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참 따뜻했다. 매서운 바람은 불지 않았고 그 흔한 눈도 내리지 않았다. 낙엽이 진 자리에는 살얼음이 맺히지 않았고 동물들도 겨울잠을 자야 하나 고민하던 그런 따뜻한 날들이었다. 선은 따뜻한 그 겨울에 태어난 사내아이다. 마을은 오랜만의 아이 울음소리로 경사였고 담장 밖에서는 잔치 음식 냄새가 진동하였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힘찼고 어미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아비는 사람들의 축하 인사에 우쭐하며 크게 웃어댔다. 모든 것이 완벽한 그런 날이었다. 선의 아비는 41세, 어미는 39세로 혼인 후 아이가 없던 부부에게 선은 선물 같은 존재였다. 마을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수다, 잔치 음식을 만드는 잡다한 소리로 당장 무슨 일이 생겨도 알지 못할 만큼 행복한 소음들로 가득하였다. 하지만 그날, 그 행복한 소리를 비집고 나온 것이 덕임의 비명이었다.
덕임은 소리를 지르며 마당 한구석을 가리켰고 그곳에는 자그마한 소년이 벌거벗은 채 피투성이가 되어 웅크리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아이는 대답 없이 손으로 마당의 흙 위로 자그마하게 ‘善’이라는 글자를 썼다. 아이는 피투성이였지만 전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너는 왜 여기에 있니? 어쩌다 다친 거야?” 선의 아비가 물었다.
“나는 다치지 않았어. 지금 막 세상에 나온 거야. 그건 너도 알잖아.” 아이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니?” 놀란 아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이는 웃으며 사라졌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다. 훗날 선이라고 불릴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만이 더욱 크게 들여올 뿐이었다.
선의 아비는 상인으로 이름은 도민이었다. 중인이지만 뛰어난 언변과 처세로 양반 못지않은 부와 권세가 있었다. 인물도 준수하여 소싯적에는 마을에서 연정을 품지 않은 처자가 없을 정도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혼사 후 수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었다. 첩을 들이라는 집안 어른의 성화에도 그저 언젠가 자식이 생기겠지 하며 차일피일 미룬 것이 어느덧 나이가 40이 넘어가고 있었다. 도민의 아비는 자주 그를 불러다 다그쳤다.
“네 나이가 이제 불혹이 넘었는데 아직도 후사가 없으니 어찌할 것이냐? 어미도 낯짝이 있으면 첩을 들이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봐 둔 아이가 있어. 다음 달에 집안에 들일 것이니 너도 그리 알아라.”
도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첩을 들이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부인과의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실 도민은 아내를 극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집안의 장남인 자신에게 후사가 없으니 이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도민은 알았노라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꼭 스무하루 지난날 용선이라는 아이를 첩으로 들였다. 그 아이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쌀 몇 가마니에 팔려 왔다. 뽀얀 피부에 붉은 입술이 도민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 무렵부터 월영은 나날이 말라갔다. 남편은 더는 자신을 보고 웃지 않았으며 첩에 밀려났다는 주변의 수군거림도 갈수록 심해졌다. 월영은 어느 순간부터는 방 밖을 나오지도 않았다. 말도 하지 않았고 먹지도 씻지도 않았다. 하지만 도민은 월영의 고통을 돌보지 않고 용선에게만 취해있었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용선이 임신을 하였다. 이제 도민의 처가 설 자리는 그 집안 어디에도 없었다. 월영은 더럽고 추한 몰골로 변해 갔고 사람들은 곧 집안에 곡성이 들릴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 곡성은 월영이 아니라 용선의 것이었다.
월영은 18세 되던 해에 도민과 혼례를 치렀다. 처음 도민을 본 순간부터 사모하는 마음이 커져 자신의 인생을 모두를 남편과 함께하겠노라 결심했었다. 도민도 새초롬한 월영이 마음에 들었고 둘의 금슬은 마을에서도 유명했다. 인물 좋고 돈 많은 두 명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월영은 이 행복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도록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집안의 장남인 도민은 아들을 원했지만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아들은 커녕 임신 소식 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도 대놓고 첩을 들여야 한다고 얘기하니 월영의 마음은 나날이 조바심으로 가득해졌다.
“서방님, 제가 임신을 할 수 없으니 서방님이 첩을 들여야 할까요?” 월영이 이렇게 물으면 도민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자신은 월영만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따뜻했던 도민은 용선이 나타나고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자신에게 보내주던 따뜻한 미소는 이제 용선의 것이 되었고 방구석에서 산송장이 되어가도 도민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움은 미움이 되고 슬픔이 되고 분노가 되어 월영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용선은 참으로 잘 웃는 아이였다. 어린 시절 자신처럼 뽀얀 피부와 도톰한 입술이 무척 예뻤다. 그 아이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으면 월영은 더 집안에서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월영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니 먹을 수도, 씻을 수도, 말할 수도 없이 원망과 분노만이 커지고 있었다. 그러던 무렵 마을에서 잡신을 섬기며 궁합이나 봐주던 무당이 월영을 찾아왔다.
“마님이 잉태하고 나으리도 다시 찾을 방안이 있습니다.”
월영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무당은 막 죽은 아이의 시신을 가져다가 제를 지내고 목 없는 짐승의 사체를 그 앞에서 태우면 모든 것은 월영이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 했다. 단, 아이는 죽은 지 하루를 넘지 않아야 하며 절대로 살인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를 죽여 제를 지내면 반드시 큰 원흉이 생긴다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그날부터 월영은 병으로 죽은 아이를 찾아 마을을 헤매 다녔다. 사람들은 그런 월영을 보고 미쳤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월영은 쉬지 않고 아이를 찾아다녔지만 여의치 않았다. 설령 아이가 죽었다고 하나 부모가 아이의 시체를 월영에게 줄 리도 만무했다.
사실 용선은 첩으로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이 참으로 좋았다. 비록 팔려가는 신세이지만 상대가 도민이라면 달랐다. 도민을 시장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었고 비록 나이 많은 사내의 첩이지만 그의 부인이 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들떴다.
드디어 혼사를 치르던 날, 용선은 그날이 세상의 마지막이라도 좋았다. 도민은 다정했고 나이 많은 자신에게 첩으로 오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용선은 아들을 낳아 도민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도민의 처는 용선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그녀는 용선을 자주 불러 ‘너는 씨받이이니 아이를 낳으면 집에서 나가라.’는 말을 했다. 처음에는 그냥 넘어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들이 무척이나 짜증 나고 불편했다. 그래서 아들을 낳으면 본처부터 소박을 맞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월영은 점점 미친 사람처럼 씻지도, 먹지도 않으니 저리 미치면 소박맞는 것도 어렵지 않겠구나 혼자 흐뭇해하기도 했다.
“서방님, 제가 아이를 낳게 되면 이 집에서 나가야 하나요?” 어느 날, 용선이 도민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도민은 되물었다.
“형님께서 저에게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당신은 아이와 나랑 함께 있을 것이요.”
도민의 다정한 위로에 용선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둘은 행복에 취해 월영의 상태가 심각해져 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월영이 죽은 아이를 사러 다닌다는 소문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순간 월영이 미치면 내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용선이 출산하던 날, 힘차게 울던 아이의 탯줄을 자르던 산파는 웃으면서 아이를 월영에게도 보여주었다. 참으로 잘생긴 사내아이였다. 하지만 이레 후 용선이 잠이 든 틈을 타 월영이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아이를 찾아달라 울부짖던 용선의 울음소리는 담장을 넘어 마을 전체에 곡소리처럼 퍼져갔다. 월영이 사라진 사이에 용선은 조리도 못 한 채 그 옛날 월영처럼 정신이 나간 모습으로 아이를 찾아 헤매 다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마을 어귀에서 얼어 죽은 송장으로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첩이 본처 자리를 노리다가 벌 받았다고 수군거렸다. 월영이 미쳤다고 수군거리던 그 모습 그래도 용선을 비아냥거린 것이다.
도민도 아이를 찾아다니느라 용선을 신경을 쓰지 못했다. 용선이 송장으로 발견되었을 때도 슬픔보다 분노가 가득했다. 용선이 살아있을 때도 도민은 왜 아이를 보살피지 않았냐고 용선을 자주 다그쳤다. 다정하던 모습은 온 데 간 데도 없이 자신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도민을 보고 용선은 불안했다. 아이를 찾지 못하면 도민에게 내쳐질 것이 분명했다.
그 무렵, 마을에서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월영이 아이를 훔치고 죽였다는 소문이었다. 마을 외곽에는 목이 없는 염소의 사체가 불태워진 채 발견되었고 이는 월영이 용선에게 저주를 퍼붓는 굿을 한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용선이 마을에서 송장으로 발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월영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월영을 본 도민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부인이 무슨 짓을 한지 아시오. 아이는 어디에 있소?”
월영은 덤덤하게 말했다.
“아이는 없습니다. 아이는 태어나서 얼마 뒤 죽었고 그것을 서방님과 용선이 알게 된다면 너무나 슬플 것 같아 제가 제를 지내주러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아이는 분명히 살아있었소.”
“아닙니다. 아이는 무엇이 불편했는지 한참을 울더니 얼굴이 파래지고 그대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도민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오나 서방님, 제를 지내던 중 점괘를 봐주던 무당이 올해 안에 제가 잉태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월영은 살포시 웃었고 도민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 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용선의 소식을 들은 무당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월영이 정말 그것을 한 것이다. 만약 월영이 아이를 죽인 것이라면 그 아이는 새타니의 사신이 되어 월영의 통해서 세상에 나오려고 할 것이다. 무당은 절대로 열면 안되는 지옥의 열쇠를 월영에게 쥐어준 꼴이었다.
월영은 무당을 보자 한달음에 뛰어왔다.
“내가 자네 말대로 했더니 정말 임신이 되었어.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월영은 진심으로 기뻤했다.
“마님, 혹시나 하여 물어보는 것인데 혹시 그 아이가 용선의 아이였습니까?”
월영은 무표정했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럼 혹시 제를 지내던 중 사내아이 한 명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사내아이?”
“네. 사내아이입니다. 혹시 그 아이를 보았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살인은 안 된다고, 만약 마님이 아이를 죽여 제를 지냈다면 반드시 그 아이는 마님의 아이를 통해 세상으로 나오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멸문과 피의 복수를 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월영은 몹시 놀랐다.
“사내아이가 나타났습니까?”
“그게….”
월영은 머뭇거렸다.
“혹시 나타났다면 그 아이가 마님에게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그래. 맞다.”
“무슨 말이었습니까?
“그 아이는 나에게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善’이라고 지어달라고 했어. 그리고 반드시 찾아오겠다고.”
“큰일입니다. 마님. 그 아이는 절대 태어나서는 안 됩니다.”
“자네, 무슨 방도가 없겠는가? 내 이 아이는 절대 포기할 수가 없어.” 월영을 울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억울해서 그 년과 그 아이를 볼 수가 없었어. 처음에는 그 아이를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점점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하지만 이 방법을 알려준 게 자네이니 해결할 방법도 알려주게.” 월영을 매달렸다. 하지만 무당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