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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Aug 25. 2024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고요?

"가족이라 하지 마이소~"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가사 아닌가요? 네, 김신영 님이 부른 '주라주라'의 한 소절입니다.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는 주제로 회사 생활의 피곤함을 풍자한 노래입니다. 여러분도 가족 같은 회사는 정말 없다고 보시나요? 저의 대답은 'NO'입니다. 저는 이미 가족 같은 회사에서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거든요. 가족 같은 회사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없는 형편에 없는 살림,

초기 스타트업



제가 다녔던 곳은 초기 스타트업이었어요. 비품부터 운영비까지 당연히 회사에는 충분한 것들보다 부족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하나하나 살림을 조금조금씩 형편에 맞게끔 꾸려나가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직원은 대표를 포함해서 5명이 전부였습니다. 각자 성도 다르고, 태어난 곳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며 회사가 아니라면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을 사람들이 모여있었지만,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근이요? 사무실에는 이미 야근을 반기는 접이식 침대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한 분은 집에 가는 게 멀고 귀찮다고 사무실에 제 한 몸 누우면 딱 아늑한 공간을 마련해 두고서는 숙식을 모두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접의식 침대에 피로에 찌든 몸을 기대어 누운 날이 많았어요. 집은 주말에 잠깐 들러서 잠을 청하는 곳이 되었죠. 이런 생활이 적어도 입사하고 나서 2년 정도는 지속되었습니다. 만 2년이 지나고 회사가 투자를 받으면서 회사 형편이 급격히 좋아졌고, 사람도 많아지고 살림살이도 많이 구비가 되어가며 조금씩 회사의 모습이 바뀌어 갔습니다. 그렇게 약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5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150명이라는 직원이 일하고 있는 꽤나 중량급의 스타트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동고동락의 결정체

입사 후 2년까지



5명, 15명, 50명, 그리고 150명. 매해 직원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초기에 한 명이서 일당백을 해야 했던 시절도 조금씩 희석되어 가고 있었지만, 이곳에서의 5년 동안 지금의 저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는 기억은 아무래도 입사하고 2년까지의 기억입니다.

 없는 형편에 구한 작디작은 사무실이었지만, 타지에서 올라와 고시원에서 외롭게 지내던 저에게는 그 어느 곳보다도 아늑한 곳이었습니다. 다들 한 번도 마주쳐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하루하루 업무를 공유하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를 애정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무실들이 이미 저녁 6시가 지나서 사무실의 불을 끄고 집으로 들 귀가하는 시간에도 여전히 회사의 사무실은 전기세가 아깝지도 않은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다들 업무에 찌들어 피곤함을 풍기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회사를 성장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치며 몰려오는 밤을 꾸역꾸역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의견이 맞지 않아서 침묵이 흐르기도 하고, 오해가 쌓여서 서로를 죽일 듯이 쏘아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또다시 의기투합해서 열심히 일하기도 하고, 갑자기 일하기가 싫어지면 서로 모여 게임도 하고, 서로의 생각이 달라 더 이상은 같이 할 수 없음을 느껴서 작별을 고하기도 했죠.




세상 모든 가족이 화목하기만 할까요?



사실 이런 모습이 회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여러분이 만일 초기 스타트업 취업을 염두하고 있다면 분명 마주하게 될 수도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모습이 너무나 '가족'같습니다.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은 보통 '화목함'을 모두의 이상으로 두고 열심히 각자의 사랑과 노력을 다른 구성원들에게 발현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 모든 가족이 화목하지만은 않습니다. 밝아 보이는 가족에게도 나름대로의 다사다난한 시간들이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속에서 영영 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나중에 다시 상처가 치유되어 서로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 때가 올 수도 있는 것이고요.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가족보다 더 가족이었던



<입사 4년, 연봉 1억, 내리막길의 시작>이라는 에피소드에서의 시절로 잠깐 돌아가 볼게요. 이미 제 마음속 엔진에는 때가 낄 때로 껴있고 기름을 붓고 시동을 걸어도 덜그럭 덜그럭 시끄러운 소리와 매퀘한 매연만 뿜어대던 그때 그 시절(그리고 그 사실도 모르던 그 시절). 저는 스스로 퇴사를 결정합니다. 절대 계획적인 결정이 아니었죠. 이 이상 이곳에서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지도 못하겠고, 일은 너무나 하기 싫고, 더 이상 사람과 일에 치이는 것이 두렵기만 하고, 이대로 가다간 내가 죽겠다는 생각이 육감적으로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인천 저 끝자락에서 물류센터의 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 힘으로 제 팀원들과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하나씩 일궈나가야 하는 일은 보람보다는 괴로움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미 갈릴대로 갈린 엔진으로는 효율이 날 리가 없었죠. 그 역할을 대표가 저에게 맡기기 전에 과연 내가 포기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견디며 해낼 수 있는 일인지, 과욕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의 상태를 한 번 즘은 면밀하고 냉정하게 점검해봤어야 했습니다. 

 과신의 결정체였던 선택에 좌절과 피로감 그리고 죽음의 경계까지도 생각한 나약했던 당시 저는 서울로 올라가 대표에게 퇴사를 말했습니다. 인천의 상황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성장이 더디다는 것은 이미 대표도 알고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책임은 온전히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저에게 있었고, 저는 겸허히 대표의 사표 수리를 받아들일 마음도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대표의 선택은 저를 품는 것이었습니다. 



학원 강사일을 하다가 만난 인연 덕분에 스타트업 재직 제안을 받던 술자리에서 저는 대표를 처음 만났습니다. 어색하기 그지없던 자리에서 대표는 저에게 회사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그 당시는 제대로 대표의 비전과 목표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입사 후 맞은편에 앉아있던 대표에게 많은 것을 배워가며 서서히 대표가 꿈꾸는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타지에서 올라와 외로이 살고 있던 것을 알고 있던 대표는 업무 외적으로도 챙겨주려 했습니다. 저녁을 사주거나, 흥미로운 행사에 같이 동행하기도 하고, 방탈출, 영화, 드라이브처럼 가족들이나 연인들과만 할 법한 것들도 했죠. 

 물론 일을 못해서 호되게 혼나보기도 하고, 대표의 피드백이 너무나 힘에 겨워 반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둘이서 눈물을 짜며 화해하고 의기투합하곤 했죠. 그렇게 대표와 함께한 시간이 만 5년입니다. 5년 동안 저는 제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나 함께 살던 동생의 얼굴보다 대표의 얼굴을 본 날이 몇 곱절 많았습니다. 고운 정, 미운 정이 쌓이다 못해 넘쳐흘렀습니다.




 그런 시간을 겹겹이 쌓아가다 보니, 대표에게 저는 그리고 저에게 대표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퇴사를 알린 날 대표는 무덤덤히 저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다시 서울로 돌아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인천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역할을 배치할 때에도 이미 실패도 염두를 했으며,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서울로 돌아와 함께 일 할 날을 상정해 두었다고 합니다. 

 네,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대표도 그런 저를 보고 마음이 약해졌는지 그 우락부락한 눈에서 눈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내 다시 눈물을 삼키긴 했지만, 이 당시 서로가 느낀 감정은 결코 하루 이틀 만에 쌓은 부서지기 쉬운 관계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고유하게 쌓아온 시간의 결이 맞닿아 발현되었던 것이라 저는 회상해 봅니다. 






세상은 넓고 회사는 많고

그 중에 가족같은 회사도 있기 마련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구성원이 서로 사랑하고 관계가 좋을까요? 가족이라는 단어가 화목함을 강요당하는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요? 물론, 실력과 경쟁 그리고 그 속에서 목표를 구현해 나가며 오로지 숫자와 성과에 집중된 조직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그런 성과주의 색깔이 적합한 환경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뒤섞이고, 그 감정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한 편으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결별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서로를 얼기설기 엮어가는 가족 같은 환경에서도 충분히 회사의 성장과 성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라는 말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오히려 그 명제의 역설에 본인만 고통스러워지고 회사 생활을 비관만 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 같은 회사는 정말 없다고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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