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도착했지만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코로나 검사 후 '음성'이라는 합격표를 받아야 했다. 통제된 동선을 따라 주요 검사만 받고 독방에 격리되었다.
담석과 패혈증 소견.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아야만 응급실로 이동 후 조치가 가능했다. 격리실에는 보호자 한 명 만 들어갈 수 있었다. 엄마는 본인이 있겠다고 고집했다. 엄마의 고집은 꺾기 어렵다. 아침에 교대하기로 다짐을 받고 여수의 집으로 돌아와 병원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챙겼다.
아침 일찍 병원으로 돌아오는 중 응급실 담당의에게 전화가 왔다. 갑자기 안 좋은 상황이 생길 수 있는 상태이니 마음에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자 걸려온 작은누나와 통화하며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엄마는 여수의 우리 집으로 보내고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로 들어갔다. 침대 하나 미니냉장고 하나. 침대크기만큼의 빈 공간. 함께 있는 것을 어색해했던 아버지와 나는 그 좁은 공간에 함께 있게 되었다.
낮에 아버지는 오래도록 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 괜찮아 보이던 아버지는 저녁이 되자 전날 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불안했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는 격리실 입구 쪽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몇 마디씩 하셨다.
"아버지 뭐가 보여요?"
"아이 저기 사람들이 일흐고 있잖애.."
아버지는 자기만의 공간을 응시하면서 나와 대화도 자연스럽게 받았다.
'아버지의 눈에 나는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이었을까?'
무너질 것 같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편안해 보였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지금 몸 상태를 눈치채지 못하고 힘들어하지 않아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아버지가 보고 있는 것들은 아버지의 과거 속 어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지나온 시간과 마주 하고 있었다. 모내기를 하는 장면이었다가, 잠시 뒤는 건축 현장이었다가, 그러다가 그들에게 말도 걸었다.
"아이 참말로 그렇게 흐먼 안된디.. 일이 서툴그마"
나를 보며 그 사람들의 서툼을 이야기했다. 눈이 마주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저 누군지 알아요?"
"누구긴 누구여 막둥이제"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어디 긴 어디여! 저 사람들 안 보이냐? 일하는 곳이제. 어~이 챙기소. 인자 가세"
아버지는 나에게 말하다가 갑자기 아버지만의 세상 속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알아보는데 병원은 알아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눈과 나의 눈에 보이는 공간은 달랐다. 아버지의 인생에는 내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그 속에 주인공들의 삶을 공감하고 아파하면서 정작 아버지 인생은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을 헤아려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9살에 자신의 아버지를 여의고 머슴살이를 했다. 홀로 된 할머니는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식 없는 집의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아주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소를 끌고 풀을 먹이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을 아버지.
어린 나이의 아버지는 혼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그런 상황에서도 집안의 유일한 남자였던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 27살의 나이에 엄마와 결혼을 했고 그 사이에서 태어 난 6명의 자녀 중 2명이나 하늘로 먼저 보냈다.
아버지는 고단했을 자신의 인생을 우리 앞에서 원망하거나 넋두리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의 힘들었을 인생을 가장의 책임감으로 묵묵하게 버티고 있었을 거다. 속내를 들여다보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은 어릴 적 나에게 그저 무뚝뚝한 사람으로만 느껴졌다. 그래서 난 아버지를 불편해했다.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그 시간이 미안해졌다.
가만히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는 나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늙은 그의 손은 내 손보다 컸다. 지금의 상황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손을 잡을 일이 있었을까? 아버지의 손을 오래도록 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손을 놓지 않고 자신의 과거를 여행했다. 난 그런 아버지를 밤새 지켜봤다.
검사 다음 날 낮에 나온다던 코로나 검사결과는 점심을 넘기고 저녁을 넘기고 자정이 다되어 나왔다.
'음성'
서울에 병원으로 전원 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