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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수나무숲 Aug 22. 2023

인생은 아보카도

알맞은 타이밍, 초록빛깔 알맹이



처음 아보카도를 먹었던 날은 약 10년 전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이다.

나는 딸 둘을 둔 필리핀 아주머니 댁에서 홈스테이를 했었는데 늘 운동하고 예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셨다.

가끔 애인인 아랍계열의 큰 키와 다부진 체격을 가진 아저씨와 거실에서 다투는 것 말고는 그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다툼은 늘 아저씨의 바람 때문이었다.)

바람기 다분하고 비교적 잘생긴 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주머니는 항상 몸매관리에 열중했는데 그때 빼놓지 않고 먹던 것이 아보카도였다.

아보카도를 처음 먹었을 때의 느낌은

“지우개 맛”

외국에는 맛있는 먹거리가 없나 보다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10년 후 누구보다 아보카도를 좋아하고 즐겨 먹을 줄은

10년 전에 나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보카도에 호의적으로 변한 계기는 타코집에서 먹은 과콰몰리 때문이었다.


토마토 양파가 씹히면서 바삭한 칩과 먹었을 때 상큼한 맛은 지금까지 먹어 보지 못한 정말 새로운 맛이었다.

게다가 한때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예쁜 여배우가 아보카도와 명란을 활용한 레시피를 보여주면서 한동안 대한민국은 아보카도를 정말 많이 먹는 나라처럼 보였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당최 아보카도가 왜 맛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아보카도의 맛있음을 설명하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다.      

맛 표현부터 생김새까지 아보카도의 참된 매력을 그럴싸하게 묘사하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을 꼽으라면 이 아보카도를 먹는 타이밍이다.

온라인으로 아보카도를 주문하면 한동안은 먹기가 정말 어려웠다.

생기 넘치는 초록색의 아보카도가 배송될지, 이미 익어버려 검은색에 가까운 초록빛을 띠는 것이 배송될지는 늘 받아봐야 알 수 있었다.

초록색 싱그러운 색상의 아보카도는 전혀 익지 않은 날것의 상태이기에 칼질을 하게 되면 내가 좋아하는 적당히 무른 식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날씨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주문 후 일주일 동안 익지 않고 딱딱한 상태를 유지하는 아보카도를 볼 때면  

“ 감히 날 요리해 먹겠다고? ”

라고 아보카도에게 놀림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꽤나 언짢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자칫 먹어야 할 시기를 놓치면 아보카도 속이 시꺼멓게 변해서 엉망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아보카도는 예쁘게 익은 그 순간! 타이밍이 중요하다.     

정말 오랜만에 예쁘게 속이 잘 익은 아보카도를 마주했다.

늘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아보카도와의 눈치게임에서 드물게 이긴 날이었다.     

이렇게 타이밍 좋게 잘 익은 아보카도를 자를 때면

아보카도가 크게 품고 있던 씨도 쏙! 잘빠진다.

검게 변한 껍질과 대비해서 속은 맑고 기분 좋은 초록을 품고 있다.     

상태 좋은 아보카도의 온전한 알맹이를 마주하면 이 예쁜 덩어리를 과콰몰리로 만드는 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과콰몰리는 형태를 다 으깨버려야 하니까!

이럴 때는 그냥 잘 썰어서 샌드위치에 올리거나 이것 자체를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먹어도 훌륭한 맛이다.

적당히 든든하고 기름진 맛!


피부건강과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니 더 건강함이 느껴지는 맛!          

이렇게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크기의 이 아보카도 하나 먹는 것도 타이밍 잡기가 어려운데 무언가를 계획하고 새롭게 시작할 타이밍을 잡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게 맞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나는 늘 하고 싶은 게 많다.     


실행력이 좋아서 마음만 먹으면 빨리 시작해 버리지만 매번 예쁘게 잘 익은 아보카도 같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때론 성급해서 잘 썰리지도 않았고 때론 너무 늦어버려서 속이 까맣게 변해버린 모양새처럼 일들이 어그러졌다.     

지금 나는 또 꿈꾸고 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하고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면 마치 과콰몰리를 만들기 위해 으깨놓은 아보카도처럼

머릿속은 뭉개져있다.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흐릿한 마음을 형상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꿈을 좇고

가족을 만들고

도전하고...

아쉽게도 여전히 어설픔이 가득한 모양이지만 이대로 쭉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속이 초록 빛깔로 잘 익은 아보카도 같은 결과물을 얻어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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