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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라이언 May 20. 2022

그냥 그 꿈이 이루어지기만 바랄게

생명과학자의 철학

     사춘기가 들어올락 말락 하던 중학교 2학년 여름, 무슨 생각이었던지 이순신 장군의 위인전을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초등학생 시절 기억했던 것처럼 마지막 장렬한 죽음 장면이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이런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모함, 백의종군.. 겨우 12척 남은 배.. 장군 입장에서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상황을 계속 겪다가 돌아가셨는데.. 지금이야 우리는 그를 위인이라 받들고 칭송하지만, 장군은 이런 미래를 알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것 아닌가.. 안타깝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았습니다.


'만약, 지구를 구하는 스위치가 있는데 그걸 누르면 모든 사람은 살지만 나는 사라진다. 심지어, 사람들은 내가 존재했다는 기억조차  못한다. 그러나, 스위치를 누르지 않으면,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모두 죽는다. 어떻게 할 것이냐?'


나름의 '화두(話頭)'였던 셈입니다. 중학생이 무슨 저런 생각을 하냐고 하겠지만, 당시 나름 심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이 문제를 생각하는 동안,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했습니다. 저는 당시 뭔가 골똘히 생각할 때마다 집 안팎을 빙빙 돌거나 (지금도 그럽니다..), 2층 집 옥상위 옥탑방 작은 옥상에 올라가 빨랫줄 받침용 긴 나무막대를 지팡이처럼 짚으며 돌아다니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종종 하늘에 떠있는 태양의 따뜻한 기운과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좋았거든요. 그날도 옥상에 올라 막대를 짚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고민은 스위치를 누르는 것까지는 좋은데 내가 여기 살아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너무 슬펐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진정 '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네요. 눈물이 막 흐를 것도 같고 뭔가 답답한 마음.. 한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 못 하고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한참을 지났을까..


마침내 '스위치를 누르는 것'으로 결정하고서야  맘 편히 내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약 20여 년이 지난 2011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 인간 프로테옴기구 (Human proteome organization (HUPO))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제네바로 가는 두 번째 비행기에서 마침 옆자리에 한 분의 외국인 할아버지가 으셔서 서툰 영어로 여러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적은 기억이 잘나지 않지만, 그분은 알고 보니 공학박사였고 회사 엔지니어로서 오랫동안 일하셨던 일종의 학계 선배님이셨습니다. 마침, 그분이 북한의 핵 관련하여 걱정하시는 말씀을 하셨을 때  나도 모르게 평소 상상해 왔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옛날의 독일처럼 아직 분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래에  남북한의 경계선에 아주 큰 연구소를 만들고, 다른 선진국도 따라오기 힘든 매우 수준 높은 연구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남북 과학자뿐만 아니라 세계의 훌륭한 과학자들이 어렵지만 가치 있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그곳으로 기꺼이 달려와서 머물러 줄 것입니다.

연구소가 있는 3.8선 비무장 지대가 세계에서 제일 귀한 곳으로 인식된다면, 선진국들의 응원으로 서서히 남북한의 교류도 활발해져 결국 멋진 통일을 이룰 거라 믿습니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정치, 사상이나 경제적인 접근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거든요."


독일 뮌헨 헬름홀츠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수를 위해 1년간 머물렀을 때, 외국인 동료들로부터 남북한의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집으로 돌아와 조금씩 고민해 왔던 어떤 나름의 생각들을 느닷없이 꺼내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처음 뵌 외국인 할아버지에게.. 외국인들이 한국을 생각하면 남북 분단과 대치상황에 의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먼저 떠올린다는 것이 늘 속상했거든요.  


아차.. 너무 멀리 와버렸나 하고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드는 순간..


"매우 좋아. 너의 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도 기도 할게.. 그러나, 단 하나의 조건이 있어"

"네? 조건요?"하고 여쭈었더니,


"너 자신이 그 일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지 마. 그냥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해"


그리곤 건너편에 창가 쪽에 앉아 있는 분을 부르더니 필자와 서로 인사를 시켜 주시고는,

"내 아들인데, 쟤도 공학박사야. 네가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면 아들이랑 함께 기도해 줄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문득 대학원 시절 늘 품고 다녔던 '금강경(金剛經, 다이아몬드처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핵심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내어라. (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무소주 이생기심)'


금강경은 '보살'의 지위를 갖춘 사람들이 다른 중생들을 돕거나 교화할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스승인 부처님에 묻고 그 답을 듣는 내용입니다. 다른 존재들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을 내는 사람들이라면 흔히 겪는 자기모순의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가파른 비탈길을 손수레를 끌며 힘겹게 올라가는 늙고 힘이 없어 보이는 노인을 보았을 때 그 노인의 수레를 뒤에서 밀어 도와드리는 것이 내면의 양심에서 순간적으로 올라온 마음의 발로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평소 힘든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일종의 프로그램된 의도성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인지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즉, 만약 평소 다른 존재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선행을 베풂으로서 복을 짓겠다는 (작복, 作福) 평소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 노인의 수레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양심에 따른 행위라고 볼 수 없고 마치 인공지능 (AI)과 마찬가지로 여러 상황적인 훈련을 통해 미리 입력한 행위의 방향성 결정에 따라 그저 기계적으로 반응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상황들을 여러 번 겪는다면 '나는 맞닥뜨리는 그 상황을 양심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순수성을 잃었다'는 생각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미리 훈련된 그러한 마음과 경험이 없다면 상대가 직접적으로 요청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저분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며 나의 이러한 행위는 꼭 도움이 될 것이고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라는 능동적인 판단을 하기란 쉽지 않고 또 평소의 자기 보호본능과 소심함이 강한 성격인 사람이라면 더욱이 그러한 선행을 하지 않거나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고민은 전쟁터에 있는 군인, 의사 혹은 위험한 화재 속 소방관 그리고 범죄의 위험에 최전선에 놓인 경찰 등과 같이 직업적으로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주는 분들이라면 훈련이 본능으로 무르익기 전까지는 늘 마주 할 수밖에 없는 고민이기도 할 것입니다.

        

속세로부터 물든 모든 마음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강렬한 의지와 지금의 이런 나를 형성하게 해 준 더불어 존재하고 있는 중생들을 위해 선행을 베풀고자 하는 대보살들 (서양의 대천사)이 느끼는 모순적인 마음들.. 이 고민에 대한 싯다르타의 답변이 바로 '나 (자아, 自我, ego )'를 빼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그 마음만을 일으켜 행하고 그 마음마저 강을 건널 때 썼던 뗏목처럼 그저 흘러가게 두라는 것입니다. 이 귀한 가르침을 스치듯 뵈었던 그 할아버지 선배님을 통해 직접 듣게 될 줄 몰랐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 '아링 하리'는 관세음보살의 합장수 진언 '옴 바나만 아링 하리 (Om padmam gjalm hr)'의  마자막 단어를 차용한 것으로서 모든 존재들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기를 원할 때  외는 진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으로 만들어갈 회사 제품의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유명 카메라 회사 '캐논 (canon)'이 원래 관세음보살의 '관음'에서 유래한 것을 알고 용기를 냈습니다.)


장군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지만 어지러운 세상은 그 장군으로 하여금 평온하게 두지 않는다는 옛말이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우리나라가 미래 세계의 스승의 나라가 되기를 꿈꾸고 그러기 위해서 전쟁의 위험이 없는 하나의 국가를 이루기를 기도하며 오랜 시간 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더불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는 이 '난세 '를 극복할 금강의 마음을 품은 황금사자들을 세상 밖으로 불러내는 '출사표'이자 후세의 올바른 판단을 위한 중요한 '증명서'로서 쓰일 것입니다.  


독자분들은 뭐가 이렇게 무거운 얘기를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하셨다면 미리 그 불편함에 사과드립니다만,

앞으로 저 자신과 앞으로 만들어질 회사가 추구하는 철학을 명확히 하고자 부족함에 대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시작하는 것이니 만큼 많은 응원이 필요하기에 넉넉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함께 가시죠.


오직 그렇게 되기만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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