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지잉~~~ 지잉~~~' 징징대는 휴대폰 진동음이 전날 마신 막걸리 2병의 위력을 뚫고 들어와 나를 깨웠다. 발신자는 엄마였다. 전화를 받기도 전에 불안한 느낌이 잠을 확 털어냈다. 이른 새벽 시골 노모가 전화한 이유가 희소식 일리는 없다.
“집에 좀 와봐야 긋다”
차분하게 숨을 고른 듯 눌러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빠가 옷에 오줌을 쌌다"
"에? 오줌을 쌌다고?"
"한번 그래가꼬 씻고 갈아입혀 났는디, 좀 있드마 또 글고, 또 글고 3번을 근다. 와봐야 긋다”
아버지는 치매도 아니고 거동을 못하는 사람도 아니다. 연세가 있으시지만 당당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던 분이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의 바지에 연달아 소변 실수를 한 것이다.
"헛것을 보지는 않고?"
"그러진 않애"
“지금은 어쩌고 계셔?”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 일단 와봐~”
통제되지 않는 자신의 몸을 보며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지금 바로 갈게요. 상태 안 좋으면 119 바로 부르고 저한테 전화 줘요”
옷을 챙겨 입고 방안의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 살피고 집을 나섰다. 아내와 아이의 존재는 불안감을 달래주는 효과가 있다. 어제저녁 마신 막걸리 2병의 위력은 시간 탓인지 마음 탓인지 숙취마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의 목소리처럼, 나의 마음도 숨을 고르고 차분하려고 노력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한 시간 거리. 더디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 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덮쳐왔다.
상황을 하루 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전날 낮에 안부전화에서 이상함을 감지했었다. 아버지의 말이 조금 어눌하고 발음이 뭉개지는 듯 들렸다. 3년 전에 아버지와 비슷했다.
3년 전. 그의 나이 82세 때다. 아버지는 많이 아프셨다. 염증수치가 매우 높고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서는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때 엄마와 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었다. 남편을 잃을 아내, 아버지를 잃을 아들을 서로 위로하며 어깨가 들썩이도록 울었다.
그 일 이후로 아버지의 건강 상태에 항상 예민했다. 그런데 전날, 3년 전 느꼈던 아버지의 어눌한 말투와 뭉개지는 발음을 다시 느꼈고 얼마 전부터 감기 기운도 있다고 했던 터라 더 신경 쓰였다. 말하는 것이 이상하니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자다가 일어나서 그런 거다'
'이런 걸로 병원을 가냐?'
'주말이라 문 연 병원도 없다'
'니 일도 바쁜디 지금 어쩌고 온다그냐'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부했다. 혈액검사 해보고 결과 괜찮으면 다시 모셔다 드린다고 했지만, 시골 노부부의 고집은 꺾기 어려웠다.
'괜찮다' '아무 일 없다'는 말에 몇 번을 속았음에도 나는 그들의 굳은 의지에 설득되고 말았다. 불안한 마음이 남아 있었지만 저녁 다시 건 전화에서 괜찮아진 아버지의 목소리와 발음에 나는 안심했다. 바보같이.
후회와 걱정, 긴장감으로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휴게소에 들러 물을 한병 사서 목을 축이고 차에 올라 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좀 어쩐가?" "그냥 그대로여. 조심해서 와"
엄마의 목소리는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3년 전 무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괜찮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주문을 걸고 있었다.
집에 도착 후 벌어질 일들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상황 대비를 했다. 집 앞에 주차하고 3년 전 그때처럼 '엄마'하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문을 열자 아버지는 다리를 쭉 펴고 왼발을 오른발 위에 올린 채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아버지의 낯빛은 낯설었다.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색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