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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솬빠 Sep 10. 2024

아버지의 손을 잡고 밤을 지새우다.

병원에 도착했지만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코로나 검사 후 '음성'이라는 합격표를 받아야 했다. 통제된 동선을 따라 주요 검사만 받고 독방에 격리되었다.

담석과 패혈증 소견.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아야만 응급실로 이동 후 조치가 가능했다. 격리실에는 보호자 한 명 만 들어갈 수 있었다. 엄마는 본인이 있겠다고 고집했다. 엄마의 고집은 꺾기 어렵다. 아침에 교대하기로 다짐을 받고 여수의 집으로 돌아와 병원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챙겼다.


아침 일찍 병원으로 돌아오는 중 응급실 담당의에게 전화가 왔다. 갑자기 안 좋은 상황이 생길 수 있는 상태이니 마음에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자 걸려온 작은누나와 통화하며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엄마는 여수의 우리 집으로 보내고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로 들어갔다. 침대 하나 미니냉장고 하나. 침대크기만큼의 빈 공간. 함께 있는 것을 어색해했던 아버지와 나는 그 좁은 공간에 함께 있게 되었다.

낮에 아버지는 오래도록 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 괜찮아 보이던 아버지는 저녁이 되자 전날 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불안했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는 격리실 입구 쪽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몇 마디씩 하셨다.

"아버지 뭐가 보여요?"

"아이 저기 사람들이 일흐고 있잖애.."     

아버지는 자기만의 공간을 응시하면서 나와 대화도 자연스럽게 받았다.

'아버지의 눈에 나는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이었을까?'


무너질 것 같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편안해 보였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지금 몸 상태를 눈치채지 못하고 힘들어하지 않아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아버지가 보고 있는 것들은 아버지의 과거 속 어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지나온 시간과 마주 하고 있었다. 모내기를 하는 장면이었다가, 잠시 뒤는 건축 현장이었다가, 그러다가 그들에게 말도 걸었다.


"아이 참말로 그렇게 흐먼 안된디.. 일이 서툴그마"

나를 보며 그 사람들의 서툼을 이야기했다. 눈이 마주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저 누군지 알아요?"

"누구긴 누구여 막둥이제"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어디 긴 어디여! 저 사람들 안 보이냐? 일하는 곳이제. 어~이 챙기소. 인자 가세"

아버지는 나에게 말하다가 갑자기 아버지만의 세상 속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알아보는데 병원은 알아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눈과 나의 눈에 보이는 공간은 달랐다. 아버지의 인생에는 내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그 속에 주인공들의 삶을 공감하고 아파하면서 정작 아버지 인생은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을 헤아려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9살에 자신의 아버지를 여의머슴살이를 했다. 홀로 된 할머니는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식 없는 집의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아주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소를 끌고 풀을 먹이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을 아버지.

어린 나의 아버지는 혼자서 얼마나 많 눈물을 흘렸을까?

그런 상황에서도 집안의 유일한 남자였던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 27살의 나이에 엄마와 결혼을 했고 그 사이에서 태어 난 6명의 자녀 중 2명이나 하늘로 먼저 보냈다.

      

아버지는 고단했을 자신의 인생을 우리 앞에서 원망하거나 넋두리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의 힘들었을 인생을 가장의 책임감으로 묵묵하게 버티고 있었을 거다. 속내를 들여다보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은 어 적 나에게 그저 무뚝뚝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난 아버지를 불편해했다.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시간이 미안해졌다.

   

가만히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는 나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늙은 그의 손은 내 손보다 컸다. 지금의 상황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손을 잡을 일이 있었을까? 아버지의 손을 오래도록 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손을 놓지 않고 자신의 과거를 여행했다. 난 그런 아버지를 밤새 지켜봤다.

    

검사 다음 날 낮에 나온다던 코로나 검사결과는 점심을 넘기고 저녁을 넘기고 자정이 다되어 나왔다.

'음성'

서울에 병원으로 전원 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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