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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 Nov 03. 2023

물욕 아기

나도 돟은거~

어린 시절 사진 속에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해수욕장 파라솔이 꽂힌 테이블 위에 앉아있다. 그 아기는 남색 팬티수영복 한 장을 입은 채 짧은 팔을 펴서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옆에 앉아있는 엄마는 하늘색 꽃무늬 원피스 수영복에 우아한 창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파라솔 뒤로 아기가 가리키는 곳에는 그 시절의 필수 아이템이었던 꽃무늬 수영복과 꽃무늬 수영모로 멋을 낸 꼬마여자아이 둘이 있다.


아마도 이것은 나의 첫 바다 방문샷이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아빠는 그 사진을 보면서, 내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은 "나도 돟은거~" 였단다. 20개월도 안된,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몇 마디 없을 것 같은 그 아기가 내뱉은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아빠도 잘 알았기에 너무도 웃기고 귀여웠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그 쪼끄만 아기도 이쁘고 좋은 걸 알아본다는 게 신기했다고 했다.


이미 두 딸들을 이쁘게 입히고 키우는 것은 해봤으니 막내딸 정도는 티 안 나게 키워도 되는 시절이기도 했다. 금방 자랄 두 살 아기에게 꽃무늬 수영복을 사주는 것은 그 시절엔 낭비였을 것이다. 지금처럼 <당근마켓>이라도 있었으면 싸게 구해서 입혔으려나,,


하지만 두 살짜리 아기도 보는 눈은 있었다. '엄마와 언니들은 이렇게 쫙 빼입고 왔으면서 나는 왜 남색 팬티수영복 한 장이냐고! 나도 알록달록 꽃무늬가 이쁜 걸 알고 있다! 그러니 내놔라~! 꽃무늬 수영복과 수영모자를!'이라는 생각을 담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도 돟은거~"






그 시절 팬티수영복만 입었을 모든 여자 아기가 모두 나도 좋은걸 입고 싶다는 투정을 부리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수영복 팬티만 입든, 반바지만 입든, 기저귀만 차고 앉아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아기도 있을 것이다. 처음 보는 바다와 넓은 모래사장이 신기하고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게 신기한 아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 속 그 아기는 인생 첫 바다에서 물욕의 인성을 처음으로 시전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자라면서도 타고난 물욕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현실의 벽에 막혀서 포기하는 법도 금방 배웠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스스로 돈을 벌면서 잠시 감춰뒀던 물욕은 서서히 수면 위로 오르기 시작했고 소소한 사치의 재미를 알아가게 되었다. 큰돈을 벌진 못했기에 고가의 명품을 휘감지는 못했지만 작은 것을 사더라도 특이하고 예쁜것을 찾아내며 이 작은 사치에 만족하며 살던 시절이었다. 너무 갖고 싶지만 좀 비싼 것들은 수많은 고민의 날들 중 어느날 정신차려보면 카드 할부명세서와 함께 내방에 모셔져 있곤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후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좀 더 아꼈으면 지금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물욕 아기가 자라고 나이를 먹고 물욕 아줌마가 된 지금의 삶은 어떠냐고? 지금도 쇼핑은 나의 즐거움이다. 흥청망청 살기엔 현실의 벽이 높지만 소소한 소비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활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물욕 가득한 남편을 만나서 갈등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결혼의 시작은 <검소하게>였지만 16년 정도 살아보니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취미생활,, 눈을 돌리면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며 돈은 꼭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도 좋은거~!"라고 외치며 열심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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