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는 연봉을 받았고, 공공기관에서는 호봉을 받았다. 연봉제와 호봉제는 돈의 차이는 물론 직장생활의 차이도 만든다. 두 제도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차이가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연봉제는 임금을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제도로 전년도 성과를 기준으로 임금을 정하게 된다. 사기업에서는 대부분 연봉제를 적용하고 있다.
내가 다녔던 삼성, SK도 모두 연봉제였다. 1년에 한 번 인사팀이나 부서장과 면담을 하게 되는데, 이때 본인의 업무성과와 연봉에 대해 논하게 된다. 업무성과는 S, A, B, C, D로 구분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B다. B는 무난하다는 뜻이다. 잘하면 A, 못하면 C, 압도적인 성과가 있다면 S를 받는다. D는 본 적이 없다.
정확한 수치가 기억나지 않지만 A~C는 10% 내외, S를 받으면 20% 정도의 연봉인상효과가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이는 더욱 커지기 때문에, 사원에서 대리가 되는 4~5년의 기간만으로도 상당한 연봉 격차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6천만 원으로 시작한 사원 둘 중 한 명은 계속 S를 받고 한 명은 계속 B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5년 뒤 이 둘의 연봉 차이는 5천만 원이 넘는다.
이런 극명한 차이는 성취감과 불쾌감을 동시에 만든다. 성과를 위해 달리는 괴물을 만들기도 하고, 많은 것을 포기한 투덜이를 만들기도 한다. 중간 정도를 받는 사람들은 중간이 되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결국 모든 사람이 평가에 매우 예민해진다.
하지만 연봉제는 개인이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본인이 할 업무목표를 세우고 그 부분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것을 수행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책임에 대한 부분은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절차를 따른다면 성과 위주로 평가를 받는다. 좋은 의견이라고 판단되면 전체적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와 성취감을 크게 느낄 수 있다.
호봉제는 호봉표를 기준으로 연차에 맞춰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연차가 오를수록 일정한 급여가 오른다. 연봉제와 마찬가지로 업무목표를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급여에 연결되지는 않는다. 연차가 같다면 호봉도 같다. 서로의 급여를 서로가 알고 있다. 직원 평가는 하지만 정성적인 부분이기에 대부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호봉표 내의 임금상승률은 아주 낮다. 현 직장 호봉표의 연차별 기본급차이는 몇 만 원 정도이다. 매년 호봉표 전체가 갱신되지만 기본적으로 공무원 임금인상률을 따라간다. 이래저래 계산해 보면 결국 임금상승률은 1년에 5% 내외이다.
급여의 변동이 낮고 동료 간의 큰 차이가 없는 만큼 성과를 위해 매달리는 분위기는 없다. 그런 이유로 업무의 난이도와 양에 대해 굉장히 예민해진다. 뻔히 같은 급여를 받는데, 그 누구도 어려운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히, 민원과 관련된 일이라면 필사적으로 피하고자 한다. 가능한 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징계 없이 호봉 한 칸이 무사히 오르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아진다.
연봉과 호봉의 선호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다. 어느 제도를 적용받더라도 불만 있는 사람은 가득하다. 과도한 성과위주의 연봉제에 지치는 사람도 있고, 물가상승률도 감당하지 못하는 호봉제의 낮은 임금에 좌절하는 사람도 있다. 사기업과 공공기관의 사업성격이 다르듯 두 제도의 필요성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월급은 목표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자산으로 생각하자.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일정하게 들어오는 수입은 엄청난 힘이 있다. 그런 월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부자가 된 케이스를 실제로도 부지기수로 봤다. 월급쟁이 부자에 대한 책이나 유튜브도 찾아보자. 연봉이든 호봉이든 직장은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무언가를 절대 주지 않는다. 내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직장의 장이 되더라도 일개 월급쟁이일 뿐이다. 연봉과 호봉의 장단점을 가려내고자 힘쓰기보다, 각 제도 속에서 투자와 행복을 최대한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