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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땅구 10화

땅구

1.축복과 저주(10)

by 유봉

요란하게 내리던 비가 한순간에 뚝 그쳐버렸다.

“누나. 정말 귀신 봤어?”

민철은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인 표정이었다. 도순이 굿을 펼치는 내내 연희의 품에 안겨 두 눈을 꼭 감고 있던 민철은 이제와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도순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 본 연희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힘들었다. 연희가 대답이 없자 민철이 다시 물었다.

“정말로 어머니가 귀신을 혼내준 거야?”

연희는 도순의 모습이 떠오르자 두려운 얼굴로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응.”

남매는 대문 앞에 서 있었다. 허나 감나무집은 아니었다. 도순이 귀신을 물리쳤다지만 남매는 계속 그 집에 남아있는 것이 무서웠다. 사람들이 도순을 부축해 집안으로 들어간 사이, 남매는 후다닥 대문 밖으로 나와 버렸다. 멀리 갈 수는 없어 담벼락 아래에서 춘광을 기다리려 했지만, 한 사내가 나와 아이들을 다짜고짜 쫓아내었다. 어쩔 수 없이 남매는 골목 어귀를 어슬렁댔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어둠을 견디기는 힘들었다. 가뜩이나 굿판에서 귀신을 잡는 것을 보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침 가까운 곳의 집 한채가 불을 밝히었다. 굿판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간 노인의 집이었다. 집안의 불빛이 대문밖으로 새어나와 어둠을 힘겹게 밀어내었다. 그것이면 충분하였다. 연희는 얼른 민철을 이끌고 어둠을 피했다.

연희와 민철은 두 집 건너에 있는 감나무집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누군가 휴대용 전등을 거꾸로 메달아 불을 밝혀 농았다. 때문에 대문 앞은 마치 스포트라이트 불빛을 받은 연극 무대처럼 보였다. 그 뒤로 감나무 가지가 검은 실루엣을 드리우자 누군가 무대에 올라 기묘하고 으스스한 이야기를 들려 줄 것 같았다. 남매는 두려움과 추위를 참아내며 어서 춘광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이장을 비롯한 동네 노인들은 집으로 돌아간 지 오래였다. 그 사이 몇몇 사람들이 감나무집 담벼락을 돌며 정리를 했고, 대문 안으로 들락날락 거리며 짐을 옮겼다. 그리고는 전부 남매가 있는 곳과는 반대쪽 내리막길로 가버렸다. 이제 안에는 몇 사람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다.

마침내 대문 밖으로 춘광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부지!”

민철은 말릴 새도 없이 춘광을 향해 반갑게 뛰어갔다.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나온 춘광은 민철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민철이냐?”

춘광은 민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짙게 깔린 어둠 때문은 아니었다. 민철이 얼른 달려와 손을 잡아주자 그제서야 알아채고 웃어주는 춘광이었다.


이 봉사(奉事).

사람들은 흔히 맹인들의 청각이 더 뛰어나다 말한다. 정확하지 않은 말이다. 시력을 잃으면 청력이 좋아진다? 이런 감각 보존의 법칙을 발견했다면 의학계는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인간의 뇌는 신경 가소성이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특정 감각이 차단되면 그 기능을 다른 감각이 보완하는 것이다. 시력을 잃게 되면 당연히 다른 감각으로 사물을 인지하고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이때 청력이 가장 적극적으로 작용하며, 뇌는 소리의 방향, 주파수 구별, 음향 정보 분석 등의 작업을 더욱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소리에 집중할 때에 눈을 감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맹인들이 조금 더 섬세한 음악적 감각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이치를 알고 있었다. 과학적 근거는 댈 수 없었지만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맹인들의 청각적 감각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음악 분야에서 특출난 재능으로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맹인들을 악공(樂工)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주로 장악원(掌樂院)에서 궁중 음악을 연주하며 국가 행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때에 공로를 인정받아 봉사(奉事) 직위를 하사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봉사는 종8품의 품계로서 비록 낮은 지위의 하급 관리였지만, 엄연히 나라의 녹봉을 받고 일정한 권한이 주어지는 정식 관료였다. 또한 능력을 인정받으면 정7품 이상의 관리로도 승진이 가능했다. 이 말인 즉, 신분상승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관리에 등용될 기회가 적은 맹인들은 이것을 신분상승의 통로로 적극 활용하였다. 하여 봉사의 직위를 받기 위해 음악에 매진하는 맹인이 많아졌으며, 조정 역시 이를 맹인들의 등용문(登龍門)으로 관대하게 열어주었다. 이러한 연유로 봉사 직위에는 맹인들이 점점 늘어났고, 어느날부터 사람들은 봉사라는 직위를 맹인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였다.

사람들은 춘광을 이봉사라 불렀다. 그가 바로 맹인 악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청이 처럼 착하고 예쁜 딸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춘광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였다. 다행히 그는 좋은 부모 밑에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애지중지 자라날 수 있었다. 그의 인생은 한 단어로 정리하면 음악이었다. 그는 크리스천이었던 부모 탓에 어려서부터 성가대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맹인학교에 들어가 조금 더 전문적인 음악을 배우게 되었다. 춘광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건 아니었지만, 그도 음악을 좋아했고 그 외에 다른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열네살이 되어 그는 음악의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엘리트 코스를 준비했다. 춘광은 그의 성격만큼이나 부드럽고 우아한 소리를 가진 바이올린을 전공으로 택하였다. 그의 부모는 좋은 학교를 찾아 주었고 또 좋은 스승을 붙여 주었다. 그렇게 그는 6년이 넘는 시간동안 바이올린에 매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쿨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는 스스로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좌절했다. 그 후로 그는 바이올린을 잡지 않았다.

춘광은 보통의 인생을 살아가려 했지만 맹인에게 보통의 인생이란 없었다. 직업을 가지려 해도 쉽지 않았고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려 해도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4년을 방황하다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바이올린이 아니라 클라리넷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옛 스승의 권유 때문이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그에게는 클라리넷이 조금 더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다시 음악에 열정을 불태운 그는 마침내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의 나이 서른 두살의 일이었다.

비록 도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오케스트라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 오히려 그에게는 더욱 잘 된 일인지 몰랐다. 그곳에서 첫사랑 상희를 만나 결혼까지 했기 때문이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상희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그녀 역시 시력을 상실한 장애인이었는데 춘광과는 달리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은 경우였다. 그녀는 베체트병 환자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염증들이 전신에서 발생할 수 있는 희귀 질환이었다. 환자들은 평생동안 염증과 궤양에 시달리며 살게 되는데 최악의 경우가 안구에 발생하는 염증이었다. 불행하게도 상희는 스무살이 되어 발생한 안구의 염증을 치료하지 못해 시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듬 해 춘광의 인생에서 가장 축복된 날이 찾아왔다. 바로 연희의 탄생이었다. 하늘의 가호가 있었는지 연희는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다. 허나 안타깝게도 춘광과 상희가 인연을 맺게 된 그 이유로, 두 사람은 연희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알지 못하였다. 연희가 얼마나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를.

또 한번의 축복이 찾아왔다. 상희가 민철을 임신한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상희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였다. 질 내부에 생긴 궤양이 제대로 치료가 안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사가 출산을 만류했지만 상희는 거부했다. 춘광도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그녀의 고집과 노력으로 민철이 태어날 수 있었지만,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그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 춘광은 부인을 잃고 아들을 얻었다.

맹인인 춘광이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행히 그의 부모님이 정정하여 아이들을 키워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엄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했던 춘광은 계속해서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2년 전, 아는 사람의 소개로 도순을 만나 재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춘광은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매우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새로운 가정을 꾸린 그는 이제 아이들과 음악만 있다면 부러울 것이 없었다. 클라리넷이 아닌 피리를 연주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한 일이었지만, 아이들을 챙겨 줄 엄마가 생겼다는 사실에 만족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불행한 것은 그가 음악 외에는 세상 물정을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연희가 다가와 말하자 춘광이 손을 내밀며 반가워했다.

“오호 연희도 온 게야?”

연희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가 연희의 팔을 더듬어 가며 얼굴로 손을 가져다 댔다.

“여기는 왜 온 거야? 집에 있지 않고서. 비가 이렇게나 쏟아지는데.”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그가 누굴 걱정할 처지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가래가 잔뜩 낀 것처럼 탁했고, 홀쭉한 얼굴은 거무튀튀하여 생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 눈에 보아도 그의 건강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민철이 냉큼 대답했다.

“누나가 아버지 약 갖다 드린다고 왔어요.”

“약? 무슨 약?”

춘광은 영문을 모르는 듯 하였다. 민철은 입고 있던 연희의 자켓 주머니에서 얼른 약통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성냥갑 크기 만한 원형의 약통이 익숙한 듯 그가 금세 알아차렸다. 그러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약통을 바꾼 것을 내가 말을 안했구나. 요놈은 너무 작아서 찾기가 힘들지 뭐냐. 그래서 조금 더 큰 걸로 바꿨다.”

“에이~ 괜히 왔다. 누나.”

김이 샌 얼굴을 한 민철의 옆에서 연희가 다소곳이 말했다.

“전화를 안 받으시길래요.”

“그랬구나. 중요한 일이니 전화는 차에 두고 왔지.”

“다행이에요. 전 아버지가 약을 거르셨을까봐 걱정이 되서요.”

하루하루 야위어 가는 춘광을 보며 연희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딱히 할 수 있는게 없어 애만 태울 뿐이었다.

“지 애비 걱정은 아주 끔찍하게 하는구나.”

도순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대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민철은 얼른 춘광의 옆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연희 역시 도순이 두려웠지만 티내지 않고 다가가 짐을 받아주려 했다.

“이리 주세요.”

도순은 자연스럽게 연희에게 짐을 건넸다. 무구(巫具)가 잔뜩 담긴 가방은 그 무게와 부피가 열 살 소녀에게는 걸맞지 않는 것이었지만 도순은 개의치 않았다. 연희가 낑낑대는 것을 보면서도 그녀는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

“그렇다고 이런데를 함부로 오면 어떡하느냐. 부정타면 어쩌려고.”

연희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으나 재빨리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해요.”

“애들이 모르고 그런건데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춘광이 끼어들어 말리자 도순은 더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춘광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있는 민철을 쏘아보았다. 안그래도 부리부리한 눈에 선이 굵은 얼굴을 가진 도순은 짙은 화장에 새하얀 장삼까지 걸쳐놓자 그야말로 귀신 같은 모습이었다. 입가에 선혈자국까지 남아있는 것을 보고 민철은 완전히 기가 질려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제 엄마를 저렇게 악귀보듯 하다니. 도순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니. 영배는 이제 괜찮은 거에요?”

도순이 순간 인상을 팍쓰며 눈에 힘을 주었다. 연희는 무슨 잘못을 한지도 모르고 흠칫하였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춘광이 순진한 얼굴로 말했다.

“걱정 안해도 된다. 네 어머니가 누구냐. 그 모시기 힘들다는 신들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다.”

무속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던 춘광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무속인 다운 태가 났다. 전부 도순이 가르쳐 준 덕분이었다. 그는 도순의 능력을 아주 높게 평가했다. 도순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말을 하면 항상 그것대로 흘러갔다. 그녀에게 고맙다며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오늘 벌인 굿판만 보아도 그랬다. 귀신의 넋을 달래는 진오귀(鎭惡鬼)굿으로 시작해, 신력(神力)을 빌어 직접 악귀를 물리치는 신통방통한 모습까지, 이는 무당이라고 누구나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여인이 평소 생활에서도 똑 부러지는 성격으로 빈틈없는 일처리들을 보여주니 춘광이 그녀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춘광은 거의 모든 일들을 그녀에게 상의하거나 맡겨놓고 있었다.

절대적인 믿음을 보이는 춘광의 말에 안심을 한 연희는 그제서야 도순의 입가에 묻은 피가 눈에 들어왔다. 울컥울컥 피를 토하던 도순의 모습이 떠오르자 연희가 걱정스레 물었다.

“어머니는 괜찮으세요? 피가 많이 나던데.”

도순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빨리도 물어보네.”

머쓱해하는 연희를 보며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도순은 춘광을 흘깃 보더니 입을 닫아 버렸다.

“정리 다 됐어.”

담벼락 모퉁이에서 한 사내가 큰소리로 말했다. 어둠속에 서 있는 남자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체격이 아주 크고 다부져 보였다. 도순은 사내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물건들은 다 실었고?”

도순이 묻자 사내가 염려하지 말라는 듯 답했다.

“진작에 다 실고 차는 요 앞에 대 놨어.”

“저쪽도 다 정리했고?”

도순이 말하는 저쪽이라는 게 어디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사내는 구수한 말투와 걸걸한 목소리로 답하였다.

“걱정 붙들어 매쇼.”

도순은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공허한 눈빛과 살짝 말려 올라간 입꼬리가 슬픈 듯 슬프지 않아 보였고, 기쁜 듯 기쁘지 않아 보였다. 그녀가 짧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갑시다. 집으로.”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의 도로와 검은색 승용차는 어둠에 스며들기 위한 완벽한 조합이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한 채 저 멀리 보이는 시내의 빛무리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은 2003년식 에쿠스 차량이었다.

“니미럴. 다 끝나니까 비가 멈추네.”

운전대를 잡고서 넋두리를 해대는 사내는 장구잽이 홍영길이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검게 그을린 피부 그리고 숯검댕이처럼 짙은 눈썹을 가진 그는 힘깨나 쓸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가 조금전 담벼락에서 도순과 대화를 주고받았던 인물이었다. 연희 남매를 감나무집에서 멀리 쫓아 낸 것 역시 그였다. 그의 말투에는 어느 지역인지 가늠할 수 없는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이 지역 저 지역을 떠돌아 다니며 살아온 역마살(驛馬煞) 인생이라 그런 것이었다. 그 말투 때문에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내였다. 그의 푸념을 춘광이 받아주었다.

“산천신(山川神)이 오늘 특별히 바쁘셨나 보네.”

영길이 뒷자리에 앉은 춘광을 룸미러로 보며 넋살좋게 말했다.

“형님도 참. 이제 영락없는 화랭이네요.”

“허허. 그러게 말일세.”

영길은 룸미러에 같이 보이는 아이들이 궁금해 물었다.

“근데 야들은 누구에요?”

민철과 연희가 춘광의 옆으로 나란히 앉아있었다. 낯선 분위기에 억눌린 남매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눈알만 굴려대고 있었다.

“누구긴 누구야. 새끼들이지.”

대답을 한 것은 조수석에 앉아 있는 도순이었다.

“아주 이쁘고 잘생겼네 그려.”

영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가 보니 아이들은 아주 귀하게 자란 듯 보였다. 특히나 큰 아이는 백옥처럼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얼굴 또한 어디 한 군데 모자람이 없었다. 어딜가든 꽤나 이목을 끌 것 같은 외모였다. 게다가 양갓집 규수처럼 교육을 받았는지 나이답지 않게 다소곳하고 예의도 바른 것이 훗날이 기대되는 아이였다. 그가 아이들 칭찬을 하자 춘광이 기분이 좋아 대꾸하였다.

“그런가?”

“정말이오 형님. 크면 다들 한 인물 하겄네.”

춘광보다 두 살이 어린 영길은 꼬박꼬박 형님 소리를 붙여가며 춘광을 깎듯하게 대했다. 그가 도순에게 하는 것도 그렇고 춘광을 대하는 것도 그렇고 능글맞은 면이 있었다. 좋게 보면 사람 기분을 맞춰주는 재주가 탁월하다 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차안의 어색함이 잠시 가라앉았다. 꼿꼿하게 앉아있던 민철은 좀이 쑤셨는지 히죽거리며 연희에게 소심하게 장난을 쳤다. 하지만 금세 또 얼어버리고 말았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운전이나 잘 해.”

도순은 심기가 불편한 것인지 아님 피곤해서 그런 것인지 시종일관 쌀쌀맞은 태도였다. 그녀가 영길을 타박하자 춘광은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춘광은 선비같은 사람이었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한적 없는 그가, 하물며 아이들 엄마에게, 그것도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를 낼 리가 만무했다. 그는 그저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피하려 넋살을 부리며 말했다.

“왜요? 여보. 난 듣기 좋은데. 아이들이 이쁘다는 건 부모한테 하는 칭찬 아니겠소.”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역시나 냉랭한 반응이었다.

“밖에선 그 여보라는 말 쓰지 말라니까요.”

도순 덕분에 차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연희는 살며시 춘광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그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흔들리는 몸을 가눌 뿐이었다. 연희는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은 솜뭉치 같은 구름을 조금씩 밀어내며 부끄러운 듯 감춰 두었던 수채화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속에 아무렇게나 점을 찍어 놓은 듯한 별들이 수십 수백가지의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연희는 그 속에서 그리운 얼굴들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 얼굴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흐릿한 표정을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연희는 살며시 두 눈을 감았다. 별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아주 가늘고 고운 소리였다. 그 안에서 그리운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언제나 연희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두 사람.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민철은 물론이고 연희조차도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한 장의 추억도 쌓지 못하고 떠나버린 엄마는 그리움이라 말하기엔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그런 엄마를 대신해 연희를 품어주고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다. 노부부는 아낌없는 사랑으로 또 정성가득한 기도로 상희의 빈자리와 춘광의 부족함을 메워 주었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 같던 두 사람은 이제 없었다. 일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노부부는 보고 싶어도 더이상 볼 수 없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삶의 반대말일까? 또 다른 삶의 시작인걸까?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인걸까? 이런 것을 고민하기엔 연희는 아직 너무 어렸다. 그 어린것의 마음은 한결 같았다.

‘더이상 죽음도 고통도 없었으면 좋겠어.’

연희는 그렇게 순수한 마음을 지켜내고 싶었다. 하지만 불안했다. 날이 갈수록 급격히 악화되는 춘광의 상태가 더없이 불안하기만 했다. 그마저 떠난다면 연희는 삶의 빛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마지막 버팀목인 아버지만큼은 꼭 지켜내고 싶은게 연희의 바램이었다.

콜록. 콜록. 폐부에서부터 터져나오는 무거운 기침소리가 정적을 깨웠다. 춘광이었다. 놀란 연희가 얼른 그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으세요. 아버지?”

춘광이 괜찮다는 손짓을 해보였지만 기침이 잦아들지 않았다. 도순이 고개를 돌려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단지 그 뿐이었다. 기침이 길어지는 동안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영길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아요. 형님.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

춘광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보았지만 기침은 좀처럼 멎지 않았다. 수십번이나 기침을 해댄 춘광은 골이 아픈 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때였다.

“아, 아버지!”

연희가 울먹이며 외쳤다. 춘광의 손에 새빨간 피가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그 소리에 도순이 춘광을 살폈다. 그의 입가에 핏물이 잔뜩이었다. 도순도 조금은 걱정이 된 얼굴이었다.

“안되겠네.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다녀와야겠어요.”

“괜찮아요. 괜찮아. 그냥 기침 좀 한 걸 가지고.”

춘광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목소리가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민철도 적잖이 놀랐는지 말을 보탰다. “아버지. 병원에 가요.”

“괜찮대도.”

도순이 건네준 휴지를 받아 연희가 춘광의 손을 닦아주었다. 그 사이 도순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자 그녀는 날이 잔뜩 선 음성으로 통화를 했다. 춘광의 주치의는 내일은 쉬는 날이라며 고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의사도 별 수 없었는지 결국 그녀의 뜻대로 되었다. 전화를 끊은 도순이 말했다.

“내일 오전에 정박사한테 다녀옵시다.”

“허 참. 괜히 나 때문에 여럿 고생하네.”

도순은 이렇듯 집안에 문제가 생길때면 발빠르게 처신했다. 비록 살가운 면이 부족했지만 장님 남편과 어린 남매를 보살피는데는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연희는 도순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머니. 내일 저도 같이 가면 안될까요?”

연희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도순은 못마땅한 투로 말했다.

“네가 거길 가서 뭐하려고?”

“그냥 걱정이 돼서…”

“네가 가면 민철이도 따라올 테고, 어디 소풍가는 줄 아느냐?”

도순의 따끔한 일침에 연희는 더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저 근심어린 눈빛으로 춘광의 손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 작은 소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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