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는 멱살이 잡힌 채로 나를 가만 바라볼 뿐이었다. 들개는 언제든 자기를 죽여도 좋다는 듯한 태도로 한쪽 구석에 엎드려 있었다. 그런 들개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들개도 나도 눈을 피하지 않고 한참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들개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 <임선우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 - 알래스카는 아니지만' 중에서>
며칠 전 읽은 단편소설에, 한 달 전 킬러가 되기로 결심한 백수에게 들개가 멱살을 잡혔다. 멱살 잡힌 들개를 상상한다. 이런 게 재기 발랄함인가?
킬러가 되기로 결심한 백수, 멱살 잡힌 들개, 나는 이런 식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얼토당토않은 구성이 꽤 마음에 든다.
엄마가 종종 이야기하는 '무슨 개똥 같은 소릴 하고 앉아 있어'의 그 개똥 같은 소리에 나는 늘 마음이 동한다. 뜬구름 잡는 허무맹랑함, 그 비현실성은 엄마와 나를 가로지르는 철조망이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것을 중시하는 엄마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꽉 닫힌 결말을 좋아하고, 평생을 덕질에 빠져본 적이 없으며, 철학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뜬구름 잡는 소리는 질색하는 사람.
남과 다르게 튀는 것보다는 타인과 무난하게 조화를 이뤄야 하고, 개성 넘치는 유명인들은 평범한 우리네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 대한민국 베이비부머 세대의 보편적인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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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가지 카테고리로 엄마를 이해한다는 것이 다소 편협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나무위키가 풀어놓은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MBTI의 정확성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위의 나열된 것들은 ESTJ와 멀 수 있는 키워드인데, INTP와 INFP 사이를 오가는 나에게는 너무나 친숙하고 사랑해 가까이 두고 싶은 것들의 모음집에 가깝다.
개인의 선호도를 나타내는 MBTI 검사는, 딸과 엄마가 각자 선호하는 것이 거의 양 극단에 가깝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모녀간의 성격은 서로 비슷한 것이 좋은 것일까? 상반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적당히 버무려져 있는 것이 좋은 것일까?
어쩌자고 우리는 이렇게 다르게 생겨먹은 것일까?
이것이 비극의 시작인 걸까?
아니, 어쩌면 이것은 간단한 과학의 원리인지도 모르겠다, 제 아무리 부러뜨려도 N극과 S극을 분리할 수 없고, 두 개의 서로 다른 극끼리 끌어당기는 자석처럼,
엄마와 나는 그렇게 서로를 끌어당기는 때려야 땔 수가 없는 사이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