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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새타니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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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yj Sep 01. 2024

인연의 순환

나는 중학교 때부터 환영에 시달렸다. 많은 사람이 수없이 말을 걸어와 깨어 있는 내내 숨을 쉬기도 어려운 고통의 연속이었다. 혼자 중얼거리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부모님도 나를 무서워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선명하고 잔인하게 내 인생에 파고들었고 나는 점점 혼자가 되어갔다. 나는 친구가 없었고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부모님조차 등을 돌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내 인생은 붙박이장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처음 나에게 말을 걸었던 환청은 자신이 무당이라고 했다. 그 옛날 내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봉분에 봉인되어 있으며 언젠간 나를 태워 죽인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 목소리는 잔인하게 계속되었지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여러 명의 목소리도 있었다. 자기의 아이를 돌려달라고 흐느끼는 여자의 목소리, 내 집에서 나가라는 날카로운 소리, 내 아들을 찾아 달라는 남자의 힘없는 목소리…. 그리고 나지막이 내 이름은 부르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     


내가 정신과 약에 취해서 혼자 겉돌고 있을 때도 세상은 이상기온과 가뭄으로 곳곳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이상한 것은 그 화재는 반드시 대량의 인명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마 그해에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기억이 된다. 뉴스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얼굴과 어이없는 죽음에 대한 추모로 가득했다. 무슨 화재가 그렇게 자주 생기고,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냐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수없이 오고 갔다. 또 오랜 가뭄으로 여러 가지 질병도 많았고 사라진 줄 알았던 천연두가 다시 나타나는가 하면 처음 들어보는 바이러스도 창궐했다. 세상은 그야 말론 종말처럼 느껴졌다. 교회마다 사람들로 넘쳐났고 온갖 종류의 사이비가 판을 쳤다. 그렇게 혼돈한 시절이 계속해서 이어질 무렵 우리 집에도 불이 났다. 그 불로 부모님과 누나가 죽었다. 그날 아파트 화재로 1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지만 소방서에서는 화재의 원인은 모른다고 했다. 합선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겨우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고등학교 시절은 없었다. 나는 부모님의 보험금으로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고 그곳에서 수년간을 치료를 받았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며 그렇게 10대가 끝났다. 그리고 20살이 되던 해 나를 진료하던 원장님은 내가 공격성은 없다고 했다. 원하면 외래 진료를 받으면서 검정고시를 볼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말씀해 주시는 좋은 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울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저 적당한 곳을 찾아 죽기를 바랬을 뿐이었다.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세상을 떠나는 것은 내 의지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대둔산 마천대를 향했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저 거기로 가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정말로 죽었다. 마천대에 도착해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나무를 골라 목을 맸고 의료진들도 그날 내가 정말 죽었다고 했다. 산악경비대가 발견했을 때 벌써 저산소증이 진행되었고 심장이 거의 멈춘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나는 다시 살아나 버렸다. 그렇게 겨우 목숨만 붙여서 8년을 침대에 있었고 눈을 뜨니 나는 28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2년을 재활치료를 받았고 병원 원장님의 도움으로 병원 청소부로 일하게 될 때까지의 기억은 거의 없다. 나는 살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희망을 위해 살아야 했고 재활치료도 받아야 했다. 내가 다시 일어난 것은 기적이었고 이것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이 된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살고 싶지도 않지만 왜 살아야만 하는지는 모른 채, 그렇게 2년의 재활 끝에 다시 사회인으로 돌아왔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8년 동안 세상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계절은 다시 더워지고 있었고 사라졌던 대형화재도 자주 발생했다. 그리고 겨울이 사라진 것도 확실했다. 사람들은 점점 전염병에 적응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암에 걸리는 비율이 늘어났고 알 수 없는 질병들도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너는 나와 함께였다.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앳된 얼굴을 한 젊은 청년이었다. 처음에는 고등학생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자세히 보니 대학생처럼 보이기도 하고 얼핏 보면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는 자신은 아직 자라고 있다고 했다. 너는 분명 환시인데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그 많은 환청이 공포와 두려움, 슬픔을 줬다면 너는 안도감을 주는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정신과 약물로 항상 멍한 상태였고 가끔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침을 흘리거나 걸음을 똑바로 걷기도 힘든 그야말로 멍청이였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네가 두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는 나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그리고 너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너는 내가 싫다고 하지만 늘 곁에 있어 주었고 내가 마지막 퍼즐이 되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자신은 이제 마무리라고. 그리고 그 마지막은 반드시 내가 해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네가 하는 황당한 말들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사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도 믿을 수가 있었다. 내가 오래전에 한 실수로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으니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너의 말도 진실되게 느껴졌다. 사라지는 겨울만큼 이상한 모든 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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