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조용히 책 한 권을 건넸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스웨덴의 대기업에서 최연소 임원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 갑작스레 퇴사를 결심하고, 파란 눈의 숲속 스님으로 17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속세로 돌아와 명상과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와 희망을 전했으며 2022년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너는 아직 부족해,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아, 끊임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소음들을 잠재우고, 그것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면의 목소리.. 내면의 목소리.. 나의 내면에서는 11년째 늘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
"엄마는 내가 비구니가 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응? 스님이 된다고? 에이 뭐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당장 머리 빡빡 밀어서 방에 가둬야지"
".. 나 독립했는데, 그럼 어느 집에 가둘 거야?"
엄마에게 절연을 권유받았다. 물론 비구니가 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은 아니다. 속세에 미련이 뚝뚝 흘러넘치는 나는 비구니가 될만한 위인이 아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는, 나는 네가 비구니가 된다면 오히려 찬성이야. 라며 반기를 들고 나섰다.
퇴사의사를 밝혔다. 11년 했으면 많이 했다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앞으로 다가올 20여 년의 시간이 어떨지 뻔히 보인다고, 나는 그 시간의 내가 너무 불쌍하다고, 네네네네 하는 인간으로 밥만 먹여주시면 감사합니다.라는 자세로 살고 싶지 않다고,
아니, 사실은 나도 그렇게 살기를 바랐고 거기서 충분히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런 사람이 아닌 거 같다고, 엄마가 바라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거 같다고. 더 이상 상사가 싫어서도, 민원인이 괴롭혀서도, 일도 시스템도 문제가 아니라고, 내가 문제라고, 내 모습이 아닌 채로 살아야 하는, 앞으로 다가올 그 시간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너무 괴롭다고.
두서없이 털어놨고 그 와중에 몇 번이고 엄마는 내 말 들어봐! 라며 말을 막아섰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뻘뻘 나는 날씨에 가뜩이나 불쾌지수가 치솟는 마당에, 내가 던져놓은 작은 불씨는 엄마의 마음을 활활 불태웠다. 이런 종류의 발언은 밥상머리에서 하기에 꽤 부적합했다. 꾸역꾸역 밥을 욱여넣느라 목이 메었다.
엄마는 나의 대학 입시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 살 터울인 언니에게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린 걸까? 재수는 절대 안 된다.라는 것이 엄마의 입시 가이드라면 가이드였다. 대학 졸업 후 3,4번의 퇴사를 반복했지만 엄마는 그 어느 때도 강경한 반대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다. 대학도, 회사도, 관심을 기울일 만한 곳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자 애썼던 적이 없다. 오락실에 가고 피아노를 치고 영화를 보고 만화책을 읽고, 근무시간을 줄이고 급여를 반토막 냈다. 엄마가 바라는 근면성실하게 돈을 중시하는 삶과는 멀어져 갔다. 공무원이 아니었더라면 딸내미의 퇴사계획은 엄마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노여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공무원 연금을 받는 퇴직한 남편, 공무원이 된 두 딸, 공무원인 첫째 사위는 엄마의 든든한 보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공무원이 되었을 때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기뻐했다. 딸 둘이 모두 공무원이 되었다며 어깨뽕을 한껏 추켜올렸다. 그 어깨뽕에서 나는 이제 그만 퇴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감히-
"퇴사하기만 해 봐, 그러면 난 이제 너 안 봐, 딸 하나 없는 셈 치지 뭐, 부모자식연 끊는 거야"
'늘 그렇듯 부모님은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라는 어느 유명인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나중에 성공하면 꼭 저렇게 말해야지, 나는 오늘도 야심 찬 계획을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