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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새타니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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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yj Sep 01. 2024

설희

지구 온난화로 겨울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설희는 기상청에서 따뜻한 겨울에 대한 정보를 받아 라디오 브리핑을 준비 중이다. 기상캐스터로 근무한 지 5년째인데 이렇게 뜨거운 겨울은 처음이었다.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긴 지 오래이다. 텔레비전에서는 환경 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연일 방영되고 뉴스에서도 지구 위기에 대한 특별 보도가 수시로 나왔다. 몇 년 전인가. 8년 정도 날씨가 더워지는 속도가 느려지더니 최근 2년간 다시 급속도로 더워지고 있었다.      


“진짜 결혼도 하기 전에 지구가 망해서 다 죽는 거 아냐?” 

설희의 친구인 민정은 오늘도 투덜거린다. 

“글쎄….”

설희도 최근 날씨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정말 우리나라 날씨가 아프리카 열대 기후로 바뀌는 건지, 겨울에도 벌레가 사라지지 않았고 한여름 같은 날씨가 두렵기까지 했다. 겨울잠을 자지 않는 동물들에게도 더 많은 음식이 필요하고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세상의 종말에 온다며 사이비 종교들도 극성을 부렸다. 

그래서인지 설희가 날씨 안내를 하고 나면 전화기 불이 난 듯 민원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마치 이 모든 것이 기상캐스터가 탓인 듯 갖은 불만을 쏟아냈다. 사실 이런 따뜻한 겨울은 여러 해를 거쳐 진행되었다. 벌써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은지도 여러 해가 되었고 더는 꽃도 지지 않았다. 올해가 유난히 더웠지만 작년에도, 그리고 그 전해에도 지독한 더위가 계속이었다.

      

설희는 처음에 그도 민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공영방송에서 날씨를 전달하다 보니 그런 사람들이 꽤 많았다.

“겨울에 꽃이 피니 이제 사람들의 마음에 겨울은 없겠군요.”

그가 전화로 처음 꺼낸 말이었다.

“죄송합니다. 날씨 관련 사항은 기상청에 문의 부탁드립니다.” 설희는 짜증 났지만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처음 사라지는 것은 동물이지만 머지않아 사람들도 그 자리에 있기는 힘들어지겠지요.”

설희는 알다가도 모를 말을 하는 그에게 점점 짜증이 났다.

“저기, 선생님. 기상청에 문의하시기 바라고 저는 이만 끊겠습니다. 그리고 제 자리 번호를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다시는 전화하지 말아 주세요.”      

하지만 그 전화는 다음 날에도 같은 시간에 걸려왔다. 

“이제 계절은 더 뜨거워질 겁니다.” 그는 인사도 없이 대뜸 말했다. 

“저기 선생님….” 설희가 대답도 하기 전에 수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 제가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몹시 기분 나쁜 전화였다.     


다음날, 그는 전화가 걸려오던 그 시간에 정확하게 나타났다. 로비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은 마치 지옥으로 가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가 왜 나를 찾아오는 거지? 그는 누구지? 나를 아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과 달리 전혀 이질감이 없는 평범한 외모였다. 그 전화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는 것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안녕하세요. 왜 저를 찾아오셨어요?” 설희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그는 전혀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아세요?

그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가 어느 시절에 함께 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저는 처음 뵙는데요.”

“그렇군요. 저는 선이라고 합니다. 

”네. 저는 이설희라고 합니다. “

“잠시 같이 걸을까요?” 그는 살짝 웃으며 설희에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겨울 같지 않은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붉은 꽃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설희는 왠지 이 낯선 남자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진짜 언젠가 만난 적이 있던 것 같았다.      


설희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그곳은 많은 이유로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연이 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사연을 가진 아이들, 그중에서 가장 사연 많은 아이가 설희였다. 가난한 부모가 여기저기에 맡겨 키우다 갓 10살이 되던 해 이곳 보육원으로 보내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독종으로 자랐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고 누구와도 친구가 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이 설희는 자신의 상황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그저 오래 정해진 운명처럼 모든 것이 덤덤했다.


설희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보육원에 무속인 단체가 봉사를 온 적이 있었다. 하다 하다 이제 무속인에게도 가식적으로 웃어줘야 하나. 자신의 신세가 한심했다. 설희는 그날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 했지만 원장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인사를 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설희라고 합니다.”

“안녕, 참 예쁘게 생겼네.” 무속인 중 한 명이 설희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아기 동자를 모시고 있는 성덕이라는 중년 여자였는데 얼굴은 온화하고 따뜻했지만 매서운 눈매는 초점이 없었다. 마치 무당의 눈으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아 섬뜩한 기운도 느껴졌다. 

“얘들은 동생들이에요. 저는 그만 들어가 볼게요” 설희는 주변의 아이들을 가르키고 얼버무렸다.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가. 너는 몇 살이니?” 무당은 설희를 놓아주지 않았다.

“14살이에요.”

“그렇구나, 참 좋은 나이지.” 무당은 텅 빈 눈으로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었다.

“아가, 세상이 더 뜨거운 날. 누군가 너를 찾아올 거야. 그럼 그 사람 말을 잘 들어야 해.” 알다가도 모를 말이었지만 성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덕은 꽤 유명한 무당이었다. 점괘도 잘 맞추고 성격도 좋아 사당 앞은 늘 문전성시였다. 사실 성덕은 아기 동자가 아니라 할머니를 모셨다. 




4년 전, 매주 찾던 산속 신당에서 제를 지내다 잠깐 잠이 든 적이 있었다. 얼마나 잤을까. 인기척에 깨어보니 어린 청년이 눈앞에 있었다. 그는 자기가 새타니라고 했지만 전혀 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청년은 자기가 오랜 기간 새타니로 살았고 조금씩 자라 지금이 되었다고 했다. 이제 몇 년이 시간만 지나면 온전한 성인의 모습이 되어 비로소 세상에 나가게 된다고도 말했다. 그러니 동자는 아니지만 동자처럼 모셔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날 이후 무당은 신내림을 받은 후 가장 큰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어린 청년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흘 밤낮을 앓아누웠다. 지독한 두통과 복통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에 다다를 지경이었다. 무당은 할머니 신을 내보내는 것이 두려웠고 어린 청년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두려웠다. 그저 이 시간이 지나서 예전처럼 돌아갔으면 바람뿐이었다. 


“나는 선이다. 너는 내가 자라 성인이 되는 그날을 위해 나의 문지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너는 모든 길을 함께해야 한다.” 어린 청년의 목소리는 무당의 울부짖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무당이 알았노라. 큰소리로 대답하자 거짓말처럼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 그는 자주 무당을 찾았고 세상이 뜨거워지기 전 수십 번 환생하며 부모에게 내쳐지는 여자아이를 찾으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보내는 사신을 그녀에게 인도하라고. 그가 그녀를 죽여야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고. 성덕이 설희를 처음 만난 날. 그 아이가 바로 청년이 말하던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아이에게서는 향기가 났다. 그가 늘 말했던 붉은 꽃향기.     




“저 남자 왜 자꾸 찾아오는 거야?” 민정이 물었다.

“나도 몰라. 날씨가 더워지니까 항의하러 왔나 했는데 그것도 아닌가 봐. 누가 자기더러 나를 찾아가라고 했대.”

“누가?”

“몰라. 근데 저 남자가 낯설지가 않아. 어디서 본 거 같아.”

“어디서?”

“글쎄.”

“엄청난 미남은 아닌데? 근데 호감 있게 생기기는 했네. 좀 어리기는 하지만 내 타입이다. 몇 살일까.” 민정이 웃었다. 설희도 같이 웃었다.


“또 오셨네요.” 설희는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네. 제가 오는 것이 불편하신가요?”

“편하지는 않네요. 근데 왜 오시는지 궁금하기는 해요.”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다음이 어떨지는 저도 궁금하기는 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

“당신은 누구세요?” 설희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것도 곧 알게 될 거예요.”

설희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보면 농담 같지는 않은데 이 모든 상황이 전혀 현실감 없었다.

“집이 어디예요? 저 이제 퇴근하는데 같이 가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 같은데 제가 모셔다 드릴게 요.” 설희가 비아냥 섞인 말투로 말했다.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덤덤하게 대답했다.

“저는 집이 없어요. 지금은 무당의 집에서 지내고 있어요.”

“무당이요?”

“네.”

“그렇군요. 그럼 사당까지 태워다 드릴게요. 가까운가요?”

설희는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는 설희의 손을 보면 살며시 웃었다.

“네. 멀지는 않아요.”     


그곳은 사방이 풀로 덮인 매우 낡은 사당이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설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는 사당의 문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무당을 불렀다. 그러자 무당이 밖으로 나와 그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설희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훑어보며 기분 나쁜 미소도 지었다. 

“많이 컸구나.” 

“네? 저를 아세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니?” 설희는 갑자기 보육원 시절에 만났던 무당이 생각났다.

“혹시…?”

“그래. 나다. 기억하는구나.” 무당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여기 이 사람이 같이 산다고 하던데….” 설희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무당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설희는 그곳에서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그만 가볼게요.”

“그래. 조만간 다시 보자.” 무당이 말했다.

“조심히 가세요. 내일도 회사로 갈게요.” 그가 말했다.

설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포 하나하나까지 두려운 공포를 느꼈다. 그는 천천히 설희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나에요. 나는 지금 당신과 함께하고 있어요. 이제 당신은 나를 세상으로 인도해야 해요.”

설희는 그를 밀쳐내고 미친 듯이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녀의 등 뒤로 무당은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너에게 했던 말을 잊지 마라.” 

설희는 두 귀를 막고 차가 있는 곳으로 뛰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청년에게 무당이 물었다.

“동자님. 저 아이가 확실합니까?”

“그래, 저 아이가 맞구나.” 무당은 그의 얼굴이 조금 더 자라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또 다른 ‘善’만 찾으면 되는 것인가? 청년이 절대자가 되는 순간이 멀지 않았구나. 성덕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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