔끔한 인테리어로 보기는 좋았지만 휑했다. 그냥 돌아왔다. 교감 선생님은 훤칠한 호남형 미남이셨다. 큰 눈을 껌벅이며 말할 때는 순수한 인상을 주었다. 


 “ 내가 결혼을 했는데 총각인줄 알고 부자집 딸이 좋아했어요.”

집까지 초대 받아 갔으나 이렇게 만나는건 안되는 일이라 결혼했노라 실토했더니 부자집 딸은 서럽게 울더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감 선생님은 

 “그 저축 은행이 문 닫았어. 거기에 돈을 넣었는데 야단 났네” 

IMF가 터졌다.


동학년 선생님이 또 다른 저축 은행의 파산을 알려 주었다. 당시 은행의 이자율은 20%가 넘었다. 안전하게 1금융권만 이용하다 높은 이자에 혹해 저축 은행에 돈을 맡겼다. 나도 야단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은행의 파산 소식이 뉴스에 나기 시작했다. 돈을 찾으러 갔다. 사람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루며 아수라장이었다. 은행 직원은 아무 일 없다며 기다리라고 했으나 사람들은 믿지 않고 은행 앞에서 장사진을 친채 초조하게 기다렸다. 번호표를 받아 온 종일 기다려 이자 없이 원금만 겨우 받았다. 

그 이후로 저축은행은 이용하지 않는다. 


호황기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IMF 직전은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회사는 호실적으로 취업문이 넓었고 사업은 번창해 확장일로였고 그야 말로 태평성대였다. 거품 경제의 호황기에 취해 복병을 알아채지 못했다. IMF는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가면을 쓰고 있다가 들이 닥쳤다.

속에선 이미 곪고 있었을 것이다. 예측 가능한 재난은 재난이 아니다. 대비 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재난이 무섭다. 

 은행이 파산하고 회사가 부도나고 장사는 폐업했다. 

동학년 선생님은 남편이 회사에 나가 일은 하나 월급이 안 나온다고 했다. 절친 선생님은 남편의 회사가 부도나 직장을 잃었다며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 막막해 엎드려 울기만 한다고 했다. 마음도 언행도 사랑스러운 미모의 선생님이다. 딸을 내가 담임했다.      

천정 부지로 오르던 집 값은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국 반토막이 났다. 부모는 집을 팔아 자식과 합가했다. 우리나라 특성상 대부분 집 한 채가 전부다. 실직한 가정은 먹고 살려면 마지막 보루인 집을 팔아야 했다. 

오락실에 갔더니 회사 간다던 아빠가 거기 있었고 공원 벤치에 넥타이를 맨 실직 가장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실직자가 넘쳐났다. 안정적 직업이나 박봉의 대명사인 교사와 공무원이 급 부상했다. 일 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게 감사하다며 서로 위로했다. 열심내 가르치자고 힘을 내자고 다독였다.  

   

재난 시에도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외환위기때 널뛰는 달러를 이용해 반토막 난 집을 세채나 샀다. 환율의 변화를 알기위해 세계 경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예측하기 위한 공부를 머리가 터지게 했다고 한다. 지금은 월세를 받아 유유자적 여행다니며 살고 있다. 누군가에겐 위기가 기회가 될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 3의 마지막 부분인 화식 열전이 있다. 사마천의 경제학 서로 부의 속성과 남다른 안목과 재능으로 성공한 거부들의 이야기를 썼다. 농자천하지대본이던 당시 농업보다 상업을 제일로 쳤다. 다음은 공업이었다. 오백년의 춘추 전국시대를 지나며 나라가 망해 다른 나라로 강제 이주가 빈번했다. 그 와중에도 부를 보는 안목이 있는 자는 얻기 힘든 옥토 농토를 받기 보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산을 얻어 목축업과 광산업 임업을 해 거부가 된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에 누구에겐 앉아서 당하는 재난이지만 누구에겐 부자가 되는 기회로 삼는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사람도 있을 때 잘하라는 말처럼 돈도 한푼이라도 벌 때 모아 종자돈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만기 적금을 받으면 끄트머리 이자 잔돈을 채워 목돈 그대로 예금으로 전환했다.  종자 돈이 있어야 주식을 사든 대출을 내 집을 사든 장사를 할 수 있다. 9,900원도 100원을 더하면 만원이 된다. 푼돈 우습게 알지 말자. 돈이 없으면 아이디어를 내는것도 방법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춘추 전국시대에도 아이디어로 틈새 시장을 공략해 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남이 팔면 사고 남이 사면 판다고 했다. 주나라 백규는 남들이 버리면 나는 취하고 남들이 취하면 나는 주었다.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 부의 표본이 되는 사람이었다. 부를 논할때 백규가 회자되었다. 왕도 제후도 거만금의 부자를 우대했다. 화식 열전은 지혜서다. 재미도 있다.   

   

뛰어난 재능이 없으면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요즘 뜨는 뷰 맛집 카페는 음식 맛집 못지 않는 인기를 누린다. 

서촌 이웃 골목 안의 작은 집이 팔렸다. 저런 집을 누가 사나 했다. 보는 눈이 남다른 이가 그 집을 사 새로 지었다. 서울시의 보조금을 받아 거저 짓다싶이 한 집이 화려하고 아담한 한옥으로 변신해 공방 전시 및 판매를 한다.  담아래 길게 심어진 안개꽃은 화사함을 더해준다. 골목 안이지만 맞은 편 출입구로 도예 공방 손님들이 드나드는 점을 본 것이다. 나는 아직도 보는 눈이 없구나. 그저 보기에 좋은것만 봤구나. 눈으로 보기엔 보잘 것 없지만 변화시키면 어떤 모습이 될지를 보지 못한다. 어떤 모습으로 변화 시켜야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경기도 광주의 화담숲은 단풍 명소다. 악산을 변화 시켜 명산으로 만들었다.     


어릴적부터 대통령이 꿈이던 김영삼 대통령은 뜻밖의 재난을 다음 정부에 물려주고 떠났다. 

반토막 나던 집은 서서히 오르더니 단숨에 두배로 올라섰다. 지난 정부에선 세배로 폭등하고 땅을 사둔 사람들은 몇십배의 이익을 얻었다. 세상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자장면 값이 오르듯 하락과 상승을 거듭 하는 동안 집값은 결국 올라 갔다. 세상에 영원한것은 없다. 흐르는 냇물처럼 세월이 가듯이 생사화복도 그렇게 흘러간다.

어릴적 살던 초가집 처마 밑에 해마다 봄이 되면 먼 길 갔다 돌아온 제비들이 지난해 살던 집을 손봐 다시 살거나 새로 집을 지어 살았다. 세상이 어찌 되든 나는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한다. 내가 머리 누일 집 생활 할 수 있는 집은 있어야 한다.


이전 08화 집 8화 -티끌 모아 초석을 다졌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