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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솬빠 Sep 03. 2024

아버지는 고인이 되었지만 '괜찮애'

아버지는 자신의 바람처럼 병원도 요양원도 아닌 집에서 주무시다 고요히 가셨다.


서로 위로하며 의지하던 장례식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자 아버지의 빈자리는 크게 다가왔다. 운전을 하다가,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밥을 먹다가, TV를 보다가, 노래를 듣다가, 지나가는 어르신을 보다가 부지불식간에 슬픔과 그리움이 눈물을 타고 쏟아졌다.


나 보다 혼자 있을 엄마 걱정됐다. 아들  집에서 당분간 함께 지내자 했지만 거부했다. 지금 혼자 지내는 것을 적응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혼자 지내기 더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엄마는 자기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 의사죽는다고 했는디 그래도 3년이나 더 살다 갔응께 괜찮애, 만약에 그때 갔으먼 내가 진짜 한이 됐으껀디.. 괜찮아져서 좋은 시간 보내다 갔응께 그래도 괜찮애... 괜찮애..."

'괜찮애..' 라는 말은 마자신을 위로하 위한 말 같았다.


3년 전. 아버지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었다.






3년 전. 2020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저녁.


정해진 일과처럼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아따 춥네. 아픈 데는 없소? 아버지는?" 

 엄마와 통화할 때면 나의 사투리 버튼은 가동된다.

"이~ 괜찮에~ 암시랑토 안 해. 밥 잘 챙겨 묵고,, 운전 조심해"

"예 알긋소 뭔 일 있으면 전화흐쇼~"

"이~"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던 엄마와의 통화, 목소리마저도 나를 속였다. 막내아들에 대한 엄마의 배려였음을 몇 시간 후 형의 전화를 받고 알았다.

 

"엄마한테 전화 왔는, 아빠가 좀 이상하단디? 집에 좀 빨리 가봐야 긋다"

형의 목소리는 불안했다.

"나 아까 엄마랑 통화했는데. 아무렇지 않던디?"

"일단 빨리 가봐." 

상황 설명보다 앞선 지시는 다급함을 내포하고 있다.

"어! 근데 왜?"

"아빠가 자꾸 어먼 소리를 한다네. 화장실에서 안 나오고 가만히 앉아서 계속 이상한 말을 한데"

아파서 쓰러거나 어디를 다쳤거나 그런 상황일 거라 예상했다. 치매가 오신 건가?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들이 몰려와 복잡해진 머릿속에서 현명한 선택은 일단 고향집 구례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차의 출발과 함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까의 침착함은 사라지고 어딘지 불안한 엄마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안부전화 때의 침착함은 내가 속았거나 엄마의 뛰어난 연기였을 거다.


"아빠가 이상흐다"

"아까는 그런 말 없었잖애?"

"니 걱정할까 봐 그랬제. 근디 아무래도 와봐야 긋다." 

남편 걱정을 넘어선 막내아들이 걱정할 것에 대한 염려. 그 배려가 원망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이상해?"

"아빠가 자꾸 뻘소리를 한다. 아무것도 없는디. 자꾸 누가 있는 것처럼 말을 해"

"언제부터?"

"며칠 전부터 자다 깨서 한 번씩 글드마. 오늘은 낮에도 글고, 지금은 화장실에 앉아서 계속 그래.  누가 있냐고 하믄 요 앞에 있잖애 금시롱. 계속 뭐라 그래싸"

"아이 글먼 진작 말해야제. 그걸 왜 인자 말한가" 

안 그래도 놀라 있을 엄마에게 난 큰소리를 뱉어내다 거두어들였다. 웬만해선 자식 걱정 시키기 싫은 엄마의 배려였을텐데 나는 짜증으로 응답했다.


아버지는 치매가 있던 분이 아니였다.

"아빠 좀 바꿔줘요" 

상황대처를 위한 상태 확인이 필요했다.

"응 아 빠 다~" 평소와 같은 전화받는 말투다. 근데 혀끝에 힘이 없다.

"몸이 안 좋아요?"
"아이 괜 찮 애~ 느그 엄 마는 뭐 흔다고 전 화~했다냐"

대화는 정상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뭉개지고 어그러지는 목소리. 뇌졸중, 뇌출혈 인가? 생각했다.

"뭐 하신대"

"뭐~해~ 그냥 있제~"

"아버지 어지럽거나 숨 차고 그러지 않아요?"

"안 그래~ 암시랑토 안해"

"엄마 좀 바꿔주세요"

"이~ 받~아 보소"

엄마에게 일단 119에 전화를 하라고 했다.

" 119를 부르. 그럴 거 아니여"

엄마는 119를 막내아들만큼이나 배려했다.


조금이라도 상태가 안 좋으면 지체 말고 119를 부르라고 했다. 위급환자를 싣고 달리는 구급차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나는 집에 도착했다.




'별일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방문을 열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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