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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솬빠 Sep 27. 2024

아버지의 돈 15만 원이 사라졌다. 범인은 7살 손자.

아버지가 여수로 온 첫날. 외출 중인 나에게 전화가 왔다.


“손자 지갑 어디 있냐?”

“나도 잘 모르는데요. 어디 있는지 직접 물어보세요

“말 안 하고 좀 살펴볼라 그래”

“애들 방이나 식탁 위에 있지 않을까요? 거기 없으면 집에 가서 찾아 드릴게요”


아버지는 지갑을 찾지 못했다. 내가 아들에게 지갑을 가져오라고 하자 들은 '당당하게' 가져다주었다. 아버지는 지갑을 열어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아버지의 지갑에서 5만 원권 3장이 사라졌는데 그 돈이 일곱 살 손자의 지갑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어리다고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것이 말이 되냐?"

"애들 아직 어리잖아요. 이참에 잘 알려주면 되죠"

"자식 교육을 이러고 시키면 안 돼! 지금 제대로 안 잡으먼 나중에는 말해도 안 들어!"

"이러면서 배우고 하는 거죠. 저도 어렸을 때 그런 적 있잖아요"

"내가 니 하는 거 지켜보믄 애들한테 너무 좋기만 해. 애들이 무서운 것이 없어. 떼쓰면 해주고 그렇게 다 해주먼 사람 버려놓는 거여. 나중에 봐봐. 아빠 말이 틀린가? 후회하기 싫으먼 지금 잘해야 돼"


아버지는 기회다 싶었는지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지적했다. 나의 육아관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억울했다. 나는 아버지와 반대 입장에서 언쟁했다.

나는 조금씩 감정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극대화되어 올라왔다.


무뚝뚝하고 엄하고 단호했던 아버지. 난 그런 아버지가 진심으로 불편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가 무서웠어요! 괜히 혼날 거 같고 꼬투리 잡힐 거 같아서, 그래서 피했어요. 아버지가 방에 혼자 있으면 방에도 안 들어갔다고요. 나 중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아버지도 방에 들어오다가 나 혼자 있으면 스윽 다시 나가고 그랬잖아요. 우린 둘이 있으면 어색했잖아요! 나는 아버지 하고 편하게, 때론 친구같이 지내고 싶었다고요. 나는 애들한테 딱딱하고 엄한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


나의 속마음을 아버지에게 쏟아내려던 참이었다. 옆에 있던 아내가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나의 허벅지를 꾹 잡았다. 그리고는 아버지 편을 들었다.


“아버님이 말한 것이 맞아요. 저희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저희가 딱 부러지게 애들한테 못했어요. 앞으로 잘못된 건 엄하게 교육할게요. 죄송해요! ”


나는 그 모습에 화가 나서 방에서 나와 버렸다.


"내가 괜히 여기 와가꼬 분란을 만든다. 나 내일 아침 일찍 구례로 갈라니까 그렇게 알아라"

아버지는 구례로 다시 가겠다고 했고 아내는 안된다고 아버지를 설득다.     




"둘 다 지갑 들고 따라와"

일곱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을 데리고 주차장에 세워진 차로 왔다.


아들에게 물었다.

“거짓말하면 안 돼! 지갑에 돈 어디서 났어?”

“할아버지가 줬어”

몇 번을 되물었지만 똑같이 말했다. 아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화가 나서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꾹꾹 눌렀다.

“그럼 할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물어봐도 돼지?”

"아빠는 왜 내 말을 못 믿어?"

오히려 억울해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스피커 폰으로 통화했다.  


“할아버지한테 네가 직접 물어봐 돈 주셨는지?”

“.......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돈 주셨잖아요~”

"내가 언제 너한테 돈을 줬냐? 왜 거짓말을 하냐? 그러면 안 되는 거여"

자신을 예뻐하던 할아버지가 자기가 거짓말을 해도 같은 편이 되어줄 거라고 믿었던 것일까?

할아버지의 대답에 아들은 더 이상 우기지 않고 거짓말을 인정했다. 지갑에 돈을 넣어 고 싶었다고, 혼날까 봐 무서워 거짓말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오시기 얼마 전 아이들에게 돈 개념도 알려줄 겸 지갑을 사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딸의 지갑을 열어 봤는데 거기에도 준 적 없는 만 원권이 있었다.


"너 이돈 어디서 났어?"

"서랍에 있었어"

"그걸 마음대로 가져간 거야?"

"오빠도 가져갔어"

아들은 할아버지 돈뿐만 아니라 서랍에 돈도 챙긴 상태였다. 둘은 공범이었다. 할아버지 지갑의 돈을 가져갈 때도 딸은 지켜보고 있었다. 매를 들까 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아이들과 함께 파출소로 갔다. 들어서며 경찰관들에게 한쪽 눈을 껌뻑였다. 경찰관에게 물건을 훔치면 어떻게 되는지 묻자 단호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내가 경찰관에게 이야기할까 봐 바짝 긴장했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꾹꾹 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남의 물건 손 대면 될까 안될까?"

"안 돼요!"


경찰들 앞에서 남의 물건에 절대 손대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았다. 아이들을 차에 태워 놓고 파출소 안으로 다시 들어가 오는 길에 사둔 음료와 감사인사를 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나의 육아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관대했고 아내 역시 그런 나를 나무라곤 했다. 아이들이 나를 만만히 본다고 했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원했던 모습을 아이들에게 부족하지 않게 채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 같은 아빠가 되려고 집착했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려 방에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나와 아내에게 먼저 사과했다. 어린아이인데, 모르고 그럴 수 있는 나이인데, 자신이 너무 크게 생각했다고, 전날 지갑 정리를 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손자가 “할아버지, 그 돈 주면 안 돼요?”하고 웃으면서 졸랐단다. 5만 원권 밖에 없어서 아이들에게 주기에 큰돈 같아 나중에 준다고 했단다.


"내가 그때 줬으면 이런 일도 없었으껀디 내가 일을 만든  것 같다"

그때 그냥 줄 걸 그랬다고 후회하셨다. 지갑에는 5만 원권이  있었는데 아들은 그중에 3장만 가졌갔다. 왜 3장만 가져갔냐고 물으니 "그냥"이라고 답했다.

        

당시에는 화가 났지만 이 해프닝에 감사했다. 나의 육아관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한 계기가 되었다.

     

아들은 할아버지에게 돈을 돌려주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구례로 가지 않고 여수에서 함께 지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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