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묵은, 그리고 오늘 묵을 숙소는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바닷가에서 걸을 수 있는 거리의 큰 오두막집이었다. 이층으로 되어있었고 일층과 이층에 킹사이즈 침대가 각각 두 개씩 있고, 일층에는 소파와 텔레비전 그리고 그 옆 아름다운 바닷가를 조망할 수 있는 큰 창문이 있었다. 창문으로 나가면 테라스가 있었다. 어제 숙소에 도착해서 리타와 내가 위층 침대에 짐을 풀었고 자연스럽게 마이클과 쌤이 아래층에서 묵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마이클과 리타는 이미 스노클링을 하러 나갔다.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스노클링을 하고 싶지 않다 미리 말해뒀다. 창 밖으로 나가보니 쌤은 어제저녁과 같은 자리의 테라스에서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노래를 듣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간단히 점심을 먹으러 아메리칸 빌리지 쪽으로 가지 않겠냐 물었다.
이름에 걸맞게 특유의 미국 서부의 느낌이 물씬 났다. 길게 즐비한 낮은 빌딩들 앞의 드넓은 주차공간. 길가에는 야자수나무, 버거집과 아이스크림 가게. 이곳저곳 구경을 하니 어느새 그림자가 길어졌다. 점심시간을 놓치게 되어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이자카야에 들어갔다. 쌤이 오키나와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고야칩을 안주로 먼저 주문했다. 한국에서는 여주라고 하는 이 채소를 나는 그때 처음 봤다. 익히지 않은 상태로는 먹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질 만큼 쓰다고 한다. 그리고 쓴 만큼 건강에 좋다고 한다. 근데 이것을 감자칩처럼 얇게 썰어서 튀겨놓으니 적당한 쓴맛에 기름의 고소함이 더해져 계속 손이 갔다. 그 후에는 떡에 가까운 식감의 땅콩맛 두부 지마미토후, 오독한 식감이 매력적인 돼지귀 조림, 두툼하고 달짝지근한 돼지고기 라후테 등을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는데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마법 같은 한 여름밤이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일층에 리타와 마이클이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이미 잠에 들어있었다. 스노클링이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컸는지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잠에 들어버린 채 밤을 맞이해 버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둘을 깨우기가 미안해 잘 준비를 마친 후 나와 쌤은 조용히 이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창문에 가까운 침대에 누웠고 쌤은 계단에 가까운 침대에 누웠다. 어딘가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잠에 들지 않았다는 서로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그쪽으로 가도 돼?”
“응?” 내가 채 되묻기를 끝내기 전에 그는 내 침대로 옮겨 왔다.
나는 벽과 침대 사이의 틈에 몸을 끼운 채 최대한 그에게 멀어지려 안간힘을 썼다. 내 마음을 조금도 몰라주는 그는 내게 자꾸만 가까워졌다. 불쾌하지는 않지만 또 환영스럽지도 않은 그의 존재감에 나는 문득 나의 어깨에 닿는 차가운 촉감이 떠올랐다.
“몇 년 전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 내가 자주 입는 하얀색 어깨가 보이는 티셔츠 알지, 그거 입고 카페에 앉아있었거든.” 그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근데 갑자기 어깨에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어. 뭔지 감히 추측도 못할 그런 눅진하면서 날카로운 촉감.”
그 당시 내 머리는 어깨의 촉감이 무엇인지 처리하기 전에, 내 앞에 앉아있던 은우의 눈이 경악으로 바뀌는 것을 먼저 알아차렸다. 방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하는 광활한 무지의 공포감을 먼저 느껴버렸다.
“뒤 돌아보지 마.”라고 은우가 말했다. 나는 다급하게,
“왜? 무슨 일인데?”라고 되물었다.
“그냥 뒤 돌아보지 마.” 그도 할 말을 잃었는지 그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바로 내 귀를 통과해 버렸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 뒤 테이블에 어떤 사람이 바지를 벗은 채 뭔가를 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그 사람이 나에게 닿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는 것과 그가 손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세히 볼 용기를 잃은 채 나는 곧바로 자리에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그 테이블 주변 사람들도 크지 않은 소리로 비명을 지르거나 놀라서 웅성대는 것을 창밖으로 바라봤다.
은우는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따라 나왔고,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침착하게 대응하기 위해 오히려 말을 아꼈다.
나는 쌤에게 이 사건을 “카페에 앉아 있는데 누가 내 어깨에 입술을 대고 갔다.”라는 문장으로 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그것으로 충분히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내가 그 사건으로 물리적 접촉에 있어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타인에 대한 친밀함의 안전거리가 두꺼워졌음이.
“그랬구나. 이런 느낌이었어?”라고 내 어깨에 입술을 대며 말했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하게도, 저 한 문장으로는 그런 상상력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내 말을 듣고 내게로부터 조금도 멀어지지 않는 그의 존재감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어깨쯤에서 느껴지는 그의 숨소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의 눅진하면서 차가운 촉감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바운더리가 철저히 말살되었음을 느꼈다. 바운더리는 모두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에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것은 나의 몫임을 안다. 그렇기에 그를 탓하지는 않지만 그저 언어의 한계를, 그 절대적으로 부족한 언어로 점철된 인간의 관계를 절절히 실감하는 고독한 그런 밤이었다.
그가 아는 몇 개월동안의 나는, 나라는 온 우주의 별 한 조각도 되지 않는다. 그런 나를 감히 이해한다고, 그런 나를 감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가 오히려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나를 모른다. 너는 나를 절대 모른다. 머릿속으로 강하게 항변하며 경멸의 눈으로 그를 응시할 때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제저녁처럼.
혹은.
오만한 마음으로 너처럼 단순한 인간에게 나의 복잡하고 정교한 세계를 알려주고 싶지 않아, 너에겐 그런 걸 이해할 능력조차 없어, 에 더 가까웠을 수도 있다. 나는 나를 설명하지도 않고, 이해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겨두었다.
쌤, 로랜드, 나의 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