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공정인가?
세상에는 남녀처럼 상반된 종류나 구분이 많다. 문과와 이과도 상반된 성격으로 보면 남녀만큼이나 차이가 클 것이다. 사람의 성향이나 일하는 방식은 문과와 이과처럼 이분법으로 구분하기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지만, 같은 조직에서 일을 하면서 타협이 가능한 차이가 있는가 하면 절대 불가능한 차이도 있다.
첫 징계위원회 경험의 의미
어느 제조업체의 공장에서 다수의 선임자에 의한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 금품갈취가 있었다. 비위 내용에 대한 조사가 있었고, 워낙 피해 사실이 장기간이고 명확했기에 신속하게 조사는 마무리되고, 징계 위원회가 열렸다. 징계위원 중 한 명은 이 회사를 다닌 지 수십 년 만에 징계위원회는 처음 참석해 본다고 했다. 처음엔 약간 의외였지만, 나중에 그 의미를 알게 됐다.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유사한 비위 행위가 조직 내 없었을까? 그보다는 그런 행위가 있었지만 이렇게 징계위원회와 같은 공식 절차를 거쳐 징계한 적이 없다는 의미라는 걸 알게 됐다.
그간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넘어갔다는 건가?
유사한 일이 생겼을 때, 공식적인 조사나 징계보다는 비공식적으로 금품 갈취했으면 돈 돌려주고, 맞은 건 사과하고 끝냈던 거다. 마치 수십 년 전 학교 폭력이 생겼을 때 선생님이 무자격 판사가 되어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억지 사과와 악수를 강요했던 것처럼.
그들만의, 그들만을 위한 공정
지극히 가해자와 조직의 안녕만을 위한 처리고, 어디에도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위로와 피해 회복은 없다. 최악은 유사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과 예방 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조직 문화는 한마디로 '젊은 혈기의 남자들끼리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 혹은 '맞으면서 크는 거다'와 같은 사고가 저변에 짙게 깔려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객관적인 사고 조사와 징계 절차를 고수한 리더가 있다면 그들의 눈에는 어찌 보였을까? 그저 피도 눈물도 없는 비인간적인 인간이고, 나도 걸리면 징계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라도 가지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 리더를 공격하고 왕따 시킨다. 전가의 보도인 우리 조직 문화에 안 맞는다고 매도한다.
언제나 계획이 있어야 한다
모난 돌로 취급받는 당사자는 어찌해야 하는가? 결국 키는 본인의 의지와 선택이 쥐고 있다. 이 조직의 문화는 바뀌지 않을 거다. 조직 문화가 바뀌는 속도와 시간을 감안할 때, 최소한 본인이 다니는 동안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중에 되돌아보면 본인이 그 변화의 작은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본인이 조직에 머무는 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본인이 변할 수 있을까? 사람도 조직만큼 안 변한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본인의 성향, 가치관과 다른 조직 내에서 롱런하고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남은 건 시간 벌기다. 그게 이직이든 새로운 길을 위한 것이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돌아올 수 없는 선만은 넘지 않길 바란다. 이렇게 버는 시간은 예측도 보장도 어렵다. 즉, 갑자기 계획보다 빨리 위기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넥스트를 준비하는 시간 벌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