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부모에게 ㅡ이글을 꼭 쓰고 싶었어요..

by 반짝이는 별

깎아놓은 밤톨마냥 동그란 얼굴에 이목구비가 반듯하다. 어쩜 저리 딱 있을 자리에 정확히 눈코입이 들어섰는지 크면 장동건이 저리 가라 할 얼굴이다. 밤톨이 생각하면 벌써 부터 목이 메인다. 떠오를 때마다 맘이 아프다. 밤톨이는 실어증 비슷한 상태였다. 돌처럼 굳은 얼굴이다. 빈 가방을 들고 와 하루 종일 아무와도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무표정으로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있다.

“준아, 졸리면 보건실에 가서 누워 있다 와. 짝궁이랑 가주라고 할까?”

절대 보건실도 가지 않는다. 화장실 갈 때 외엔 움직이지 않는다. 짝궁이 말해주었다.

“선생님, 준이 아빠가요. 책 공책 필통을 불태웠어요. 엄마 닮았다고 때려요.”

도시 변두리 학교였다. 동네 가까이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단독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저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동네다. 빌라 사는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준이 엄마는 집을 나갔다. 젊은 군인을 따라갔다. 이 어린 아이를 버리고 떠났다. 1학년이다. 아이는 세상을 잃었다. 집도 아빠도 흔들리는 부초다. 마음 둘 데가 없다. 허공에 떠 있다.

새 공책과 내가 쓰던 교과서를 주었다. 다음 날 빈 가방이었다. 두 번째 줄 땐 가방 속에 넣지 않고 책상 속에 두었다. 울지도 웃지도 않는다.

‘준아, 넌 귀한 사람이란다. 준아, 일어나.’

어찌해보지 못한 채 학년이 바뀌고 그 학교를 떠나왔다. 평생 가슴에 못이 되어 박혔다.


이번 학교는 학군 좋다고 소문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민이는 운동을 잘했다. 성격도 밝고 합리적이다. 중재도 지혜롭게 잘했다. 체육 시간에 인기 폭발이었다. 서로 자기 편에 오라며 쟁탈전이 벌어졌다. 급식 배식 당번이 아닌데도 매일 솔선해 나섰다. 싫어하는 반찬을 가져가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먹어야 한다며 골고루 배식했다. 아이들은 민이가 주는거면 군말없이 받아갔다. 배식은 민이었고 급식 뒤처리를 솔선해 나서는 아이가 또 있었다. 매일 잔반을 정리하고 수저 젓가락통까지 가지런히 모아 급식차를 밀고 급식용 승강기 앞까지 운반했다. 5학년이었다. 이런 아이들은 어디서나 인정을 받는 빛나는 사람으로 살고 있을거다. 민이는 생기기도 훈훈했다. 바르다. 공부도 잘한다.

“넌 참 매력적이구나. 보물 같구나.”

나도 모르게 칭찬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어느 때인지 모르게 조금씩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놀이도 별 생각이 없다. 먼저 친구들이 왜 같이 놀지않느냐며 실망한다. 급식 배식도 손을 놓았다. 급기야 공부 시간에도 의자에 앉아 있질 못한다. 혼자서 교실 여기저기를 배회한다. 의자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시험 날이었다.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 집중을 못한다. 가슴이 터졌다. 네가 이렇게도 변하는구나. 방과 후엔 자전거를 타고 어두워질 때까지 동네를 달리고 또 달렸다. 나도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 마트 갈 때도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민이를 여러 번 봤다.

당시 반 아이들에게 매일 일기를 쓰게 했다. 다른 숙제는 없다. 민이는 다행히 일기는 썼다. 매일 일기를 쓰게하니 매일 확인 도장을 찍어 주었다. 자세히 읽진 못한다. 하교 전에 일기장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 한눈에 쓱 볼뿐이다.

어느날 어머니가 오셨다. 인형처럼 곱고 단아하다. 이름만 대면 아는 서울의 국책은행에 다녔다. 아이 아빠와 이혼으로 직장을 그만 둘 수 없다고 했다.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하는지 부탁 드릴겸 사정을 알렸다. 이렇게 예쁜 아내를 두고 이렇게 예쁘고 똑똑한 아이를 두고 어찌 한눈을 팔수 있는지. 민이를 생각하면 분이 났다. 내가 본 일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제가 생일이었고 아빠가 선물을 사다 주었다. 내년 생일에도 선물을 받고 싶다고 썼다. 어머니는 말했다.

“아이의 희망사항이에요. 아이 아빠는 아이를 찾지 않아요.”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 중 이 이야기들을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 작가 신청 후 이틀째에 내 브런치 화면이 바뀌어 있었다. 가슴에 담아두고 잊지 않으려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인생에 봄날이 왔다고요? 뒤를 돌아다 봐 주세요. 당신의 아이가 아빠를, 엄마를 잃고 헤매고 있어요. 당신을 찾고 있어요. 아이는 혹한 속에 있어요. 암흑 속에 있어요.


힘없는 아이에게서 아빠를 엄마를 뺏어 간 평생 강도들에게도 인생에 봄날이 왔다고요? 한번뿐인 인생 이 봄날을 놓칠 수 없다고요? 구만리 같이 창창한 아이들의 앞날도 한번뿐인 인생이랍니다. 이 상처를 받은 아이가 스스로 제 자리를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방황과 고통을 이겨내야 할지 모릅니다. 당신이 누리는 그 봄날은 아이가 희생한 혹한의 값 고통의 값이랍니다.


이 학교는 한 달에 한번씩 한복을 입는 날이 있다. 뒷자리에 앉은 아이는 평소에도 멋있지만 한복을 입은 모습은 귀공자다. 어린 왕의 모습이다. 자기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불만을 토로했다.

“선생님, 쟤가요. 자꾸 쳐다봐요.”

다른 아이의 시선이 싫다. 딱히 혼내 달라는것도 아니다. 불편할 뿐이다.

“엄마도 나를 버릴거에요. 아빠가 먼저 나를 버렸거든요. 그땐 저 혼자 남아요.”

아이도 활기를 잃었다. 의욕이 없다.


아이들은 가끔씩 부모가 싸운 이야기를 한다.

“부모님은 곧 이혼할거에요. 이번엔 진짜래요.”

“아니야. 안해. 나도 남편과 싸울 땐 이혼하자고 하지만 아직까지 이혼 안하고 살고 있거든.”


퇴근할 무렵 전화가 왔다.

“아이 엄마가 소식이 끊겼어요. 혹시 아이가 걱정되어 선생님께 연락이 올 수도 있을지 몰라요. 제게 알려 주세요.”

아빠 생각이다. 예쁜 아들이 둘이다.

“엄마가 돌아온다면 받아 줄거에요. 아이들을 생각해서요.”

아이는 의자에 앉질 못한다. 몸을 가누지 못한다. 축 늘어져 쓰러져 있다. 아이도 맘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어른보다 더 아프다. 병원에 실려 갔다. 그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독하다.


“선생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고 해 전화했어요.”

다른 학교로 전근 간 첫날이었다. 담임이 바뀌자 또 아프다. 이것도 이별이다. 아픈 이별이다. 퇴근 후 병원에 들렸으나 이미 퇴원했다.


가슴 아픈 아이들 이야기를 쓰자면 몇날 며칠을 써야 한다. 호곡장에 가서 실컷 울어도 소용없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 예쁜 아이들에게 이 아픈 상처를 주고도 인생에 봄날이 찾아 왔다고요?


어느 날 어머니가 교실로 찾아왔다. 아들 둘을 키우시는 어머니다. 교양이 넘치는 반듯한 어머니다. 학교 생활은 어떤지 보살피러 오셨다. 시어머니가 아들을 부추겨 며느리와 헤어지게 했다. 아들의 외도에 날개를 달아주는 어머니가 있다니. 얼른 열심히 벌어 방 한칸이라도 구해 자립하게 되면 아들 둘과 함께 살겠다고 했다. 그날만 기다린다고 했다. 하염없이 우셨다. 아이들을 자주 만나려 애쓰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흔들리다가도 시간이 어느정도 지난후라 어머니의 노력에 잘 버티고 있었다.


목욕탕 신발을 신은 아버지가 찾아왔다. 특수반에 다니는 우리반 소속 자폐아 아버지다. 호는 걷는게 너무 힘든 아이였다. 한쪽 발을 끌며 자기 신발주머니를 두려고 4층 까지 힘겹게 올라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문옆 자기 자리에 잠깐 있다가 특수반 1층으로 또 힘겹게 내려간다. 휘청휘청 곧 넘어질 듯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났다. 사람들을 많이 경계해 친구들이 다가가지 못했다.

“막 낳아놓고 엄마가 나갔어요. 간난아기때라 어디가 아픈지도 몰랐어요. 일을 해야 해서 같이 있어주기 어려워요.”

아이는 학교 다녀오면 혼자 집을 지킨다. 저 아이를 어쩌면 좋나요?


인생에 봄날이 왔다며 한번뿐인 인생이라며 떠나간 어머니, 아버지, 뒤돌아 보아 주세요.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요.


애들아. 너희들은 근본 좋은 아이였단다. 너희들은 잘못한게 없어.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자. 부자로 성공한 사람으로 좋은 친구도 만나고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야할 권리가 있단다.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어려서 주지 못한 축복을 살면서 넘치도록 주실거야. 사람에겐 축복 총량의 법칙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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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잘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