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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별 Nov 27. 2023

집 11화-화담 숲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


딸이 휴직을 했다. 내가 근무할적 그토록 하고 싶던 휴직을 과감히 단행한게 가상했다.


그래 저마다의 인생은 저마다 만들어가지. 덤불길도 꽃길로 만드는건 스스로의 판단 여하에 달렸다.


제주도에 초청 강연이 있어 간 김에 며칠 더 머물다 올거라고 했다. 한달 살기를 권유했으나 키우는 고양이 때문에 한 달은 무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저 혼자서 방학때면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지 부모와 여행 간지는 십년도 넘었지 싶다. 


우리 둘이서 화담숲과 여주 신륵사 강가를 가보자꾸나. 주말이면 목욕탕 가듯 자주 가던 설봉 온천에 가고 싶으나 코로나 조심을 해야한다. 밥은 이천에서 먹어야지. 잠은 여주 남한강이 보이는 곳에서 자기로 했다. 부모가 운전하는 차로 여기저기 다니고 등하교를 같이하다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여행을 간다. 나를 배려해서인지 안전 운행을 했다. 


먼저 광주 화담숲을 갔다. 모노레일을 타고 산을 올라갔다. 이건 악산이었구나. 신이 떨어뜨린 산자락 하나를 화담숲의 주인은 놀이터로 만들었다. 도로도 낼 수 없는 악산을 유원지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농부의 딸인 나는 땅은 곧 농토다. 이 땅은 한 뼘도 작물을 가꿀 수 없는 바위산이기도 하다. 화전도 일굴 수 없다. 골짜기마다 바윗돌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은 크고 작은 폭포가 되었다. 시성 이백이 노래하던 여산의 삼천척 폭포는 아니지만 작은 폭포는 연못을 이루고 그 연못 속에 은하수 대신 하늘의 흰구름이 내려와 있다. 밤엔 은하수가 내려올지도 모른다. 나무 데크로 산책로를 만들어 유모차도 쉽게 다닐 수 있다. 악산을 가꿔 힐링을 파는 돈 산으로 만들었다. 남다른 발상에 경탄이 절로다.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주를 이루었다. 산 아래 한켠에 이끼류 단지가 있었다. 반가웠다. 초등 자연 교과서에 이끼류를 가르칠때 퍽 재미있던게 떠올랐다. 식물같지도 않아 주목받지 못하지만 포자번식이나 살아가는 방식은 여느 나무 못지않게 위대하다 할 정도다. 학교에 이런 이끼류 실습지가 있으면 좋겠다. 동학년 남자 선생님이 주말마다 이끼류를 종류별로 채집해와 돌려가며 학습자료로 활용했다. 플라나리아도 산골짜기 맑은 도랑물에 돼지고기 덩어리를 놓아 공들여 유인해 잡아왔다. 바로 거머리다.  거머리라는 이름에 맞게 몸이 잘려도 웬만해선 죽지않는다.


터넷에 화담숲은 온통 붉은 단풍으로 물들인 모습이나 9월인 지금 아직은 녹음이다. 단풍은 눈을 즐겁게 하고 녹음은 마음을 푸르게 한다. 녹음 쉼터에 누워 있으니 시간도 금방 흘러간다. 좋은 곳에 있으면 시간은 금방가게 마련이다. 시간은 마음 상태에 따라 속도를 달리한다. 


 


직장 동료중 부동산 중개인의 권유로 가보지도 않은채 충청도에 있는 산을 샀다. 몇 년 후 가보니 울창한 산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그야말로 바라보기만 해야되는 산이더란다. 아직도 소유중이라기에 밤나무나 호두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식재 비용이 만만치 않아 엄두를 못 낸채 방치상태라고 했다. 언제 한번 우리 모임 다같이 가보자고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가본들 화담숲의 주인같은 안목이 나오려나 의문이다. 다른 동료는 강화도의 해안가 땅을 같이 사자고 한 적이 있다. 남편이 미리 방어막을 쳤다. 


“우리 동료 한 사람이 강화 바닷가에 땅을 샀어. 아, 그런데 그 땅이 밀물때면 바닷물에 잠기는 땅이었지 뭐야. 팔지도 못해요.”


용산역 근처 철도기지창 부지를 국제 업무 단지로 조성한다. 이 철도기지창을 마주하고 있는 곳에 조그만 집을 사두었다. 이 집을 갈 때면 남편은 매번 말했다.

“저거 땅이 낮아서 집 짓기 힘들어.”

“아니 서울의 한복판에 무슨 초가집 짓나. 빌딩 세울건데. 지하로 한참을 파내려가야 한다고요.”

널리 알려진 서울의 금싸라기 땅도 어떻게 변할지 보는 눈이 없어 그 가치를 가늠 못한다.

남편은 늘 하는 말이 있다.

“돈이 있어야지.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지.”

소 키우던 집에서 자란 사람이다. 밥은 배부르게 먹고 살았다지만 흙수저보다 못한 밑 빠진 독을 가져온 남자다. 

돈이 없으니 돈을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하고 비빌 언덕은 내가 만들겠다며 아파트 팔아 월세 살고 상가 지을 땅을 사자고 했다. 남편은 올라가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 말라며 싹을 잘랐다. 못 올라가면 실컷 쳐다라도 봐야지. 요즘은 사다리도 좋은거 많다. 했지만 직장생활하랴 아이들 키우랴 경우없는 시댁에 시달리랴 맘뿐 여력이 나지 않았다. 사고 싶었던 땅은 지금 치과 이비인후과등 병원 건물이 되어있다. 건물주가 되진 못했으나 아이들에게 등을 비빌 언덕 하나씩은 마련해주었다. 우공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보는 눈이 있었지만 산이 없는 들판이나 마을로 이사를 가던지 집 앞 산 이용할 방법을 강구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길은 무수히 많다. 그것도 넓고 무한하다. 초승달도 상현달도 달은 둥근 위성이라는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밤하늘에 보이지 않는다고 별이 없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유대 민족이 노예 시절 이집트를 탈출해 본향을 찾아가는 중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탐꾼들을 보냈을 때 모두 두려워 떨며 안된다고 했다. 여호수아만이 해낼 수 있다고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다. 


화담숲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 길들을 꿈의 눈으로 보고 설계하고 이루었다. 

산속은 해가 빨리 진다. 오래 있고 싶으나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와 이천 밥집에 갔다. 애들 어릴 때 살던 이천은 내게도 작은 고향이다. 큰딸은 좋은 기억만 있는 곳이라고 한다. 


신륵사가 있는 여주 강가의 숙소로 갔다. 침대에 누워서도 남한강이 보이고 멀리 서너겹의 산 능선이 보인다. 능선 너머로 아침 해가 떠올랐다. 은 동전 마냥 몽글몽글 흰 쌀밥 고봉 그릇 마냥, 작고 둥근 해가 둥실둥실 올라오며 불덩이가 되었다. 더는 눈부셔 볼 수 없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아침 강가로 나갔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 한 대가 달려가고 젊은 부부가 나란히 걸어간다. 산천도 사람이 있어야 완성형이다. 가평 청평보다 여주는 한적한 시골마냥 고즈넉하다. 여주 강가에 모래톱이 제법 있었고 모래들이 밀가루처럼 부드러웠다. 그 모래들을 갖고 놀던 애들 모습이 떠올랐다. 오리배는 저쪽 강가에 멈춰있다. 오리배를 그렸던 둘째 딸아이의 그림이 생각났다. 둘째는 그림을 잘 그렸다. 마침 문자가 와 있었다.


“시민권 선서를 마쳤어요.”


신륵사 마당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숲속도 강가도 평안을 주었다.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또 말씀 하세요. 같이 가요”


내가 젊을 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이젠 애들이 나를 데리고 다닌다. 혼자 사는 이 딸은 이담에 누가 데리고 다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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