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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bae Sep 07. 2024

대화건 독백이건 아무렴



"아니 글쎄, 뼈 마디마디가 쑤시는 거 있지, 게다가 기운이 하나도 없고 입맛이 뚝 떨어지더라고! 목도 좀 따끔거리고, 그래도 아침마다 산책은 꼬박꼬박 나갔어, 내가 원래 아침저녁으로 두 번 가잖아? 근데 컨디션이 안 좋길래 저녁산책은 안 나갔지, 근데  어제는 몸보신한다고 아줌마들하고 능이백숙 먹으러 갔잖아 근데... "




7분-

고작 7분 만에 나의 인내심은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



눈 뜨자마자 켜는 91.9 FM 라디오 소리, 사무실에 모여있는  사람들 소리, 유튜버 소리, 광고 소리, 헛소리. 하루종일 누군가의 말소리에 묻혀 사는 기분.



나는 무차별적 독백이 아닌 제대로 된 대화가 하고 싶었다. 숨 쉬가볍게 오가는 휴식 같은 말



아니, 어쩌면 무겁고 찐득찐득하면서도 깃털처럼 가벼워질 수 있는, 성난사람들(비프) 10화에서 스티븐영과 앨리웡이 주고받은 그런 식의 대화 말이다.



하지만 엄마와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뱉은 말이라고는 "아~ 아~ 아~"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지금은 상태가 어떤데?" 



빈약하기 짝이 없는 대꾸. 엄마는 개의치 않고 지난 3일간의 행적, 몸 상태의 변화에 대해 소상히도 털어놨다. 서로 간의 주고받음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어지는



나는 그것 대화라기보단 독백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코로나에 걸려 고생하는 엄마의 푸념을 다정하게 들어주는 딸내미?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고작 전화통화 7분 만에 한계치를 운운하는지 싶지만



심보가 고약한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냥 그렇게 치부하기로 했다.



며칠뒤, 엄마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6통이나 찍혀 있었다. 순간 멈칫했다-



(매일 얼굴 보고 같이 살 땐 몰랐는데)


급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


"엄마!! 무슨 일 있어??????"



(간혹 엄마가 남긴 여러 통의 부재중 통화 기록 발견할 때면 덜컥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젠장- 

나는 고약한 심보에 걱정과 불안도 높은 사람이다.



엄마는 티비 홈쇼핑을 보다 탐나는 반찬통 세트를 발견하고는 주문을 하고 싶은데, 화면에 나온 큐알코드 접속 방법을 몰라, 그리도 애타게 나를 찾았 했다. 



휴-



그리고는 다음번엔 타임세일 끝나기 전에, 전화 좀 받으라며 잔소리를 해댔다. 엄마와 나 사이, 무겁고 찐득찐득하면서도 깃털처럼 가벼워질 수 있는 그런 식의 대화는 앞으로도 오고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심보를 고쳐 보기로 했다. 대화건 독백이건 티비 홈쇼핑 주문대행이건 아무렴 어때. 두 팔 벌려 환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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