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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땅구 08화

땅구

1. 축복과 저주(08)

by 유봉

“병원 안가면 안돼?”

아침부터 투정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곳은 현관 앞 단구의 지정석이었다.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된 단구가 만사 귀찮다는 듯 벌러덩 누워서 시위를 벌이는 중이었다.

“선생님이 단구 꼭 보고 싶어하는데?”

화장실 안에서 선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잠시 멈췄던 드라이기의 모터소리가 다시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거짓말! 엄마는 맨날 거짓말만 해.”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큰소리를 친 단구는 가만히 누워있는 것도 좀이 쑤셨는지 두 다리를 들어 물장구를 치듯 발장난을 쳐댔다.

“진짜야. 선생님이 단구보면 되게 좋아하실 걸.”

늘상 있는 일이었기에 선정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래도 안 갈래.”

잠시 후 드라이기 소리가 멈추고 선정이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잠옷 차림의 그녀는 머리를 닦았던 노란 수건을 빨래통에 던져 넣고는 단구를 쳐다보았다.

“그럼 짜장면 안 먹을거야?”

선정의 필살기였다. 단구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좌우로 몸을 굴리며 고민했다. 선정은 그럼 그렇지 하며 피식 웃었다. 허나 잠시 후 그녀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 들려왔다.

“안 먹어!”

선정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단구가 짜장면을 거부하는 건 처음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백문조 교수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처음 상담을 받은지 닷새만이었다. 선정은 교수가 내 준 숙제는 풀지 못하였다. 명하가 다녀가고 연 이틀동안 쉴 새 없이 면접을 보러다닌 덕분이었다. 하루종일 전화기 앞에 앉아 벼룩시장을 들추던 그녀는 가까운 곳에 일자리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치만 하나같이 선정을 내켜하지 않았다. 단구의 문제도 문제였지만 그녀에게는 직장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탓에 단구와 깊은 이야기를 할 시간을 놓쳐 버린 것이었다.

선정이 한번 더 좋은 말로 타일렀다.

“빨리 씻어. 그러다 늦어.”

“싫어! 안 간다니까.”

단구가 오늘따라 더 심하게 응석을 부리자 선정의 신경도 예민해졌다. 그녀가 단구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김단구. 일어나봐.”

단구는 못 들은 척 반대쪽으로 데굴데굴 몸을 굴렸다. 그 모습이 귀여울 법도 했지만 선정은 약속에 늦을까 염려되어 짐짓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말 들어! 혼나기 전에.”

그제서야 못 이기는 척 일어나 앉는 단구였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접고 앉아 단구와 눈을 맞추었다.

“왜 그러는데?”

입을 꾹 닫은 단구는 할 말은 있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단구와 잠깐의 신경전을 벌이던 선정이 다시 한번 달래듯 물었다.

“말 안 할 거야? 엄마한테 화났어?”

단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선생님이 정말 우리나라에서 최고야?”

단구는 백문조 교수가 못미더운 모양이었다. 이럴때에 우물쭈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 선정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맞아.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 단구도 봤잖아.”

단구가 중얼거렸다.

“아닌데. 잘 모르던데.”

“그게 무슨 소리야?”

선정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지만 단구는 딴청을 부리며 대답을 피했다. 그녀는 단구가 병원에 가기 싫어 괜한 말을 하는거라 생각했다. 거실벽에 걸린 시계가 8시 40분을 가리키자 그녀는 더이상은 받아주지 않겠다는 듯 최후통첩을 날렸다.

“아무튼 늦었으니까 빨리 준비해. 엄마 얼른 갖다가 오후에 또 면접보러 가야 해.”

선정은 대답도 듣지않고 일어섰다. 상담예약 시간이 9시 40분이었다. 당산에서 고속터미널까지 택시를 타면 아무리 빨리간다 해도 30분은 걸릴 터였다. 차가 조금이라도 막힌다면 시간을 맞추기 힘들 것 같아 그녀는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단구는 뭐가 맘에 안드는지 꿈쩍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싫어. 안 가.”

단구가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선정도 이제는 짜증을 참기 힘들어졌다.

“너 정말 혼날래? 엄마 때문에 병원 가는거야? 누구 때문에 이러는지 몰라?”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단구가 슬며시 눈치를 살폈다. 허나 여전히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선정이 냉랭한 기운을 풍기며 매몰차게 말했다.

“정말 안 갈거야? 그럼 명하이모랑 살래? 이모한테 전화할까? 엄마는 말 안 듣는 단구랑은 못 살아.”

단구는 삐쭉 내민 입술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선정은 모른 채 하며 TV옆에 놓인 전화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전화 한다.”

선정이 수화기를 집어들고 다이얼을 누르려 하자 단구가 서럽게 외쳤다.

“아빠도 엄마가 그렇게 해서 잘못 된 거잖아.”

“… …”

선정의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놀란 눈만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녀가 애써 태연한 척 물었다.

“누가 그래?”

단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훌쩍거릴 뿐이었다. 그런 아이를 빤히 쳐다보며 선정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명하뿐이었다. 단구가 누군가한테 들었다면 명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선정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명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흘 전 밤, 단구는 분명히 잠들어 있었다. 명하는 새벽녘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고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 사이 명하가 몰래 다녀갔을리는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정이 물었다.

“명하이모가 그래?”

“아니야.”

단구는 서운해서 였는지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였는지 선정을 등지고 돌아 앉아 버렸다. 그녀가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다그쳤다.

“김단구. 엄마 보고 말해. 누가 그런 말을 해?”

소용없었다. 단구는 서럽게 눈물만 흘려 댈 뿐이었다. 선정은 한숨을 푹 쉬었다. 고집으로는 그녀가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경험상으로 계속 다그쳐 봤자 더 크게 울기만 할 게 뻔했다. 단구가 우는 건 정말 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선정도 마음을 누그러트리고 단구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단구의 다리를 슬쩍 끌어당기더니 마주보게 만들었다. 단구는 이제 눈물도 모자라 콧물까지 찔찔 흘려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선정은 그만 저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나왔다. 그녀가 단구의 진득한 콧물을 손바닥으로 쓰윽 문질러 닦아주며 말했다.

“단구야. 아빠는…”

“아빠도 정말 나랑 똑같았어?”

단구가 정확히 무엇을 묻는 건지 알 수 없어 선정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단구가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목소리가 들린거야?”

선정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반가움이 아니라 미안함이었다. 며칠 전 명하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끊겨버린 대화를 단구가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이 어린것이 얼마나 마음이 어지러웠을까 하는 생각에 그녀는 꾸욱 깨물었던 입술을 애써 말아올리며 미소를 보였다.

“응. 그런데 아빠는 그 목소리가 뭔지 말을 안해줬어.”

“난 그게 뭔지 알아.”

담담하게 내뱉은 단구의 말에 선정의 가슴은 번지점프대에 선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들어맞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단구가 아빠와 똑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만약 그렇다면, 유전이 되지 않는다는 정신적 문제를 왜 부자가 똑같이 갖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은 그녀 뿐이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니까 단구가 말해주면 안될까?”

“엄마는 그런 단구를 싫어하잖아.”

풀이 잔뜩 죽은 목소리였다. 잠잠해진 눈물이 또 다시 터져나올 것 같은 눈망울이었다. 선정이 재빨리 대답했다.

“아니야. 엄마가 단구를 왜 싫어해?!”

단구가 고개를 들어 선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서러운 듯 울먹이며 대꾸했다.

“거짓말! 엄마가 소리쳤잖아.”

무슨 소리를 쳤다는 걸까? 선정은 단구가 말하는 시점이 언제인지 몰라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그런 그녀를 원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단구가 말했다.

“내가 처음 말했을 때! 엄마가 싫다고 안된다고 막 화냈잖아.”

선정은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 사건이 터진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왜 갑자기 친구들을 때린 건지, 그녀는 단구를 앉혀놓고 물었었다. 단구는 친구들이 먼저 욕을 하고 놀렸다고 대답했다.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이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비명을 질렀다는 단구의 말에 선정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선정이 무슨 목소리? 라며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단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목소리가 들린다고. 뭔지 모를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고. 선정은 아연실색 하였다.

그렇지만 그녀의 기억속에 단구를 향해 화를 낸 상황은 절대로 없었다.

“엄마가 언제?”

단구는 다시 눈물을 터트리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그날, 내가 싫다고, 저주받은 거라고 소리쳤어. 마음 속으로.”

“그게 무슨…”

선정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는 단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조금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가 밉다는 듯 단구는 더 서럽게 울어댔다. 그리고 더이상 혼자서는 비밀을 간직하기 버겁다는 듯 외쳤다.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난 다 들린 단 말이야! 마음소리가.”

“…”

“그래서 가까이 갈 수가 없단 말이야!”

“…”

“엄마가 생각하는 거 나한텐 다 들려!”

선정은 꿈을 꾸는 듯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단구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겁이 날 뿐이었다. 그녀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단구가 말했다.

“못 믿겠으면 아무거나 말해 봐. 마음속으로.”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선정은 단구의 말대로 했다. 그러자 곧바로 단구에게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4월 9일. 내 생일!”

고민없이 떠올린 건 단구의 생일이었다. 문제가 너무 쉽다고 생각한 걸까 선정은 의식적으로 단구가 모르는 날짜를 떠올렸다.

“12월 21일. 아빠 생일!”

단구에게서 지체없이 대답이 흘러나오자 선정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장우의 생일을 단구가 알고 있을 리 없었다. 혼란스런 와중에도 선정은 다른 걸 떠올려 보았다.

“동명국민학교. 6학년 4반. 정경미”

선정의 출신학교와 담임선생님. 여지없이 그녀가 떠올린 말이었다.

“맞아… 어떻게… 어떻게 알았어?”

선정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 엉뚱한 생각을 떠올렸다. 단구하고 나하고 둘 중에 하나는 미친게 아닐까 아님 둘 다 미쳤거나.

“엄마도 나도 미친 거 아니야.”

또박또박 대꾸하는 단구의 말에 선정은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었다. 단구가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단구는 그녀의 생각을 읽고 있는 것이었다.

“잠깐! 잠깐만 단구야.”

선정은 두근대는 가슴과 복잡한 머릿속을 어찌할 줄 몰랐다. 단구가 장난을 치는 건 분명히 아니었다. 이런걸로 어떻게 장난을 친다는 말인가. 독심술이 있다는 세계 최고의 마술사도 이렇게 즉흥적으로는 하지 못 할 일이었다. 긴 호흡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은 선정이 말했다.

“한번만, 한번만 더 해봐. 단구야.”

그러더니 그녀는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것을 조합하여 말이 안되는 문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단구를 보며 기다렸다.

“혹등고래와 말미잘로 만든 김치찌개.”

허탈한 웃음을 토하며 선정이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전화기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전화기 옆에 놓인 백문조 교수의 명함을 집었다. 그리고 천천히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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