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
이민경 박사는 김성준 박사의 동료 교수이다. 이박사는 김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김박사가 어떻게 김선을 알아?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은 아닌데.”
“이박사는 김선을 알아? 송연이라는 여자도 알아?”
“잘은 몰라. 근데 요즘 날씨가 이상하잖아.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니까 조선 시대부터 이런 이상 기온이 시작이 되었더라고. 김박사도 알지? 영조 때 엄청 가뭄이 심했잖아.”
“김선이랑 지금 날씨랑 무슨 상관이야?”
“그건 나도 몰라. 근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지금 상황과 좀 비슷하다는 거야. 영조 때 가뭄이 너무 심해서 여러 번 기우제를 지낸 적이 있거든. 근데 1760년에는 좀 이상했어. 사도세자도 미쳐가고 영조도 미쳐갈 때여서 그런지 그해는 진짜 가뭄이 심했거든. 그리고 기록을 보면 이상할 정도로 여기저기서 불도 자주 나고 전염병도 심했다고 되어 있어.”
“그래?” 김박사는 이 이야기가 지금의 상황이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 어렵지?” 이박사가 웃었다. 김박사도 멋쩍게 따라 웃었다.
“야사에 보면 그해 겨울이 없었다고 해. 왕들이 백성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기록을 지웠다고 하고, 정말 그해는 장난 아니게 더웠나 봐. 동물들도 겨울잠을 자지 않았고. 그렇게 16년간 따뜻한 겨울이 계속되다가 1776년부터 2년간은 겨울이 지금의 여름보다 더 뜨거웠다고 해. 한여름보다 더운 12달이 지속되고 불도 엄청나고 사람들도 많이 죽었어. 근데 신기한 게 뭔지 알아? 그렇게 더운 날이 딱 2년이 지나고 바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4계절이 돌아갔다는 거지. 신기하지?”
“그게 뭐야?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나도 모르지. 야사야. 근데 그 야사에 등장하는 인물이 김선이야. 모든 것은 김선에서 시작되었더라고.”
“김선?”
“그래. 김선. 세상의 가장 선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 아이의 이름이 김선이라고. 하지만 아이는 솔직히 선인지 악인지 모르잖아. 그래서 성악설, 성선설이 있는 거고. 가장 선한 아이 김선과 가장 악한 아이 김선. 그 둘의 기록이 있었어. 두 아이 중 한 아이만 남을 수 있다고. 그리고 절대 악은 절대 선을 통해서만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나? 그런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어?”
“아니. 들어 본 적 없어. 이상한 얘기이긴 한데... 그게 지금 날씨와 무슨 상관이 있어?”
“기억나? 40년 전에 병원에서 어떤 아이가 강제로 안락사 당할 뻔한 일이 있었지?”
“그래. 기억해.”
“맞아. 그 살인자 이름이 김선이야. 처음에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 출생과 실종이 무슨 상관이 있나 해서 재미로 찾아봤거든. 근데 김선이라는 사람이 태어나고 날씨가 예전처럼 더워지기 시작했대. 그리고 그 사람이 살인은 하는 동안에는 기온이 더 높더라구. 마치 그 예전처럼. 신기하지?”
“그게 뭐야? 이런 우연의 일치를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잖아.”
“그건 그래.” 이박사는 웃으며 말했다.
“근데 이박사. 혹시 조선 시대 김선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송연이라는 여자와 상관이 있어?”
“송연? 그건 잘 모르겠는데?”
“좀 알아봐 줄 수 있어? 중요한 일이라서.”
“김박사가 야사에 관심 있는지는 몰랐네. 한번 찾아보고 연락 줄게.”
“그래. 고마워.” 김박사는 인사를 하고 연구실을 나섰다. 날씨는 정말 미치도록 더웠다.
그 시간, 설희는 여전히 날씨 예보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그 남자와 무당이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무척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도대체 무슨 말이지? 내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거야.’ 설희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야. 뭐 해?” 민정이었다.
“저기 민정아.”
“왜?”
“너는 혹시 예전에 만난 사람을 기억을 못 할 수도 있어?”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기억을 못 할 수도 있지. 근데 왜?”
“아니야. 그냥 물어봤어.”
“싱겁긴. 근데 로비에 누가 너 찾아왔대. 그때 그 총각인 거 같은데. 자기한테 관심 있는 거 아냐?” 민정이 웃으면서 말했지만 설희는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로비에는 정말 그가 있었다. 여전히 깔끔한 모습이지만 저번보다는 약간 성숙해진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네.”
“어제는 감사했어요.”
“네. 근데 왜 자꾸 찾아오세요?”
“불편하세요?” 그가 살짝 웃었다.
“네.” 설희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불편하다면 죄송해요. 근데 한 가지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곧 누가 찾아올 거예요. 그를 만나면 반갑게 맞아주세요.”
“그게 누군데요?”
“알게 될 거예요. 그는 당신을 만나러 참 먼 길을 돌아왔고 저도 당신을 만나러 참 오랜 시간을 기다렸어요.”
“알아듣게 얘기해 주세요.” 설희는 점점 화가 났다. 알 수 없는 말만 지껄이는 이 사람과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청년도 설희의 마음을 읽었는지 조용히 속삭였다.
“죄송해요. 하지만 저는 당신 때문에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왔어요. 당신이 일찍 끝낼 수 있었던 것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게 만들었지요.”
“네?”
“이렇게 만나서 나는 좋았어요. 또 봐요. 우리.” 그는 웃으면서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설희는 진짜 공포를 느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처음 느껴보는 공포 때문에 제대로 숨 쉴 수도 없었다.
‘누가 찾아온다는 거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