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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bae Dec 04. 2024

오늘도, 안녕



아직 동이 트기 전 사위가 어둡다. 할머니가 거리에서 빗질을 시작하고, 그 소리에 맞춰 '히라야마'가 조용히 깨어난다. 이불을 개고 길고 좁다란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간다. 양치를 하고, 턱은 전기면도기를 코밑수염은 미용가위로 섬세하게 다듬는다.



십여 개의 작은 식물들이 각자의 화분에(작은 유리컵) 오밀조밀 담겨 있다. 연신 분무기를 뿌려 작은 잎사귀에 물을 적신다. 외출 직전 문 앞 선반에서 필수 준비물을 챙긴다. 휴대폰, 지갑, 수동 카메라, 열쇠, 동전 몇 개



현관문을 열고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마치 처음 마주한 것처럼, '오늘도, 안녕'



자판기에서 보스 캔커피를 집어 들고 파란색 다마스에 오른다.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올드팝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Feeling Good, Perfect Day ..



그의 일터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화장실이다. 허투루 요령 피우는 것 하나 없이 청소를 하고, 어느 사원 울창한 나무를 바라보며 필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는다.



퇴근 후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에 가고, 지하철역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한 술집에서 목을 축이고, 잠들기 전까지 머리맡에 놓인 작은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다 잠이 든다. 그리고 꿈..



다음날 아직 동이 트기 전 사위가 어두운 시각, 할머니가 거리에서 빗질을 시작하고, '히라야마'가 조용히 눈을 뜬다. 한결같이 똑같은 그의 루틴이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이어진다.



그렇게 4일이 지나고. 평소보다 조금 늦게 눈을 뜬 오늘은 휴무. 손목에 시계를 찬다. 자전거를 타고 코인 빨래방을 가고, 필름을 맡기고 현상한 것을 찾고, 헌책방에 들러 책을 고르고, 또 다른 단골 술집에 들른다.



현상한 사진들의 폐기를 구분 짓고 가지런히 쌓여있는 보관함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그렇게 그의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청소, 테이프 감기, 낮잠 자기처럼, 그의 잔잔한 일상이 12일 동안 펼쳐지는데, 그 안에서 주인공 히라야마는 늘 다음에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주저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자신만의 속도와 템포에 맞게, 깊고 넓게 자리 잡은 뿌리, 그 위로 잎이 무성하게 장대한 숲을 이룬 사람. 영화 '퍼펙트데이즈'를 보는 내내 히라야마, 그의 곁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단하고 품이 넓은 사람. 그런 구석을 내게 조금이라도, 한켠이라도.



엄마를 잃은 꼬마, 허술한 동료와 그의 여자친구, 어린 조카, 암호 같은 둘만의 작은 빙고 메모지, 단골 술집주인의 전남편, 그리고 어쩌면 나무와 하늘과 빛과 그림자까지도. 마치 여유분을 챙겨두었던 사람처럼 만나는 것들에 기꺼이 반가움을 표하고 마음을 내어준다. 그게 나는 참 낯설게 느껴졌다.



타인이 등장할 때마다 히라야마는 조금씩 다른 일상을 맞이하고 이는 평화로운 일상의 변주가 되어 나타난다. 권태로운 나날의 반복이 아닌 변주와 변주의 만남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든다.



그는 오늘도 현관문을 열고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마치 처음 마주한 것처럼,


오늘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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