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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bae Dec 03. 2024

어딘가에서 곤히 잠자고 있을 나의 장갑을


퇴근하면 잊지 말고 옷방 서랍 어딘가에서 곤히 잠자고 있을 장갑을 꺼내놓자고 생각했다. 외투 주머니 안에서 차가운 맨주먹에 괜히 불끈 힘을 쥐어 본다. 추위는 전혀 가시지 않았다. 목도리 속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작은 공원을 지나쳐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길, 공원 정자에 앉아있는 남자를 보았다. 하얀색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입으로 하얀색 담배 연기를 뿜는 그의 앞에는 파란색 카스 맥주가 있었다.



아파트 공원 정자에 앉아 블루투스, 담배, 맥주를 마시는 그 남자는 나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 8시 20분. 내가 탄 엘리베이터는 만원이었다. 일제히 구령에 맞춰 규칙적으로 움직이기로 작정한 것처럼. 다들 어딘가로 바삐 움직이는 시간.



그런 시간에 남자는 아파트 공원 정자에 우두커니 앉아 나무가 되었다. 쓸쓸해 보였다. 슬퍼 보였다. 바람은 차갑고 하늘은 지나치게 파랗고 햇볕은 눈부셨다. 천변을 지나는데 윤슬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반짝이는 물결이 제법 날카로웠다. 추위에 곱은 그의 양손이 칼날 같은 윤슬에 이리저리 베이고 상처가 났다. 밤이 조금 더 나을 거야. 사위가 어두운 그때가 조금은 덜 아플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심조심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두 손은 여전히 외투 주머니 속에서 떨고 있었다.


손을 꺼내 붙잡을 용기가 없었. 아니, 너는 손을 꺼내본 적이 없어. 그 누구에게도.



무수히 많은 곁들이 스쳐 지나간다. 쓸쓸해 보이는 사람. 외로운 사람. 슬퍼 보이는 사람. 곁이 필요한 사람.


그때도 나는 생각했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곤히 잠자고 있을 나의 장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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