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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솬빠 Sep 17. 2024

아버지의 '목숨 앞에 돈 걱정'

아버지는 손자와의 일로 불안해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며칠째 대변을 못 보던 아버지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 변기를 드렸지만 화장실로 가겠다고 고집했다. 다리 힘이 없어 비틀거리면서도 보행보조기와 나의 도움을 받아 화장실까지 이동하는 것에 성공했다.

변기에 앉혀 드리고 볼일 끝나면 나를 부르라고 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노크하고 들어갔다.

아버지는 엉덩이를 들어 올리지 못해 뒤처리를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처리를 아들에게 부탁해야 하는 상황을 한탄하고 있었을까? 나를 차마 부르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를 살짝 일으켜 부축하고 아버지의 엉덩이를 닦아 드렸다.

          

"내가 왜 렇게 됐다냐. 니한테 런 거까지 다.."

"우리 어렸을 때 아부지랑 엄마도 다 해줬잖아요. 우리도 당연히 해야제"


침대로 돌아와 아버지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눈길을 돌렸다. 손에 힘이 없어 젓가락질이 힘든 아버지는 이제 식사마저도 의지해야 할 차례였다.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 엄마가 어렸을 적 나에게 밥을 먹여주듯 아버지의 식사를 도왔다. 아버지는 몇 숟가락 드시더니 그만 먹고 싶다고 했다. 안 된다고 더 드셔야 한다고 억지로 반 공기를 드시게 했다. 아버지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하고 한 줄기 흘러내렸다.          


"아부지 못 씻어서 찝찝? 몸 한 번 닦아 드릴게"

"아이 됐어 저번에  엄마가 다 해줬어"

그것이 며칠이 지났는디”


따뜻한 물을 수건에 적셔 온몸을 닦아드렸다. 괜찮다고 하면서도 아버지는 가만히 계셨다.

이제 우리의 역할은 바뀌었다. 나의 보호자였던 아버지는 이제 나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자식은 당연하듯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만 부모는 자식의 보살핌을 당연시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미안해했다.

     

다음날 아침에 형이 병원으로 왔다.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가 한 명만 출입 가능했지만 교대하는 잠시는 이해해 주었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앉아 보라고 했다. 아버지의 정신은 맑아 보였다.

   

"들이 있어 아빠가 지금 살아있다.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았잖애. 자식들도 다 결혼고 싹 다 애기 낳고 했응게 나는 부족한 것 없이 할 것 다 한거여. 혹시 아빠가 가더라도 가족 간에 서로 잘 챙기고 연락 자주 흐고 지내야 돼. 자주 안 보믄 마음도 멀어지는 거여. 글고 엄마 잘 챙겨라. 니들 엄마한테 내가 제일 미안다. 고생만 다 허리까지 굽어가꼬..

자주 전화고 자주 찾아봐. 글고 남한테 절대 서운한 행동 하지 말고. 내가 좋게 하면 남도 좋게 하는 것이여. 글고 인자 아빠 말대로 . 병원에 이만큼 있었으먼 됐응게 집으로 내려가자. 내려가서 정리해야 할 것도 있고.. 병원에 계속 이러고 있다가는 집도 팔고 논밭도 팔고 돈 싹 다 갖다 쓰겄다. 지금까지 잘 살았응게 집에 가서 행복하게 지나다가 가더라도 갈란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유언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눈물을 닦아냈다.

자식 키우느라 보험은 생각도 못하다가 뒤늦게 가입하려니 가입 조건이 되지 않아 제대로 된 보험도 없던 아버지는 그 와중에 돈 걱정이 되었나 보다. 죽음에 직면해 있던 상황에서도 혹시나 자기로 인해 가족들에게 부담을 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인자 살만 하신가 보네. 돈 걱정도 하고. 아부지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 아부지 몸만 생각하셔요"

  

불안했던 아버지의 상태는 다행히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혈액 검사 수치도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고 소변 줄도 빼고 섬망 증세도 줄었다.


2020년 12월 31일. 아버지는 2주 만에 자신의 결정이 아닌 병원의 판단으로 퇴원하게 되었다.


자녀들 집에서 당분간 지내자고 했지만 엄마와 아버지는 한 팀이 되어 강력하게 거부했다.


이제 시골집에서 허리굽은 엄마가 아버지를 간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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