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너와의 세상 속에서만 살던 어느 날, 너는 나에게 민준이를 만나라고 했다. 그리고 세상을 도와주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면서 선택할 수 없는 죽음은 없다고 말다.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알 수 없던 우정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던 순간이.
민준이도 내가 일하는 병원의 환자였다. 아이는 암환자였고 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너는 아이의 죽음을 앞당기라고 했다. 그것은 너와 내가 처음으로 같이 하는 일이라고.
“왜 그렇게 심각해요?”
처음 만난 날 민준이가 물었다.
“아니, 안 심각해.”
민준이의 표정은 슬퍼 보였다. 아이를 보고 있으니 너의 말처럼 민준이의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가? 나는 이 일에 아무런 반감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즐겁지도, 끔찍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감정이 없었던 사람이었나? 이런 것이 옳은 일인가? 의구심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깊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늘은 아프지 않아?”
나는 민준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요. 오늘도 아파요.”
나는 더 묻지 않고 준비한 것을 꺼냈다. 민준이는 이제 고통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 순간 민준이가 고통없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설렘도 느꼈다. 두려움이 아닌 설렘이라니. 나는 조용히 그를 보낼 준비를 했다. 주사기에 염화칼륨을 담아 그의 팔에 주사했다. 민준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이 상황이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이게 뭐지? 왜 아무렇지 않지? 내가 미친 건가? 민준이는 잠시 꿈틀거리더니 더 움직이지 않았다.
“다 끝났다고 생각해?” 민준이가 마지막 숨을 넘기던 순간 네가 다시 나타났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나는 되물었다.
“네가 역겨워.” 네 말은 진심처럼 느껴졌다.
“이건 네가 시킨 일이야.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했어?”
나는 다소 짜증 나는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정말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난 것은 아니었다. 너는 웃으며 민준이를 쳐다봤다. 나도 아이를 바라보았다. 민준이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의 행복이 잠시 부러웠다. 그리고 다음 순간,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역겨움이 밀려왔다. 너는 말했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한 다음이 있을 거라고.
네가 말한 다음은 그녀였다. 그녀는 원무과 직원으로 늘 사람 속에서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행복이 낯설고 어색했다. 그녀는 병원에서 나를 만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하듯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왜 너에게 웃을까? 너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럴때면 너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그냥 웃는 거야. 아무 의미도 없는 인사야.”
“너의 두려움을 무시하고 너에게 친절을 베푸는 척 비웃었어. 너도 불편하지 않았어?” 사실 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모두 불편하다.
“너는 왜 그렇게 모든 것이 나쁘다고 해?”
“그건, 네가 그렇기 때문이야. 너는 슬프고 외롭고,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존재니까” 나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웃는 것도 행복한 척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그날 나는 그곳에 갈 수 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웬일이세요? 병원이 아니라 밖에서 보니까 반가워요. 근처 사세요?”
그날, 그녀는 늘 그렇듯 웃으며 인사했다.
“아니요. 이곳은 아주 조용한 마을이네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네. 조용해요. 그래서 여기에 사는 것이 좋아요.”
그녀는 또 웃었고 나도 그녀의 웃음을 흉내 내며 웃었다.
“여기 동네가 조용하고 월세도 저렴해요.”
그녀는 또 웃었다. 미소가 참 예뻤다. 너의 말대로 그녀의 웃음은 나에게는 알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가 피로 번져가도록, 그리고 그 미소가 고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도록 그녀를 내려쳤던 것일까? 그날 그곳에는 사라져 버린 웃음과 커지는 비명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런 밤이었다.
“너는 행복해?” 일을 끝내면 너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는 되물었다.
“난 네가 웃지 않았으면 좋겠어.” 잠시 뜸을 들인 후 너는 대답했다.
“왜?”
“네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로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가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
“나는 원래 아무것도 없었어.”
“그래. 그래서 내가 옆에 있는 거야.”
“나를 떠나 주면 안 돼?”
“왜? 내가 떠났으면 좋겠어?” 나는 무슨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서아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물었다.
“생각해 봤는데. 어차피 아파서 사라질 아이야. 일찍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하지만 아이는 두려울 거야. 준비하고 있던 죽음이 아니잖아.”
“준비된 죽음이란 없어. 누구나 알 수 없는 시간에 알 수 없는 곳에서 사라지는 거야. 왜 갑자기 두려워진 거야?
“그 아이에게 알 수 없는 죽음이란 공평하지 않아.” 나는 머뭇거렸다.
“어느 순간도 우리는 공평할 수 없어. 그리고 잊었어? 네가 한 모든 것도 공평하지 않았어.” 너는 확고했다.
“사라지는 것을 슬퍼할 필요 없어. 그 아이도 네가 사라지는 것에 관심이 없을 거야. 모든 것은 사라져.”
“그래.” 나는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늦게까지 남아 병원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병원은 내가 세상과 단절되지 않은 유일한 곳이다. 여기서 나는 사람들을 만났고 무료한 시간을 보냈으며 사라지지 않는 너와 사라지는 사람들을 관찰했었다. 하지만 오늘 서아를 마지막으로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 더는 사람들의 시간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고 오랜 기간 나를 괴롭혀온 지옥 같은 세상이라는 공간에도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저씨. 죽으면 아프지 않을까요?” 서아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왜 그렇게 물어봐? 사라지고 싶어?”
“아뇨. 사라지는 것도 죽는 것도 싫어요.”
“나는 사라지고 싶어.”
“왜요? 아저씨는 가족이 없어요?”
“가족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가족은 그냥 가족일 뿐이지.”
“아저씨는 왜 계속 슬퍼요?” 아이는 걱정스러운 듯 물어보았다.
“나는 계속 슬픈 게 아니야. 솔직히 슬픈 게 뭔지도 잘 모르겠어.”
“저는 요즘 좀 슬퍼졌어요. 아프지 않으면 좋겠어요.”
“아저씨가 아프지 않게 해줄까?”
“어떻게요?”
“사라지는 거지.”
“죽는 건가요?”
“그래.”
나는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아이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나를 보고 웃지도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너처럼 조용하고 너처럼 냉정한 듯 다정했다. 마치 그 아이에게서 너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뻗어 서아의 얼굴을 세게 쓰다듬었다.
“아저씨 왜 이러세요?” 아이는 갑자기 겁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더욱 세게 쓰다듬었다. 이내 서아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멈추지 않았고 이윽고 아이의 목을 손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울음과 괴로운 심음이 잦아들 때쯤 나는 머리에 큰 통증을 느꼈다.
나에게 세상은 언제나 공포였다. 매 순간이 두렵고 무슨 일이든 어려웠다. 사람들이 무섭고 나 자신이 비참했다. 사랑을 한 적도 받은 적도 없는 그런 쓸쓸한 인생이었다. 내 유일한 친구는 나였고 세상은 내 안에만 있었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나를 증오했고, 학대했고, 죽음을 통한 비참한 최후를 항상 기다려왔다. 서아의 목을 조르던 그 순간도 참을 수 없는 자기 환멸이 느껴졌다.
내가 서아의 목을 조르는 동안 주변에서 사람들이 달려드는 모습을 본 것도 같다. 심한 머리 통증으로 의식을 잃었고 다시 눈을 떠서 병실에 누워있던 순간에도 전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에 묶여 있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디선 본듯한 의사와 간호사가 어떤 것을 물어본 것도 같았지만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또다시 그곳에서 눈을 떴다.
“여기는 조용하다.” 네가 나타났다.
“나는 네가 떠난 줄 알았어.”
“우리는 그 아이는 보내지 못했어.” 너는 몹시 차갑고 화가 난 듯하지만 큰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너는 나를 사랑하니?” 네가 물었다.
“아니.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
“근데 왜 나와 함께 했어?” 너는 또 물었다.
“나는 너밖에 없었으니까.” 정말이었다. 나는 너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너를 허상이라고 하지만 나는 너 아니며 정말 아무도 없었다. 그건 정말 공포였다. 진짜 혼자가 되는 공포.
“너는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너는 다시 물었다.
“궁금하지 않아.” 나는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졌다.
“지금 떠날 거야?” 내가 물었다.
“글쎄.”
“나는 네가 없으면 어떻게 지낼지 모르겠어.”
“만약 내가 없다면 예전 그때처럼 사라지고 싶겠지.”
“네가 나를 지켜준 거 알아.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아니지만 살라고 잡아준 것이 너라는 것도 잘 알아.”
“그래.”
“그래도 이런 삶은 싫어.”
“알아.”
그때 간호사가 들어와서 팔에 주사를 놓았다. 나는 간호사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너를 불렀다.
“안 가면 안 돼? 나는 또 외로울 텐데.”
“나는 떠나지 않아. 곧 너는 나와 함께 세상 속으로 걸어갈 거야. 우리만의 세상. 그 길은 네가 열어야 해. 그래서 나는 곧 돌아올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너는 방에서 사라졌다. 나는 너의 말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너를 사랑하지도 못한 채 다시 세상에 혼자 내몰렸다. 또다시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아야 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