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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Nov 14. 2023

3화 우리 집 강아지

시골 장터 강아지

울 아버지 부안 장에 가셔서 새끼강아지를 세 마리를 사 와 그냥 백구, 검둥이, 바둑이, 노랭이라고 사 올 때 색깔로 구별을 한다. 중간에 식용으로 잡아먹으려면 이름도 없이 그냥 "워리"라 부른다.


영어도 잘 모르셨지만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은 모두 영어였다. 제일 큰 강아지는 워리(worry, 걱정) 두 번째는 메리(merry, 즐거운) 세 번째는 해피(happy, 행복한)다. 독구(dog)는 일제 때 일본발음인 것 같다.

걱정 근심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들이다. 우리 집 똥개는 비록 출신은 부안 장터지만 잘 길든 군견보다 집을 잘 지키고 진돗개보다 더 영리하고 풍산개보다 더 사냥을 잘했다.


우리 할아버지 해수욕장 바위 공사할 때 남포 트시다가 다이너마이트에 맞아 실명하셨다. (남포는 대항리 사투린 줄 알았는데 어원은 lamp (등)에서 유래한 말로 바위를 폭파하는 건설 토목 용어다.)


우리 집 해피는 안내견 훈련도 안 받았지만, 할아버지 안내를 도맡았다. 더 신기한 것은 할아버지께서 소를 키우셨는데 우리 집 해피는 용케도 소가 먹을 수 있는 풀밭으로 이끈다. 거기서 소 배도 채우고 다음 날 먹일 깔(꼴)을 한 망테기씩 베어 올 수 있었다. 


그렇게 3년을 키워 어른 암소는 새끼까지 낳았다. 사고로 눈이 먼 할아버지와 우리 집 암소는 해피 때문 행복했다. 그 당시는 늑대나 여우처럼 야생 그대로 목줄 없이 개를 키웠다.


개집도 따로 없어 마루 밑에 들어가 적당히 구덩이를 파고 지푸라기를 물어다 아늑한 보금자리를 스스로 만든다. 거기서 새끼 4마리는 기본으로 낳았다. 


개장사나 밤중에 돌아다니는 도둑이 나타나면 용케도 알고 온 동네가 개 짖는 소리에 진동한다. 풀어놨어도 절대 길이 아닌 곳은 가지 않았고 농작물이나 가축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농작물에 피해 주는 쥐 나 두더지를 고양이보다 더 잘 잡는 효자 농사꾼이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의 집 개밥을 먹거나 쥐약 먹고 죽은 쥐는 먹지 않는다. 대문이 없어도 남의 집 마당에 들어가지 않고 도둑고양이와 달리 널어 논 생선이나 음식도 절대 먹지 않는다. 다만 제수가 좋으면 엄마 젖을 먹인 어린아이 똥을 먹을 수 있다. 금방 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똥이다. 어린아이는 바짓가랑이가 반으로 찢어진 옷이라 기저귀를 차고 다닐 일이 없다. 그냥 자연 방사하면 냄새를 맡고 똥개가 달려온다. 바닥에 있는 똥을 싹싹 핥아먹고 먹을 것이 없으면 어린아이 똥구먹까지 핥아먹는다. 비데가 필요 없다. 더 이상 똥이 안 나오면 붕알이 먹을 것인 줄 알고 살짝 깨물어 본다. 어린아이는 질색을 하고 뒤로 넘어진다.


워리와 메리는 사냥개로서 한몫한다. 울 아버지 눈 쌓인 날은 여지없이 두 놈 데리고 산에 가신다. 총 없이도 산토끼는 쉽게 잡아 오셨다. 


마을 입구에서 발소리만 듣고 식구를 알고 달려오는 강아지였다. 울 아버지 해수욕장에서 거나하게 막걸리 한잔하시고 대항리까지 걸어오시면서 점빵몰랭이(지금의 해수욕장 전망대)에서 잠깐 쉬시다가 잠이 드신 적이 있다. 1km가 넘는 길인데도 워리는 정확히 알고 달려와서 짖어 대면서 아버지를 깨웠다. 겨울철 저체온으로 돌아가실뻔한 일을 워리가 구해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모퉁이에서 어김없이 달려와 폴짝폴짝 뛰던 워리가 어느 날 보이지 않았다. 터덜거리고 집에 올 때 서낭당 밑에서 워리의 모습을 목격했다. 


검둥이 수놈과 암놈 워리가 궁둥이를 붙이고 혀를 반쯤 내놓고 침을 흘리며 헉헉거리고 있었다. 시골에서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라서 요상한 모습은 아니지만, 자세히 보니 원호 내 집에서 기르는 검둥이였다. 풀어놓은 개들이 많아도 뉘 집 개인지 대충을 알고 개들도 우리 동네 사람은 거의 기억을 했다. 나는 하얀 백구가 좋았지 껌둥이는 싫어했다.


왜 검둥이를 선택했는지 말 못 하는 개한테 물어볼 수는 없지만 나는 그냥 껌둥이가 싫었다. 길에서 펼쳐지는 은밀한 사랑은 시간도 오래 끈다. 


난 더 바라만 볼 수 없어 워리 꼬리를 잡아 당겨 보기도 하고 검둥이를 앞차기로 두어 번 갈기기도 했다. 그러다 양쪽 귀를 잡고 비트는 순간에 검둥이가 와락 달려들어 내 팔뚝을 물어 버린다. 개한테 물린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나는 딱 한 번 그렇게 옹골지게 물려 버렸다. 


"아이고 갱열이 살려" 피가 철철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약도 없다. 민간요법인지 몰라도 아버지는 물린 개 꼬리 끝과 개털을 잘라서 불에 그슬린 후 된장과 같이 바르면 된다고 했다. 붕대도 없어 입다 버린 난닝구(메리야스)를 찢어 마치 완장처럼 오른쪽 팔뚝에 똘똘 감고 다녔다. 


그날도 죄 없는 갱열이는 울엄니한테 매를 원 없이 맞았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고 흉터가 아물 때쯤 마루 밑에 예쁜 복슬강아지 3마리가 생겼다. 다행히 검둥이는 아니었다. 그렇게 자라던 예쁜 강아지들이 혼자서 동네를 나가 뛰놀 때 멀리 산등성 개울가에서 개털 그을리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솔향기도 산들바람을 타고 동네 어귀까지 왔다. 워리를 소나무를 태워 그을리는 냄새였다. 어제까지 갱열이를 좋아해서 폴짝폴짝 뛰던 워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눈에서 눈물이 고였다. 


강아지 3마리를 선물해 주고 아버지 생명을 구해주고 농사일과 사냥까지 한 것도 모자라 우리 식구 영양 보충까지 시켜 주고 갔다. 그렇게 워리를 보내고 계절 따라 복날이 오면 차례로 메리, 해피를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3마리 강아지 이름도 똑같이 워리, 메리, 해피라 지었다.


50년이 흘렀지만 우리 집 강아지들은 내 맘속에 영원하다. 미운 검둥이가 물고 얼마나 흔들었던지 지금도 팔뚝에 흉터가 있다.



우리 집 강아지는 복슬강아지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꼬리 치며 반갑다고 멍멍멍~~


짧지만 얼마나 정겹게 불렀던 동요인가??



사진캡처 : https://blog.naver.com/sherryhan/222710368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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