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은 국제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극적이고 간결하게 제시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특정한 국제관계 이론(The international theory)만이 있을 뿐, 보편적인 국제관계 이론(A international theory)은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 미어샤이머는 왈츠가 지닌 구조의 추상성을 지리적 개념(육지와 해양) 도입해 피부에 와닿는 설명을 제시한 점에서 시사성이 크다.
어떻게 보면 1970년대 제3세계의 부흥과 함께, 실질적으로 전 지구의 국가들이 베스트팔렌 주권체제에 모두 편입된 점에서, 냉전이 끝난 이후에 주어질 문제들(가령 민족주의나 주권의 귀속여부)에 국가들의 향후 자취(locus)를 제시해 나름의 설명력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민족주의에 방점을 둬온 그의 주장은 민족자결의 원칙과 주권이 함께 융합돼 만들어진 1945년 이후의 체제에서 오랜 시간 유효할 것이다.
<플래툰>, <풀 메칼 재킷>, <지옥의 묵시록>
모겐소와 마찬가지로 월남전에 관해 비판한 불은 월남전이 계량화를 통한 관리자적 접근과, 국익을 위해서는 타국의 이익을 희생시켜야만 한다고 판단하는 게임이론의 한계점을 간과한 민간전략가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위기라 평하며, 과학화된 외교정책의 목적이나 가치에 대한 재정의가 부각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민간전략가 미어샤이머는 끊임없이 국제사회 속 제도의 행위자이자 수권자(授權者)인 국가들의 각국 전략보고서를 톺아가며 해양 간의 거리에 따른 공격성 정도의 차이 속 게임이론의 전략적 선택이 곧 합리적임을 강제하고 있다.
이론은 언제나 누군가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미어샤이머는 변주하는 시대 속에서 이미 발생한 위기 직후에, 곧장 발생할 수도 있는 위기(특히 중국)를 더하는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해 왔다.
이론에는 구체적이고 객관적 요소만이 설명에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하던 자신을 자기기만하며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요인들로 이론의 설명을 갈아 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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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나 결론으로 미리 내달려가 이론을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치환하는 방향으로 주류를 형성해 왔고, 역외균형전략은 어느새 질서로 변모해 순간순간의 변명으로 채워지고 있다. 어쩌면 그에게 이론으로 불릴 수 있는 걸로 남아있는 건, 공격성 그 자체만일지도 모르겠다.
사담이지만 미중분쟁을 본격화한 트럼프 행정부가 집권하기 직전에도, 미어샤이머는 유럽에서 러시아와의 갈등은 한동안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고 예측하며, 아시아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재강조한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2022년 러시아 침공으로 다시 비켜나간다.
아마 ‘이론이기를 희구하는 그의 주장들’이 종언을 고하는 순간은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터지는 순간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론한다.
가장 정치적인 수단인 전쟁과 위협은 언제나 닥쳐왔고, 존재하며, 다가올 예정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비극을 외치던 미어샤이머는 그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처에 보인다는 것이 곧 무-조건적인 반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규칙적’인 것과 ‘규칙이 동일’한 것은 엄연히 다르듯, 정치공학에서 일률적으로 적용될 쾌도난마식의 법칙은 허상에 가깝다.
무한궤도 - 그대에게
물론 세상에 완벽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듯, 완벽하지 않고 영원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할 필요 또한 없다. 하지만, 공격과 호전에 사로잡힌 그의 무한궤도(caterpillar tracks) 안에서는 평화로운 시대를 상상할 수 없다.
Friedrich Nietzsche
그는 일관되게 자만심(hubris)은 곧 파국(nemesis)을 면치 못함을 이론처럼 설파했고, 자기 스스로를 입각(入閣)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주류와 거리를 두는 괴짜(oddballs)라고 칭한다.
스스로가 밝히기를 데이비드 할버스템(David Halberstam)의 최고의 인재들(The Best and The Brightest)에서 자만심에 대한 경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을 계기로, 맥나마라의 자만심과 외골수에 날 선 비판을 비롯해, 학자들과 언성을 높이며 이슈를 다루는 걸 즐겨왔다고 자부한다.
그의 개인 웹사이트에 걸려있는 마키아벨리와 본인의 얼굴을 합성한 초상화
한편, 오늘날 미어샤이머는 개인 웹사이트에 자기 얼굴과 마키아벨리의 초상을 합성한 사진을 걸어, 대중에게 정치공학의 정수(axiom)를 뽑아내 “군주론(The Prince)”으로 승화시킨 마키아벨리의 화신(Mer-chiavelli)이라 인정받는 것을 즐기고 있다. 그 또한 오늘날 스스로를 마키아벨리라고 불리는 것을 즐기는 것은, 되려 스스로의 자만심은 제어하지 못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에 가깝지 않을까? 글에서만 보이던 그의 모순성은 어느새 자신을 휘감고 있다.
피렌체 산타크로체 성당에 있는 마키아벨리의 무덤. 그의 묘비명에는 "어떤 찬사도 그 이름보다 못하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라 새겨져있다.
외교관으로서도 정치인으로서도 성공 가도를 달리지 못한 마키아벨리에 반해 미어샤이머는 둘 다 되어보지도 못했다는 사소한 지적부터, 근래의 그는 어느새 본인이 여기는 시카고 대학의 자랑인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의 총기(mental acuity)를 잃은 채 자기 스스로의 발언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가설검증의 연구자들에게 순수하게 이론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탄하면서도, 본인 또한 박사논문 이후로 꾸준히 국제정치는 곧 강대국의 대외정책에서 파생된다는 입장을 견지한 채, 어느새 자기의 발언을 뒤집어가며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현행 정부에 잘잘못만을 지적해 온 점을 미뤄봤을 때, 미어샤이머가 주류와 거리를 둔 진정한 ‘창의적인 이론가’를 자처하기는 어렵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