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솬빠 Sep 06. 2024

아버지를 찾아온 저승사자

'별 일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방문을 열었다.


“엄마”

엄마는 방에 없었다. 부엌으로 들어가며 더 커진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구부정한 허리를 펴 올리며 나를 쳐다봤다. 언제부터인가 다 펴지지 않는 엄마의 허리는 그녀를 더 안절부절해 보이게 만들었다.


"아부지는 어딨데?"

"화장실"

"아직도?!"

내가 여수에서 출발할 때도 화장실이라고 했었다. 아버지는 한 시간여를 변기에 자리고 있었다.

 

반쯤 열린 문으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안에 아버지 말고 누구 있데?" 

엄마에게 물었다.

"없어. 근디 저렇게 누가 있는 것처럼 얘기를 했산단게" 

엄마는 음을 참느라 애쓰고 있었다.      


잠시 화장실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들리지가 않았다. 아버지가 어떤 말들을 하는지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했다. 긴장감을 밀어내기 위해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고 아버지를 불렀다.     


“아부지~”

“이~ 왔~냐~” 

혼자 하던 말을 멈추고 아버지는 나에게 대답했다.

“누구랑 그렇게 얘기를 하신?” 

아버지의 상황이 깨트려지지 않도록, 슬며시 그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여기 둘이 있잖애~”

아버지의 말들은 선명하지 못하고 흐릿하게 흘러나왔다.

“어디? 누가 있어?”

“여기 앞에 둘이 있잖애”


'둘?'

 

단순한 내 상상력은 까만 옷에 까만 갓을 쓴 남자. 저승사자를 떠올렸다.

'저승사자가 아버지를 데리러 오신 걸까?' 

팔뚝에서부터 파도타기 하듯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소름을 빠르게 비벼 치워 냈다. 아버지의 몸상태는 응급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은 나의 심장을 긴박하게 몰아세웠다.

“그 사람들이 누군디?”

“여기 아줌마 둘이 있잖애. 일을 저렇게 흐먼 안된디, 허이 차암나”

하며 아버지는 웃으셨다. 걱정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심지어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아닌 듯했다. '치매인 건가?' 멀쩡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인자 나오셔, 계속 앉아 있으면 다리 쥐 나” 

아버지의 다리는 변기에 앉은 채로 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던 참이었다. 안 그래도 힘이 없는 다리는 나의 몸에 매달리다 시피하며 화장실에서 부엌을 거쳐 방으로 그리고 아버지의 고정석까지 끌려왔다. 대이동을 마친 아버지는 가뿐 숨이 지나가자 다시 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허공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나는 부엌으로 건너와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본 상태를 공유하고 우리는 순천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기로 결정했다. 아버지가 복용 중인 약과 여벌 옷을 챙기고, 코로나 시대의 필수품 마스크도 넉넉히 넣었다.     

“아이 뭐 흔디 이 시간에 병원을 간다고 그냐 참말로 암시랑토 안흔디”

아버지는 자신은 멀쩡하니 병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부지 기운도 없으시고 평소하고 몸이 좀 다른 거 같으니까 가서 검사받아 보고 괜찮다고 하면 다시 오게요” 

계속 마다하는 아버지를 가까스로 차에 태웠다. 잔뜩 긴장한 엄마하고 나와 다르게 아버지는 평안해 보였다. 구례 순천 간 고속도로를 올라타자 창밖 어둠 가득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또 우리는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며 이야기했다.


“아따 뭔 사람들이 저리 많다냐”

“어디? 뭔 사람들이 있어요?”

“저기 사람들 많이 모여 있잖애”

“아부지 아는 사람들이여?”

“이 저기 연파리 김센(김씨)이랑 그 각시도 있고..” 

반가움인지, 즐거움인지 까만 창밖을 이리저리 응시하며 아버지는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옆에서 엄마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비도 오지 않는 날씨에 내 시야에는 한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응급실로 들어가지 못했다. '코로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