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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새타니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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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yj Sep 01. 2024

너를 만나다 - 1

나라는 너는 늘 그렇듯 나를 울리고 웃기고. 지옥 같은 세상보다 더 나를 옥죄고, 누르고, 울리며 삶을 이렇게도 만들고 저렇게도 만든다. 늘 그렇듯 쓸쓸하고 늘 그렇듯 당연하게 나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늦게 일어났다. 모든 것이 무거운 아침은 네가 나한테 주는 인사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너는 오랜 시간을 공들여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늘 혼자 있게 하고 늘 쓸쓸하게 하고. 그리고 너만이 내 친구가 되어 긴 시간 너 아니면 안 되게 길들였다. 하지만 너는 아무런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이것은 너를 품고 살아온 나에 대한 배신이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본 적이 없다.     


화장실은 메케한 냄새와 어우러져 지저분한 곰팡이 자국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들도 나와 함께 길들여진 너의 친구들이고 스스로 배신한 나의 흔적들이다. 대충 머리를 감고 옷을 챙겨 입고 늘 그렇듯 아침을 거르며 출근을 서둘렀다. 다행히 나는 너 아닌 다른 세상의 한 부분에도 속해 있다. 비록 그것이 육체뿐이더라도 나는 그곳에서 평범한 척 살아갈 수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병원의 구석이다. 나는 여기서 청소를 하고 물건을 치우고 혼자 밥을 먹는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너와 함께 사람들을 구경한다. 나는 오랜 기간 이곳에서 일하면서도 친구를 사귀지 않았고 정해진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너는 내가 친구를 사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사람들 속에서 웃는 것도 싫어했다. 질투심 많은 네가 원하는 대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청소가 끝나면 조금은 지저분한 노년의 여자와 아무렇게나 웃어대는 중년의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며 낄낄대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다. 물론 나는 그곳에도 속해 있지 않다.        

   

“여기는 조용하다.”

네가 말을 거는 시간이다. 너는 오랜 기간 조용한 곳을 찾아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 조용하네.”. 

“저녁은 뭘 먹을까?” 너는 궁금하지도 않은 것을 물어 본다.

“그냥 아무거나.”

“저기, 시간이 얼마 없어.”

“알아.”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너도 더이상 아무 말이 없다.      


그 아이의 이름은 ‘한서아’였다. 서아는 치료가 어려운 병에 걸렸다고 했다. 

“너는 얼마나 아프니?”

“그냥 많이 아파요.”

서아는 얼핏 보면 건강한 듯 보였다. 

“너는 슬프니?”

“많이 슬프지는 않아요.”.

“아저씨, 아저씨는 슬퍼요?” 서아가 물었다.

“그냥 그러네.”

“아저씨. 아픈 건 슬픈 건가요?”

“그래. 슬플 수도 있지. 하지만 누구에게나 아픈 순간은 있어. 그렇게 생각하면 별로 슬프지 않아.”

“네. 그래도 저는 조금 슬픈 것 같기는 해요.” 서아의 표정은 알 수가 없었다.

“알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지는 고통이란다.”

나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서아는 옅은 표정으로 웃었다. 나도 그 아이의 표정을 흉내 내며 웃었다.

“애야. 너는 나와 말하는 것이 좋으니?”

아이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의아해했다.

“네. 왜요?”

“그냥.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과는 아무것도 하면 안 되거든.”

“아저씨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나는 그냥 있는 거지, 아무것도 아니야.” 

“저는 아파서 아무것도 못 하니까 그럼 저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글쎄. 너는 아무것도 못 하는 거지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란다.”

아이가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나도 또다시 아이의 웃음을 흉내 내며 웃었다.      

너와의 인연은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할 때쯤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이 두려웠다. 그들은 나에게 비난을 쏟아내고, 비웃기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실제로도 나에게 친절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가족에게도 버림받는 그런 존재니까. 


너는 그런 나에게 찾아왔고 무척이나 다정하고 따뜻했으며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그런 존재였다. 

“너를 만나고 싶었어.”

네가 처음으로 내게 한 말이었다. 나는 너를 쳐다봤다.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너는 누구야?”

“나? 나는 너의 친구.”

너는 웃었지만 나는 의아했다. 나에게 친구가 있었던가?

“너는 내가 알던 사람이야?”

나는 물었다.

“글쎄. 누군가가 너를 찾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찾아왔어. 그것뿐이야.”

“누가 나를 찾으라고 했어?”

“그건 차차 시간이 지나면 알게 돼. 여하튼 나는 자주 너를 찾아올 거야.” 

내 기억에 그때가 내게 처음으로 친구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너는 자주 찾아와 얘기도 들어주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다독여도 주었다. 내가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거라는 알 수 없는 말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라는 알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내내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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