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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거작가 Oct 24. 2022

임원 일 년 차의 교훈

그래도 임원의 지구는 돈다

 임원 일 년 차의 열두 달이 그야말로 후딱 지나갔다. 근거가 무언 지는 모르지만, 임원에게 부여된 연차 10개 중 단 하나만을 사용할 정도로 나름 몰입하고 올인했다.

 

 

 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준비된 임원까진 아니어도, 임원으로서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책에서 그려진 아주 이상적인 리더십과 조직관리도 해보고 싶었다. 더불어 이직의 가장 큰 유혹인 처음부터 시작해보는 Reset의 유혹도 컸다. 즉, 그간의 여러 시행착오와 사람들과의 누적되고 찌든 감정의 굴레들을 벗어나서 새로운 조직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래서 그간 책을 읽는 중간중간 울긋불긋 형형색색의 Tag을 붙여서 표시해 놓은 언젠가 실천해보고 싶었던 아이디어를 시도해 봤다. 가령 정기적인 회의체 없이 스스럼없는 소통을 도구로 상시 코칭과 피드백으로 대체하고, 무한도전의 노홍철을 능가하는 무한 긍정의 언어로 직원들에게 동기부여와 일하는 재미와 보람을 주고 싶었다. 또한 월급은 쑥쑥 못 올려줘도 역량과 커리어 성장이라는 선물도 주고 싶었다.

 


 몸과 마음을 바쳐 ㅇㅇ을 다할 것을

 

 또한 사람만 좋은 리더가 아닌 업무와 리더십 지식도 갖춘 문무 겸장의 리더가 되기 위해 경영학 박사 학위증의 잉크가 마를 새도 없이 자기 계발의 끈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브런치 작가 입문도 그 일환이며, 몸에 좋다는 건 무조건 먹는 심정으로 골프까지 시작했고, 그 의욕으로 무지막지한 초기 장비 구입과 레슨 비용도 감내해 냈다.


 심지어는 외진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느닷없는 아이스크림 구매 배달 요청도 이럴 때 쓰라고 회사가 법카와 임원 전용 차량을 준거라는 출처 분명의 논리까지 만들어가며 열심히 응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한 것이 스스로의 기대치만 올려놓아서 실망만 더 커진 느낌이다.  



 예전대로 하는 게 제일 좋다


 일 년을 훌쩍 지나 내년을 준비하면서 지난 한 해를 복기해 본 결과는 그냥 예전대로 하는 게 좋다이다.

그래서 임원이 주재하는 부서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를 마치고, 왠지 구성원들이 표정이 편안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회의 끝에 드는 생각은 임원은 혁명가라기보다는 기존의 틀안에서 작은 것부터 바꾸고 고쳐나가서 조직 안에 구성원들이 변화의 과정을 느끼진 못하지만, 결국엔 변화되어 있게 만드는 안개 같은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의 안개에 갇혀있으나, 안개처럼 무게를 느낄 수 없는, 그래서 구성원들이 최소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이랄까



 그래도 임원의 지구는 돈다


 그래도 미련은 남는다. 임원이 돼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단순히 책으로 배운 것들을 시도해 보는 의미뿐만 아니라, 20년이 넘는 조직 생활을 하면서 겪고 목격했던 부조리하고 불편 부당한 것들을 바꿔 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에게 다른 리더 혹은 임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왠지 나 역시 내 기억 속의 수많은 무기력한 임원 중의 한 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의 무기력함에 한번 실망하고, 그들의 최후의 모습을 알기에 나의 미래에 두 번 의기소침해진다. 마치 사람이 내일의 일을 알면 오늘 밤 편히 잠들지 못하고 모든 생물은 죽지만 죽음을 매 순간 의식하면서 살 수 없는 것처럼, 임원 노릇에 의욕이 없어진다.


 하지만 과거의 무기력해 보이는 선배 임원들의 점이 이어져, 선이 되어 계속 이어져 온 것처럼, 그 점이 조직과 구성원이 원하는 임원의 역할이라면 나도 점 하나 찍고, 조용히 소임을 다할 수밖에.


 그래도 임원의 지구는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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