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자마자 형과 아버지는 사설 엠블란스를 타고 순천에서 서울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와 나는 여수로 왔다. 자려고 누웠지만 둘 다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소주 한 병을 들고 와 마주 보고 앉았다.
엄마는 눈가에 눈물이 곧 흘러내릴 듯했다.
"젊었을 때 그렇게 고생하다가 인자 니들 시집장가 다 가고 애기도 다 낳고 좀 재밌게 살만한디, 이렇게 됐다냐? 니 아빠 불쌍해서 어쩌끄나? 딱 몇 년만 더 살다 갔으먼 좋겄는디"
"걱정하지마. 괜찮할꺼여"
막상 엄마에게 괜찮을 거라 했지만 '마음에 준비하라'던 의사의 말이 떠올라 눈물이 벌컥 쏟아졌다. 엄마도 내 눈물이 마중물이 되었는지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엉엉 울었다. 소리를 듣고 거실로 나온 아내도 함께 울었다. 우리는 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날 일찍 식사를 하고 엄마와 나는 구례로 향했다. 엄마는 미리 점쟁이와 통화를 하고, 해야 할 임무를 하달받은 상태였다. 마침 그날은 점쟁이가 말한 손 없는 날이었다.
조상님의 묘가 보이는 밭에 가서 쑥과 말린 빨간 고추를 태우고 소금을 뿌린 다음 마음을 담아 빌고 빌었다. 나 역시 옆에서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조상님 아버지 좀 살려주세요.'
미신을 믿지 않는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맹신하고 싶었다.
그리고 외할머니 묘를 찾아가 또 빌었다. 아버지의 회복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엇이라도 해 볼 참이었다.
그렇게 임무를 마치자 왠지 한가닥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
간병은 군대를 갓 제대한 손자(작은누나의 아들)가 맡고 있었다.
새벽 1시. 형에게 연락이 왔다. 손자의 이마가 찢어져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리모컨으로 간호하던 손자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단다. 아버지는 침대에 묶여 있고 형이 지금 병원으로 이동 중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섬망 증세가 다시 심해진 상태였다.
손자를 리모컨으로 사정없이 때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손자의 설명은 이랬다.
할아버지가 이상한 말을 하며서 침대에서 나오려고 하고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 할아버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진정되지 않았다. 의사가 와서 위험할 수 있으니 결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하며 동의를 구했다. 손자가 흥분한 할아버지를 진정시켜보려고 하는 순간 리모컨으로 손자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리고 아버지는 침대에 묶였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랬다.
집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손자와 그 친구들이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큰 솥단지에 돼지고기를 삶아 대접했다. 그리고 술도 사다 주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그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들은 처음 봤단다. 맛나게 먹고 재밌게 놀았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사람들이 종이를 들고 다니며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 서명을 하는 순간 자신이 위험해질 것이란 걸 알았다.
이전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거기에 서명한 사람들은 모두 잡혀갔다가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망을 쳤지만 그들이 계속 쫓아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막다른 곳에 몰렸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왔고 그중에는 손자도 있었다. 한 명이 아버지를 쳐다보며 손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버지는 손자와 그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작당 중이라고 믿었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죽겠구나 싶었다. 앞에 보이는 창문을 깨고 뛰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손자가 다가와 자신을 제압하려고 했다. 아버지는 살기 위해 옆에 잡히는 것을 움켜잡고 손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손자는 이마가 찢어졌고 아버지는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려던 찰나 그들에게 제압되어 침대에 묶였다. 아버지는 소리 지르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이제 아버지는 죽게 될 참이었다.
그때 큰아들이 나타났고 아버지는 무사할 수 있었다.
휴일이라 서울로 올라와 간병을 교대한 나에게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손자의 만행을 고자질했다.
현실이라고 느꼈을 상황 속에서 목숨을 위협당하고 있던 아버지는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안쓰러우면서도 자신의 환상으로 또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염려스러웠다.
아버지가 말한 것이 실제가 아님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설명할수록 오히려 나까지 믿지 않으려 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믿는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