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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땅구 09화

땅구

1. 축복과 저주(09)

by 유봉

2005년 4월, 당진


오후 내내 세찬 비가 퍼붓더니 4시도 안되어 사위(四圍)가 잿빛으로 물들었다. 얕은 산을 배경으로 넓은 논밭을 사이에 두고 띄엄띄엄 자리한 구옥들이 그려내는 초야(草野)가 때 이른 어둠을 만나자 으스스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좁은 시골길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은 커녕 업무를 보러 드나드는 차량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작은 시골 마을의 풍경속에 움직이는 거라고는 질척질척한 비포장길을 걷는 두 아이가 전부였다.

“같이 가. 누나.”

맹랑한 목소리에 연희가 돌아보았다. 꽁지에 붙어 촐래촐래 따라오던 민철이 몇 걸음 뒤에 멈춰서 있었다. 거센 빗소리에 그만 민철의 기척을 놓쳐버린 것이었다. 빗물이 만들어 낸 커다란 물웅덩이 앞에서 일곱살 꼬마 민철이 고민하고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노란장화를 신은 연희는 거침없이 물웅덩이를 지났지만 운동화를 신은 민철은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연희는 자켓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썼다. 그리고 우산을 펼친 채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비를 맞으며 성큼성큼 되돌아간 연희가 민철의 허리를 안았다. 연희는 힘을 다해 민철을 들어올렸고 민철은 들고있던 우산을 살짝 기울여주며 자연스럽게 몸을 맡겼다. 민철이 아무리 일곱살 꼬마라지만 열 살 소녀가 들어 옮기기에는 버거웠다. 하지만 연희는 군소리 없이 몸을 반대쪽으로 기울이며 한걸음씩 내딛었다. 그렇게 연희는 3미터나 되는 웅덩이를 낑낑대며 건너가 비가 고이지 않은 곳에 민철을 내려 놓았다.

민철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둑판처럼 가지런히 정리된 열 마지기 논에 빗물이 계속 들어차고 있었다. 아직 모가 심어지지 않아 그곳은 마치 미꾸라지 양식장 처럼 보였다. 그 주위를 둘러싼 제각각 모양의 밭들에는 대파와 마늘, 양파 등의 농작물이 묵묵히 비를 견뎌내고 있었고 그 너머에 두 동의 작은 비닐하우스가 세찬 비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드디어 농가를 발견한 민철이 물었다.

“저기야?”

연희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니야. 더 가야 돼.”

민철은 발이 아파오는 모양이었다. 퍼붓는 빗속에서 비포장 길을 20분 넘게 걸었으니 그럴만도 하였다. 민철이 울상이 되어 물었다.

“얼마나 더?”

우산을 다시 집어 쓴 연희는 손가락을 펴 아득한 곳을 가리켰다.

“거의 다 왔어. 저기 감나무 보이지? 저 집이야.”

연희가 가리키는 곳에 주먹만하게 보이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서른 가구쯤 되었을까.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마을은 낮은 산을 끼고서 두세 채씩 짝을 지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다. 민철은 연희가 말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보이는 곳마다 죄다 나무 뿐이었으니 말이다. 감나무가 무언지도 모르는 민철은 대충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제 누나만 따라가면 되니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얼른 가자.”

“응.”

남매는 걸음을 재촉했다.



새롭게 칠한 듯 색감이 살아있는 연녹색 철제 대문 앞을 연희와 민철이 서성였다. 연희는 까치발을 들어 대문 너머를 보려 했지만 아직 키가 모자라 볼 수 없었다. 연희는 조심스럽게 대문을 밀어 보았다. 듣기 싫은 쇳소리가 길게 울며 안쪽으로 문이 열렸다. 번듯하게 페인트만 칠해 놓고서 기름칠은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연희는 고개만 빼꼼히 들이밀어 안쪽을 살폈다. 인기척이 없자 조금 더 깊숙이 몸을 밀어넣었다. 마루에 올라서는 디딤석에 십수켤레의 신발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그 중에서 낯이 익은 신발을 발견한 연희가 천천히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민철이 따르며 물었다.

“아버지 안에 있는거야?”

연희는 말없이 신발 하나를 가리켰다. 낡은 회색 운동화를 확인한 민철이 반가워 소리를 치려 하자 연희가 서둘러 제지했다. 집 안에서 호통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카랑카랑한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누군가를 호되게 꾸짖고 있었다. 연희는 민철이 놀라지 않게 가까이 이끌며 집을 훑어 보았다.

일자로 길게 뻗은 단층 주택은 전통 한옥을 리모델링 한 것이었다. 지붕과 뼈대 그리고 툇마루를 살려 한옥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나머지는 새롭게 지은 것이다. 그 형태는 단순했다. 양 끝에 있는 두 개의 방은 그대로 유지하고 그 가운데에 자리해 있던 대청마루를 주방과 거실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뻥 뚫려있던 대청마루에 외벽을 두르고 커다란 미닫이 유리문을 달아 놓았다. 디딤석에서 신발을 벗고 1미터 폭의 툇마루에 올라 유리문을 열면 거실로 통하는 구조였다.

연희가 살금살금 안쪽으로 들어가자 유리문을 통해 거실 내부가 들여다 보였다. 세 명의 남녀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왼쪽방 안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경건하고 또 두렵기도 하여 연희는 차마 내부로 들어갈 생각은 못하였다. 연희는 일단 비를 피하며 기다릴 곳을 찾아 주변을 살폈다. 거실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툇마루 끝이 그나마 괜찮아 보였다. 연희는 민철에게 소리내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는 먼저 마당을 질러 안쪽으로 이동했다.

처마밑에 선 둘은 우산을 접고 툇마루에 걸터 앉았다. 민철이 대뜸 풀이 죽어 말했다.

“신발 다 젖었다.”

흰색바탕에 검정색 무늬가 들어간 운동화는 민철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물에 흠뻑 젖고 진흙이 튀어 볼 품 없이 되어버렸다. 오는동안 신발을 적시지 않으려 노력한 민철은 속이 상한 듯 입술을 빼죽 내밀었다. 연희가 보자 민철의 바지 밑단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신발 벗고 올라가.”

민철은 신발을 벗고 툇마루에 올라 앉았다. 양말을 신지 않은 탓에 민철의 발 역시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것을 털어내려 연희가 맨손으로 민철의 발을 문질러대자 민철이 뒤로 벌러덩 자빠지며 방정을 떨었다.

“간지러워. 안 돼.”

연희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민철은 얼른 입을 답았다. 민철의 발을 대충 털어낸 연희는 흠뻑 젖은 바짓단을 여린 손으로 쥐어 짜보았지만 크게 효과는 없었다. 연희는 민철의 신발을 거꾸로 들어 물을 쏟아내고 흙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일어나 앉으려던 민철은 커다랗게 지어진 거미줄을 발견했다. 그 가운데에 어른의 엄지 손가락 만한 거미 한마리가 거꾸로 메달려 있었다. 처마와 서까래 그리고 기둥보가 만나는 부분, 바로 연희의 머리 위쪽이었다. 터질 듯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에 샛노랑과 연두색의 알록달록한 무늬가 화려한 무당거미였다.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거미집 군데군데 잡아먹힌 곤충들이 적지 않았다. 민철이 눈여겨 볼 새도 없이 거미는 진동을 느끼고 천천히 연희쪽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민철이 후다닥 일어나 우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주저없이 거미를 향해 휘둘렀다. 거미집이 통째로 뜯겨 나가며 거미는 연희의 발 밑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엄마야.”

화들짝 놀란 연희가 툇마루 안쪽으로 피신했다. 다행히 큰소리는 내지 않았다. 민철은 재빠르게 뛰쳐내려가 우산으로 거미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그 한번으로 내장이 터져나온 거미는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

연희가 민철을 나무랐다.

“죽이면 어떡해?!”

“누난 거미 싫어하잖아.”

민철이 당연하다는 듯 대꾸하자 연희가 아이 답지 않은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싫다고 함부로 죽이는 거 아냐. 생명은 소중한거야.”

“알겠어.”

못 내 수긍하는 민철이었다.

“얼른 올라와.”

민철은 우산을 휘적거려 죽은 거미를 툇마루 밑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잽싸게 올라와 연희의 옆에 철푸덕 앉았다. 아무리 조심을 시켜도 일곱살은 일곱살인 모양이었다.

“여기가 영배형아 집이야?”

영배가 누군지도 모르는 민철은 천진한 얼굴이었다.

“응.”

영배는 연희의 같은 반 친구였다. 하지만 벌써 한달이 넘게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3학년에 올라와서 같이 수업을 들은 건 단 며칠 뿐이었다. 연희의 기억에 그렇게 건강이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헌데 영배는 무슨 병에 걸렸는지 계속 누워만 있는데 병원에서도 손을 못 쓴다고 하였다. 촌구석의 작은 동네에서 소문이 퍼지는 건 삽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영배가 빼짝 말라 가지고 얼굴이 시커매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역병이라고 했다가 영배 아빠 엄마가 멀쩡하자, 다시 영배 엄마가 뭘 잘못 먹여서 죽이려고 한다느니, 영배 아빠가 바람을 펴서 애가 저주를 받은 거라느니,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판을 쳤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것은 귀신의 짓이라는 얘기였다.

영배 가족은 원래 시내에 살었었다. 감나무집은 영배 할아버지가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외로이 살고 있던 집이었다. 일년 전 영배 할아버지가 급작스레 돌아가시게 되자 장남인 영배 아버지가 집과 논밭을 물려받게 되었다. 충청도 지역에서 자잘한 공사에 불려다니며 잡부일을 하던 영배 아버지는 아버지가 하시던 인삼 농사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감나무집은 세식구가 살기에는 너무 낡고 좁았다. 그리하여 영배 아버지는 친한 인부들을 불러 직접 집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이 걸려 완성된 집에 봄을 기다려 가족과 함께 들어와 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안 되어 영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영배 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려가려 한다고 생각했다. 비단 사람들의 생각만이 아니었다. 영배 아버지는 부친의 묘자리까지 옮겨가며 영배를 살려달라 빌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영배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져만 갔다. 하나뿐인 자식새끼가 생사를 오락가락하면 부모의 입장에서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일이 이렇게 되자 영배 아버지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무당을 불러들일 수 밖에 없었다.

“손노인의 짓이 아닐세.” 손노인은 영배 할어버지를 말함이었다. 감나무집을 둘러본 무당이 건넨 이 말에 영배 아버지는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무당을 온전히 신뢰하게 되었다. 무당은 당장 굿을 해야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영배도 위험하고 손노인도 악귀의 손에 붙들려 구천을 떠돌게 될 것이라 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영배의 부모는 무당과 함께 굿을 준비했다. 그렇게 열흘간의 치성을 드리고 준비를 한 끝에 지금 감나무집 안에서 영배를 위한 굿이 진행되고 있었다.

민철은 처음 와 보는 시골집이 신기한 지 이리저리 살피다 눈 앞에 보이는 기둥을 힘주어 밀었다. 처마를 떠 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이 꿈쩍할 리 없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연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집을 영배 아버지가 지은거래.”

연희도 주워들은 것이었다. 영배가 3학년이 된 첫날부터 짝꿍이 된 아이에게 자랑을 늘어놓은 듯 했다. 아버지가 직접 집을 지은 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정말? 우와 대단하다.”

연희는 천천히 마당을 둘러보았다. 맞은편에 위치한 작은 창고는 얇은 슬레이트 지붕이 비를 막아주고 있었지만 지붕 한쪽이 덜렁거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색이 바래지고 금이 간 벽은 지붕이 아니었다면 벌써 허물어졌을 것 같았다. 원래의 문은 떨어졌는지 임시로 만들어 놓은 나무틀의 비닐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안으로 각종 농기구와 사다리, 페인트통 같은 잡동사니가 보였다. 연희는 영배가 그의 아버지와 함께 이 창고를 새롭게 짓는 모습을 상상했다. 행복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영배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연희는 영배가 건강하게 학교로 돌아온다면 좋은 말들을 많이 해줘야 겠다 생각했다.

창고의 옆으로 크고 작은 장독대 몇 개가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커다란 고무 대야가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네모 반듯한 작은 수돗가가 연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자갈을 섞은 시멘트를 부어 만든 자리에 크고 작은 돌을 예쁘게 둘러 완성시킨 것이었다. 이것 역시 이 집안의 누군가가 직접 만든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영배 아버지 인지 할아버지 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연희는 영배 역시 손재주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수돗가에서 몇 발자국 옆에 저 멀리서도 보였던 오래된 감나무가 있었다. 굴참나무처럼 크게 자란 감나무는 어른 키만큼 올라온 기둥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그곳에서부터 수 많은 잔가지들이 뻗어나 있었다. 지금은 볼 품 없이 앙상했지만 가을이면 꽤나 풍성한 모습으로 볼 만 한 경치를 자아낼 듯 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영배네 집을 감나무집이라 불렀다.

나무를 감상하던 연희의 눈에 이상한 게 포착됐다. 나무 기둥 뒤로 가느다란 끈 같은 것이 몇 가닥이나 연결되어 있었다. 연희가 앉은 위치에서만 어렴풋이 보일 뿐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연희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 하려 눈에 힘을 주어 살폈지만 어둑해진 사위와 빗줄기 때문에 식별이 되지 않았다. 연희는 별 거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이내 눈길을 거두었다.

연희는 한달 전을 떠올렸다. 영배가 결석한 이튿 날 연희가 대신 가정통신문을 가져다 주러 이 집에 방문했었다. 영배의 집이 워낙 외진 곳에 있어 아무도 가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와는 분위기가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단지 날씨 때문은 아니었다. 콘크리트 블럭으로 쌓은 담장은 중간중간 윗부분이 허물어져 있었는데 연희는 이것이 그때도 이랬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당 곳곳에 어수선하게 자라난 잡초들과 푹푹 패여 물이 고이고 있는 모습은 그리고 감나무 주위로 부러진 가지들이 너부러져 있는 것은 확실히 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조금전의 거미줄 역시 말이다.

고작 한달이 지났을 뿐인데. 연희는 그때와 다른 오싹한 집의 분위기가 불안했다. 비록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불행한 일은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게 연희의 마음이었다. 연희는 부디 영배가 빨리 일어나 학교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랬다.

“근데 너무 춥다.”

민철이 다리를 오므리더니 부르르 떨었다. 연희는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멈추고 민철을 살폈다. 장화에 방수자켓까지 챙겨입은 연희와는 달리 민철은 맨발에 헐렁한 티셔츠 하나만 달랑 걸치고 집을 나섰다. 급하게 따라나온 탓이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연희는 식탁 위에 놓인 아버지의 약통을 발견했다. 최근들어 건강이 급격하게 안좋아진 연희의 아버지였다. 제 시간에 약을 챙겨 먹지 못할까 걱정이 된 연희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하지만 연희는 아버지가 어디에 있을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약통을 챙겨 집을 나서던 연희를 민철이 얼른 따라나섰던 것이다.

“그러게 집에 있으라니까.”

“용진이형 있잖아. 무섭단 말이야.”

용진은 새엄마의 자식이었다. 즉 연희와 민철 남매하고는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였다. 6학년인 용진은 덩치가 크진 않았지만 성질이 고약했다. 별 시덥지 않은 걸로 우쭐대기 좋아했고 모두가 자기 의견을 따르길 바랬다. 또한 제 맘에 들지 않으면 고래고래 악을 써대기 일쑤였고, 남의 것이라도 맘에 들면 뺏고야 마는 못된 심보를 가지고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 용진은 틈만 나면 민철을 가지고 장난을 쳐댔는데, 당하는 입장에선 여간 곤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럴때면 연희가 나서서 민철을 보호하곤 했다. 연희가 힘이 세다거나 말을 조리있게 잘한다거나 성격이 드센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항상 차분하고 누구에게도 세심하게 대하며 생각이 깊어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연희였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아이라 할 수 있었지만 용진이 마음만 먹는다면 연희를 충분히 괴롭히고도 남음이 있었다. 허나 용진은 유독 연희에게만은 짓궂게 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민철에게는 연희가 누나이자 친구이고 엄마였다. 학교라도 같이 다니면 나을텐데 일곱살인 민철은 내년이나 되어야 학교에 갈 수가 있었다. 때문에 민철은 항상 연희가 돌아올 때만 기다리며 홀로 시간을 보냈다.

연희는 안쓰러운 듯 민철을 바라보았다. 민철은 작은 몸을 움츠리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봄이었지만 종일 내린 비 탓에 기온이 낮았다. 연희는 자켓을 벗어 민철에게 입혔다.

“누나는?”

“난 괜찮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켓을 벗으니 얇은 티셔츠 사이로 바람이 뚫고 들어왔다. 연희는 애써 표정을 감추었다. 다홍색 자켓에 파묻힌 민철이 연희가 걱정되어 물었다.

“약 드리고 가면 안돼?”

연희가 집 안의 상황을 살피려 일어서던 찰나였다. 안쪽에서 징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번의 징소리와 함께 무악(巫樂)이 시작되었다. 장구소리와 북 소리가 합쳐지고 피리소리가 얹어졌다. 그리고 무당의 방울소리가 어우러졌다. 본격적으로 굿판이 벌어진 것이다.

연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금만 기다리자. 괜찮지?”

“알겠어. 근데 저 피리 소리는 아버지가 부는거야?”

민철은 아버지가 무슨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 지 못했다. 하지만 가끔씩 집에서 피리를 부는 걸 보고 들은 적이 있었다.

“응. 맞아. 아버지야.”

연희의 아버지, 이춘광은 피리를 부는 악사였다. 무당을 도와 굿을 하러 다니는 것이 그의 업이었다. 원래는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을 담당하는 연주자였지만 2년 전 연희와 민철의 새엄마가 된 무당 함도순을 만나면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저 방울소리 들려?”

연희가 묻자 민철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딸랑딸랑 하는 거?”

“응. 그게 어머니가 하시는 거야.”

어머니라는 말에 민철은 마뜩찮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 하는 건데?”

“영배가 아프지 않게 빌어 주시는 거야.”

민철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좋은거네?”

“좋은거지.”

연희의 대답에 한참을 생각하던 민철이 물었다.

“아주머.. 아니 어머니는 좋은 사람이야?”

가족이 된지 벌써 2년이 지났지만 민철에게는 어머니라는 말이 어색했다. 그런 민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희가 답했다.

“좋은 분이지. 아버지도 보살펴주고 우리도 챙겨주잖아.”

“난 무서운데.”

민철이 도순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민철이 용진의 놀잇감이었기 때문이다.

용진의 장난은 시간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콜라를 마시게 해 거꾸로 들어 세우고, 작은 폭죽에 불을 붙여 옷속으로 집어넣고, 고춧가루 탄 물을 물총에 담아 눈에 뿌려 댔으며, 벌레를 잡아다 먹게하는 등 그 악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민철이나 연희가 일러바치면 아버지 춘광은 용진을 호되게 야단쳤다. 거기서 더 큰 문제가 생겼는데 바로 도순이었다. 그녀는 용진이 춘광에게 혼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되려 날이 선 목소리로 민철을 꾸짖었는데 그럴때면 민철은 오금이 저려 움찔움찔 하였다.

연희는 민철을 안심시키기 위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서워 하지 않아도 돼. 사람은 다 성격이 달라서,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거야. 그렇지만 다 마음속에는 좋은 생각을 갖고 있어. 어머니가 다정하게 말하지 않아도 원래는 좋은 분 인거야.”

“정말?”

“응. 정말.”

그래도 민철은 불안함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누나가 오늘 배운 거 얘기해줄까?”

연희가 묻자 민철이 기다렸다는 듯 냉큼 대답했다.

“응.”

연희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수업시간에 듣고 배운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했지만 민철은 반도 알아듣지 못하였다. 계속해서 궁금한 걸 묻는 바람에 진도는 더디기만 했다. 그래도 연희는 답답한 내색 하나없이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게 요란하게 울리는 무악속에서 다정한 오누이의 시간은 흘러갔다.




먹구름에 잡아먹힌 해는 이제 마지막 기운을 발하고 있었다. 비는 영원히 그칠 것 같지 않았다. 그 음울함 때문인지 사방에 널린 곤충들 마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정말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귀신을 불러내려는 건지 아님 내쫓으려는 건지 무구(巫具)소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직 무당의 말소리에 맞추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누나. 아부지 언제 끝나?”

연희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민철이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배고파.”

연희가 결단을 내렸다.

“안되겠다. 그냥 돌아가자.”

민철도 문제였지만 연희는 더이상 추위를 견디기 어려웠다. 더 늦었다가는 오도가도 못하게 될 것 같았다. 남매가 일어서려는 찰나였다. 드디어 악사들의 연주가 멈추었다.

“어? 끝났다!”

민철의 얼굴이 밝아졌고 연희도 이제 끝났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무당의 말소리와 간헐적으로 흔들어대는 방울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당은 남자와 여자가 반반쯤 섞인 목소리로 누군가를 향해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 괴이한 음성이 남매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이질적인 분위기 속에서 연희 역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하지만 소녀의 결심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거실로 통하는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그러더니 방울소리가 몹시 가깝게 들려왔다. 곧이어 도순이 모습을 드러냈다. 툇마루에 올라 선 도순은 방울을 흔들며 외쳤다.

“썩 나오지 못할까!”

추상같은 호통 소리에 민철이 움찔하자 연희가 얼른 민철을 끌어 안았다.

접신을 한 것인지 도순은 엄청난 기운을 뿜어대고 있었다. 처마 밑에 서서 어둑해진 마당을 살피던 그녀가 망설임 없이 빗속으로 몸을 던졌다. 새하얀 버선발은 순식간에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여덟개의 방울이 달린 무령(巫鈴)을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하늘하늘대는 오방색 소매가 달린 백색의 장삼 위에 진한 다홍색의 쾌자를 두르고 머리를 가지런히 올려 화관과 같은 족두리를 쓴 그녀의 모습은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거기에 오른손에 쥔 붉은색 무선(巫扇)은 봉황과 같은 삼색의 꼬리가 나풀거려 신묘한 모습을 더해주었다. 화려한 무복은 비에 젖어같지만 그녀는 상관없다는 듯 무선을 펼치고 방울을 흔들며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툇마루 구석에 꼭 붙어 웅크리고 있는 연희와 민철을 발견했다. 연희는 순간 인사를 해야하나 고민했지만 그녀의 눈빛이 매서워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도순은 아이들을 무시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녀는 사방으로 한 바퀴 휘이 돌더니 펄쩍펄쩍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곧바로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먼저 백색의 철릭을 차려입은 네 명의 악사들이 각자의 악기를 챙겨나와 툇마루에 자리했다.

“아버..”

민철이 춘광을 보고 반가워 아는 척을 하려했지만 연희의 손에 입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악사들의 뒤를 이어 백색의 장삼을 걸친 두명의 아낙이 두 노인을 모시고 나왔다. 바로 영배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다. 그 다음 마을의 이장과 몇몇 어르신들이 나와 도순을 지켜보았다.

“어?”

영배의 아버지가 영배를 안아들고 나오자 연희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했다. 그리고 이내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영배의 깡마른 모습이 너무 가여웠기 때문이다. 영배의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자리를 잡았다. 그 중 몇몇은 민철과 연희를 발견했지만 중요한 행사에 방해가 될까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네 이놈! 구천을 떠도는게 가련하여 가엽고 또 가엽게 여기려 했더니 아이의 몸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냐? 아이의 몸에 손을 대면 삼신께서 노하신다는 걸 모르느냐!”

사뿐사뿐한 발걸음으로 구석구석 뛰어다니던 도순이 감나무 앞에 이르렀다. 그녀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그러더니 이내 허리를 굽히고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몇 번을 울컥울컥 대던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사람들 쪽으로 돌아왔다.

도순의 입에서 피가 꾸역꾸역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웅성웅성 대었다. 도순이 개의치 않고 말했다.

“찾았네. 선녀님이 찾아내셨어. 근데 악질이야. 아주 독한 것이야.”

그녀가 입가에 피를 쓰윽 문질러 닦아내며 마을 이장에게 물었다.

“혹시 근래에 외지인을 들인 적 있소?”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이장이 말하자 옆에 있던 노인이 끼어들었다.

“아! 천가네. 천가네 막내 아들이 이번에 양년이랑 결혼했잖아.”

“아 그러네 그려.”

도순이 끼어들어 말을 이어나갔다.

“어찌되었든 이 마을에 새로 들어온 잡귀인데 보통 놈이 아니오.”

도순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영배 아빠를 보며 말했다.

“이 놈을 죽여야 아이가 사네. 근데 선녀님의 힘으로는 물리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구만.”

영배 엄마가 끼어들어 간절하게 호소했다.

“아이고 보살님. 살려주세요. 제발 우리 영배 좀 살려주세요. 뭐든 다 하겠습니다.”

도순이 고민하더니 어렵게 입을 뗐다.

“장군님을 불러야 하네. 근데 그냥 오실분이 아닐세. 아주 까다로운 분이시네. 정성을 더 보여야 해.”

“아무럼요. 다 드릴께요. 우리 영배만 살려주셔요.”

도순이 결심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무복을 입은 여인들에게 말했다.

“저기 감나무에 숨어있다. 도망가면 안되니 담장 뒤로 가 금줄을 치게나.”

고개를 숙여보인 두 여인은 얼른 자리를 옮겨 대문밖으로 사라졌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순은 사람들을 향해 잠시 기다리란 말을 남기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나 다시 모습을 드러낸 도순은 아까와는 다른 복장이었다. 젖은 쾌자와 장삼을 벗고서 검정과 파랑의 구군복(具軍服)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머리에는 검은색의 꽃갓을 쓰고 양손에 각각 두 자 길이의 중도(中刀)를 쥐고 있었다. 잡귀를 쫓기 위한 은색의 금위칼이었다. 그녀의 위용이 대단했다. 그녀는 터벅터벅 다시 흙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러더니 천천히 검을 휘젓기 시작했다.

“잡이들은 뭐하는가? 장군님을 불러야겠네.”

도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악사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조금 전보다 더욱 경쾌한 음악이었다. 도순은 장구가락과 피리소리에 맞추어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빗속에서도 펄펄 날아다녔다. 어둑어둑한 날씨가 배경이 되자 한 편의 흑백영화가 펼쳐지는 듯 했다. 검은색의 구군복이 펄럭이고 은색의 칼날이 번뜩거리는 모습은 귀기스럽기도 했고 또한 신묘하기도 하였다.

도순은 힘이 드는 것도 모르고 20분이나 검무를 추어댔다. 그리고 마침내 땅에 두 발을 굳게 디디며 멈추어 섰다. 뒤따라 악사들의 연주도 멈추었다. 도순이 저벅저벅 감나무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이내 감나무 앞에 선 도순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내 검에 자비란 없네. 안녕히 가시게.”

그녀가 양 손에 든 칼을 번갈아가며 사정없이 휘둘렀다. 나무 기둥에 검날이 박히며 조금씩 생채기가 생겨났다. 그녀는 온 힘을 다했지만 나무에 큰 상처를 남기지는 못하였다. 뒤에서 지켜보면 별 의미없는 몸부림 같아 보였다. 하지만 누군가의 외침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동요가 일었다.

“피, 피다. 나무가 피를 흘리고 있어.”

어둠이 완연해 확연히 드러나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나무 기둥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도순이 휘두르는 검날에도 피가 묻어 이리저리 흩뿌려지고 있었다.

“정말… 정말 귀신이다.”

노인의 외침이 장내를 메웠다.

“누나. 나 무서워.”

민철은 연희의 품에 파고들며 두 눈을 꾹 감아버렸다. 굿 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연희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연희 역시 민철을 꼭 끌어안으며 으스스한 몸을 달래었다.

도순의 칼질이 멈추었다. 나무는 붉은 피로 물들었다. 도순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쥐고 사람들 쪽으로 걸어왔다. 사람들은 이 괴기스러운 상황을 지켜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나 영배 아빠와 엄마는 두 눈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천근같은 몸을 이끌고 마당 가운데 선 도순은 바닥으로 풀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마지막을 맞이하는 장수처럼 힘겹게 말했다.

“이제 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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