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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새타니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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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yj Sep 01. 2024

사라진 겨울 - 1

뉴스에서는 연일 날씨 얘기뿐이다. 뉴스 초대석에는 저명한 인사라는 박자가 초대되어 지구 종말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태양계 질량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태양의 이상으로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또 강력한 flare가 태양에서 발생해 지구가 폭발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조만간 초대형 화산의 폭발로 핵겨울이 찾아올 것이라고도 설명하고 있었다. 뭔가 뒤죽박죽 섞인 듯한 박사의 설명은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구가 멸망한다는 박사의 설명과는 상관없이 일상을 살고 있었고 식당도 門前成市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이 인간의 적응력인지 이기심인지 알 수 없지만 대량의 화재와 인명 사고도 남의 일인 양 아무렇지 않게 일생을 이어가는 것이다. 


김성진 박사도 사실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뉴스에서 말한 것은 그냥 헛소리였다. 왜 겨울이 사라지고 전 세계가 더워지고 있는지는 어떠한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태양과의 거리도 그대로이고. 화산은 분화하지 않았고. flare도 생기지 않았다. 지구와 충돌이 예상되는 운석도 없다. 그런데 왜 세상이 뜨거워지고 있는 걸까? 이게 정말 지구 온난화인지 지구 종말론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는 머리도 식힐 겸 형을 찾아가기로 했다. 형은 최근 재미있는 노인을 만났고 함께 면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하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지금의 날씨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김박사도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성진아, 인사드려. 이 어르신은 김선이라는 분이셔.”

박사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기관절개관과 레빈관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노인 환자였다.“

“안녕하세요.” 노인은 기관절개관이 구멍을 막으면서 얘기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노인은 기관절개관 때문에 말을 하기 힘들고, 절개관의 구멍을 막으면서 얘기하면 의사가 잘 전달되지 않을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박사는 괜찮다며 안심시켰지만 형이 이 노인에게서 꼭 들어야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노인 환자이고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도대체 이 바쁜 시간에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슬슬 짜증도 났다. 


“1760년 경진년에 김선이라는 사람이 김가의 도민이라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아마 그 무렵 역병이 돌고 곳곳에 불이나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혹시 그때 일을 알고 있나요?” 

노인은 힘겹게 말했다. 

“아니요.”

“박사님, 김선이라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 주세요.”

“누구요? 1760년대 사람이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저는 얼마 전에 불에 타 죽는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저는 불에 타고 있었지요.”

이 환자는 미친 것이 분명하다. 박사는 더는 노인과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르신,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저는 바빠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김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진아. 잠시만 기다리고 한번 들어봐.” 형은 김박사의 어깨를 누르며 앉으라고 눈짓을 주었다.

“제가 하는 말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단 김선을 찾아 주세요. 그가 어디에서 살았고 어디에서 죽었는지 꼭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던 송연이라는 아이의 기록도 부탁드립니다. 그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더워지는 것이 아니라 뜨거워져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에요.”

노인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날 새타니가 저를 죽이지 않은 것은 제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에요.”

“새타니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김박사가 노인에게 물었다. 

“김선과 송연을 찾아 주세요. 그러면 제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침대에 누웠다. 김박사의 형은 눈짓으로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형. 이게 무슨 말이야?” 김박사는 방을 나오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사실 나도 모르겠어. 우리 병원 환자인데 예전부터 정신분열증으로 장기간 치료도 받았고 뇌출혈로 무의식 상태로 식물인간인 적도 있었던 환자야. 근데 면담 도중에 자기는 환청 때문에 살인도 했고 그래서 근 40년간 의식을 잃을 채로 살았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그래서 기록을 찾아봤어. 그런데 젊을 때 자살에 실패하고 8년 식물인간으로 있었던 적이 있고 30살 쯤에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말기 암환자를 살인한 기록이 정말 있더라고. 하지만 이상한 것은 40년 동안 병원에서 무의식 상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잠적한 것으로 되어 있어. 정신과에서 탈출해서 사라진 환자를 최근에 노숙자로 발견한 거야. 너도 기억나지? 아동 암환자를 살인한 청소부. 뭐 그런 뉴스가 본 기억 있지? 그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주장하고 있어.”

“형, 나는 미친 인간들의 인생사나 들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요즘 정말 미치도록 바쁘다고.” 김박사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성진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어르신이 우리 병원에서 깨어나던 날 정말 화재가 있었어. 그 어르신 병실에서.”

“뭐?”

“이거 한번 볼래?”

박사의 형은 컴퓨터를 가리켰다. 화면에는 노인이 누군가와 얘기하듯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환청 때문에 누군가랑 얘기하는 줄 알았어. 근데 이것 봐.”

화면에는 갑자기 노인의 몸에서 점점 불길이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이게 뭐야? 합성이야?” 김박사는 놀라서 물었다. 

“아니, 정말 화재가 있었어. 잘 봐. 불길이 몸에 번지는데 어르신은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있어. 지금은 좀 나아져서 손도 움직일 수 있지만 이때는 몸도 가누기 어려웠을 때이거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게 신기하지 않니? 이건 정말 합성이 아니야. 내가 확인도 했어.”

“아까 어르신은 화상 자국은 하나도 안 보이던데?” 김박사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게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정말 병동에서는 화재가 있었고 어르신의 침대는 전소되었어. 근데 불길 속에 있던 어르신은 멀쩡하다는 거지, 너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니?” 

김박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르신은 계속해서 김선만 얘기하고 있어.” 

김박사는 컴퓨터 화면에 시선이 고정된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를 부른 거야. 어르신 말씀하신 김선을 찾아 줄 수 있어? 세상이 더워지는 이유를 못 찾았다면 어르신 말씀대로 과학이 아닌 다른 이유를 찾아볼 수도 있잖아.”

“형. 이거 누가 또 알아? 경찰에는 신고했어?”

“아니. 병원 식구들은 몇 명 아는데 소문내지 말라고 했어. 장난으로 만든 것 같다고 둘러댔지. 근데 정말 이날 어르신 병동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고 만든 화면도 아니야. CCTV로 다 확인했어. 부탁인데 성진아. 꼭 김선과 송연을 찾아줘.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찝찝함이 있어. 내가 인터넷으로 아무리 찾아도 김선과 송연이라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어. 너는 정보를 더 많이 접할 수 있으니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김박사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이거. 아직 신고하지 말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내가 좀 더 알아볼게.” 그의 머릿속으로 누군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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