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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솬빠 Sep 20. 2024

아버지가 퇴원하자 엄마는 야위어갔다.

마음에 준비를 하라던 의사의 말을 이겨내고 아버지는 구례 집으로 무사 귀환했다.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자동차를 몰고 나오면서 룸미러로 바라본  엄마의 모습은 근심 가득했다. 엄마는 다 펴지지도 않는 허리의 아픔을 참아내고 자신보다 키도, 덩치도 큰 아버지를 종일 수발해야 할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섬망 증세로 손자의 이마를 내리쳤던 아버지다. 그런 위험한 일이 다시 안 생긴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엄마는 살아 돌아온 아버지를 보며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큰 탈 없이 2주에 시간이 지나갔다. 하지만 엄마의 수척해진 얼굴은 그 시간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아버지가 회복한 만큼 엄마는 자신의 기을 내어준 듯했다.


진료를 위해 서울 병원으로 올라가는 길. 기분전환을 위해 두 분이 좋아하는 트로트를 들려 드렸. 쳐져던 분위기는 환기되어 조금 가벼워졌다. 아는 노래가 나오자 아버지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래 한곡씩 하자고 제안했다.


아버지는 '미스고'를 불렀다.

"미스고 미스고

나는 너를 사랑했었다~"


자식에게는 무뚝뚝했지만 아버지는 흥이 있는 사람이었다.


노래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엄마에게 아버지는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라고 했다.


"아이! 니 엄마 그거 틀어줘라 내 나이가 어때서"

"안해 난 노래 하는거 안 좋아해" 

엄마는 거부했만 노래를 틀자 소극적으로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아버지는 엄마에게 노래 한곡은 제대로 연습해놔야 한다며 '내 나이가 어때서'를 한 참 반복  재생시키며 노래 연습을 시켰다.


노래를 하자 좋은 기운이 차올랐다.

다시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여행하듯 형의 집으로 향했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티브이를 보는 아버지를 보니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렇게 괜찮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혈액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다. '5~8'이어야 정상인 염증수치가 '100' 가까이 나왔다. 염증수치가 높게 나오는 직접적 원인을 찾아내지를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항생제를 처방받고 2주 후 다시 진료를 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열이 나면 즉각 근처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다시 2주가 지난 후에 엄마와 아버지는 모두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이제는 간호하는 엄마가 더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이전보다 야위어 있었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데 이러다 엄마까지 아플까 걱정되었다.


병원 검사결과  2주 전 '100'에 다다랐던 염증수치가 더 올라 '200'이 넘게 나왔다. 다시 입원치료를 하기로 했다. 여전히 정확한 원인은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입원 후 3일째 되던 날, 병원에 있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장남인 형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아 나에게 전화를 한 상태였다.  "놀라지 마라" 하며 의사를 바꿔주었다. 놀라지 말라고 하는데 놀랄 준비를 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혈압도 많이 떨어지고 상태가 불안정하다고 했다. 긴급 조치를 했고 지켜봐야 하지만 안 좋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전화가 오기 몇시간 전 병원에서 아버지의 몸 상태를 고려하여 수혈을 권했다. 좋아지길 바라고 한 선택이었는데 수혈을 받던 중 쇼크가 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아버지의 상태는 위급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섬망증세를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의 불안감은 커져갔지만 며칠이 지나자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었다. 병원에서 2주의 시간을 채울 때쯤 혈액검사 수치도 안정되었고 병원에서는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첫 퇴원 때 희망적이었던 엄마 아버지는 두 번째 퇴원 때는 근심 가득했다.


아버지는 첫 퇴원 때 보다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했고 걷는 것도 더 위태로워 보였다. 다리 굵기는 아버지의 아픈 시간만큼 가늘어져 있었다. 아버지가 예전처럼 건강을 되찾길 원했 엄마는 아버지가 화장실에 스스로 다닐 정도만 돼도 좋겠다고 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회복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퇴원 후 팔 힘을 이용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부터 의자에 올라앉는 것. 그리고 보행보조기로 걸어 다니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 봄이 될 무렵. 아버지는 보행보조기 없이 지팡이에 의지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체력도 회복되었다.

반면 이전보다 야윈 엄마는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아서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그렇게 우리에게 아버지와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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