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계약직 김예지의 이야기
엑셀 셀 하나하나를 열 번째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김예지 씨."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박수혁 과장님의 목소리에는 아침부터 시작된 검토에도 지워지지 않은 오타 하나가 묻어있는 듯했다.
"이 페이스북 캠페인 데이터, 아직도 정리 중인가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더 검토하면..."
"또요? 아침부터 몇 번째인지 알아요?"
과장님의 한숨이 모니터 속 숫자들을 흔들었다.
"우리 팀 전체가 예지 씨 자료 기다리고 있다고요."
머리카락이 촉촉해지는 게 느껴졌다. 입사 한 달 차의 계약직 사원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의 할당량은 얼마나 될까. 이미 다 써버린 건 아닐까.
"어, 과장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목소리였다. 임하진이었다.
서울대 경영학과, 인턴 경력까지. 같은 시기에 입사했지만 그는 이미 정규직이었다.
"제가 준비한 다음 캠페인 기획안 검토 좀 부탁드립니다."
"오, 하진 씨. 역시 빠르네요." 과장님의 목소리가 한순간 부드러워졌다.
무의식적으로 모니터를 노려봤다. 임하진이 지난주에 정리한 데이터에서만 세 번의 오류를 발견했었다.
서울대 출신에 정규직이면서... 어떻게 저런 실수를?
하지만 과장님은 그저 빙긋 웃으며 넘어갔다. '하진 씨는 기획이 탁월하니까.'
점심시간, 구내식당 가장 구석 자리. 휴대폰을 켰다가 바로 껐다. 어제도, 그제도 못 본 척했던 문자.
[예지야, 오늘 월급날이지? 동생 등록금이랑 엄마 병원비...]
식판 위 숟가락에 비친 내 얼굴이 일그러져 보였다. 계약직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건 면접 때부터 알고 있었다.
"김예지 씨."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정다인 대리님이었다. 차갑다고 소문난 대리님의 목소리가 의외로 부드러웠다.
"오후 회의 자료... 제가 한 번 볼까요?"
순간 경계가 됐다. 내 실수를 찾으려는 걸까.
입사 후 처음으로 건네는 대리님의 말이라는 게 더 의심스러웠다.
"아... 괜찮습니다."
대리님이 잠깐 나를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하려다 만 듯한 표정이었다. 자리를 떠나는 뒷모습이 어쩐지 내가 아는 차가운 대리님과는 달라 보였다.
오후 회의 직전. 과장님이 내 자리로 왔다.
"예지 씨, 오늘 오후 회의에서 이 데이터로 발표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괜찮아요?"
괜찮을 리가 없었다. 아직 세 번은 더 검토해야 했다. 적어도 다섯 번은 더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네... 괜찮습니다."
회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손에 쥔 태블릿이 땀으로 미끌거렸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건 계약직의 숙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