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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Sep 02. 2024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권고사직에 원인은 있지만 악인은 없습니다.

네,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누구에게나 흔하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퇴사를 결심한 저에게 대표가 다가와 어루만져주며 서로 눈물을 흘리던 극적인 시간이 지난 지 반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지난 에피소트 참고)

 

기업이 권하는 사직을 근로자가 수락해 퇴사하는 것. 의미는 너무나 정갈하고 배려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권고사직에서 '권유'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갈등과 마찰 그리고 충돌과 싸움으로 확장이 되어 서로의 가슴에 대못 서너 개는 박아대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게 흔한 일일 겁니다.



저의 권고사직 또한 해피엔딩은 아니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왔지만 무언가를 헤쳐나가기엔 연료가 모두 바닥나서 엔진을 마모시키기만 하던 저는(그 당시엔 모르고 있었죠) 어떻게든 헤쳐나가기 위해 자신을 채찍직 했습니다. 조직에게 있어서 일터라 함은 각자가 처한 상황과 이해관계 속에서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토론장이자 전쟁터입니다. 좋든 싫든 일로서 마주해야 할 여러 관계 속에서 부대끼는데 너무나 큰 피로가 누적되어 버린 나머지, 저는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일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최대한 부대낌을 저 한편으로 미루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대표도 이런 저의 방식을 존중해 주었죠.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또한 나 자신도 다른 누군가의 언행에 상처받고 무기력해지지 않도록.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의 이런 행동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습니다. 저를 향한 주변의 아우성조차도 듣지 못할 정도로.


"저 사람은 뭔데 저렇게 본인 하고 싶은 대로 일을 하는 거야?"

"초기 멤버로 들어왔으니 당연한 특권이란 거야?"

"일을 잘하는 사람이기는 하는데, 왜 이렇게 싹수없어?"

"일을 하는 건 맞는 거야?"


제 팀원이든, 다른 부서의 사람이든 저에 대한 온갖 소문과 의문은 널리 퍼지고 퍼져서 사실로 둔갑했습니다. 물론 고립을 자초한 저에게 들릴 일은 없었죠.

 혼자서 일을 하면 외로워집니다. 인간적 외로움을 차치하고 저의 인사이트가 의견이 되고 의견이 사업의 시작이 되고 본격적인 서비스가 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저의 인사이트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지해 줄 수 있는 여론의 힘, 즉 팀원의 힘이 필요합니다. 혼자서 일한다면 이런 지지 기반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이미 각오하고 선택한 일이었지만, 아시다시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던 때가 아니었습니다(그걸 퇴사하고서 알았고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모두가 예민해져 있던 시기와 맞물려 저의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저의 팀원들은 팀원들대로, 타 부서 사람들은 그들대로 계속해서 의심을 팩트로 바꿔갔습니다. 결국 회색빛 안개가 회사 안을 가득 매웠고 이제는 제 모든 언행이 거짓으로 받아들여질 즈음, 대표가 작금의 상황을 놓칠 리 없었습니다. 




대표는 저를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저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저는 죄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저를 제외한 이해당사자들과 대표가 몰래 자리를 갖고 본인들끼리 상황을 정리하고 난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미 저는 대표를 포함한 그들이 짜놓은 그물 속에 있었고, 저도 모르게 서서히 그물이 저를 옥죄어 오는 것을 알아차린 때에는 이미 날카롭고 예리한 그물망에 살갗을 내어주고 있었습니다.

 억울함, 배신감, 당황스러움의 감정을 애써 감추느라 참았습니다. 정신을 단디 차리고 나름의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장의 떨림부터 시작된 진동은 입술의 떨림까지 이어졌고, 제 음성에는 두려움과 좌절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당하게 토해내야만 그나마 그들의 귀에 닿을 제 음성에는 두려움과 괴로움만이 딸려 나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대표의 퇴사 권유를 공허하게 받아들이고 회의실을 나와 그 즉시 제 자리를 정리하고, 5년 간 수없이 열고 닫았던 사무실 문을 마지막으로 열어젖히고 눈물을 광광 쏟아내며 터벅터벅 빠져나왔습니다.



 이상, 제가 권고사직을 당하던 그 당시의 상황과 그날의 제가 느꼈던 모든 감정을 정리해 봤습니다. 네, 이 당시 저는 회사에서 개처럼 일하고 정치질에 능한 이들에게 농락당해 처참히 버려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원망했습니다. 제가 잘못한걸 꾸역꾸역 억지로 생각해 낸다면 혼자서 일하겠다는 결정, 이 한 가지라 생각했습니다. 제 안의 연료가 이미 오래전에 고갈되었으며, 엔진은 마모되어 더 이상은 제 구실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그들을 원망하고, 대표를 증오하고, 배신감에 몸부림쳤습니다.




늦게나마 알게 된 사실,

원인은 있지만 악인은 없음을


지금 돌이켜보면, 참 오만하고 구차한 사고에 잠식되었던 것 같습니다. 뭐 그것도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이자 마주할 수밖에 없는 저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지금은 마음이 또 편하고요(저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감정에 동요당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 



대표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저와 보낸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대껴온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회사의 대표로서,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 장시간 고민하고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희뿌연 안개가 그득하고 무겁게 자리 잡아 서로를 갉아먹는 상황의 근원에는 저의 행동이 큰 요인이라고 판단했겠죠. 업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저에게 서운함 그 이상의 불신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거의 확신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대표의 판단이 회사를 위해서는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저에게 자문해 봐도 회사에서 잉여스럽게 존재한 시기였기 때문이죠.



저와 이해관계자로 있던 저의 팀원들과 다른 부서의 사람들,


그들 또한 저를 재판하던 그 자리가 탐탁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 저의 불통스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런 의견 조율 없이 밀어붙이던 (성과는 났지만) 제 업무 성향은 그들을 지치게 했을 거예요. 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상황이 전개되면서 그들도 상처를 받았을 일이 분명했습니다. 당연히 제가 제 고립을 자초하게 된 그 경위는 그들에게는 하등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고요. 



저는,


변명에 여지가 없습니다. 희뿌연 안개의 근원은 저에게 있음을 당당히 인정합니다. 고립을 선택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회사가 바라는 좋은 결괏값을 혼자서 도출해 내면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저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저의 부족함은 무시한 채 돌격 앞으로, 우격다짐에 해댔을 뿐이죠.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조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요.

 권고사직을 겪은 분들, 회사 또는 회사 안의 누군가와의 갈등으로 퇴사를 결심하시는 분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처음 이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주체하지 못할 분노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퇴사 후 잠시동안 숨을 고르고 과거를 회상하고 상황을 돌이켜보면 금세 느끼게 될 것입니다.


퇴사에 원인은 있지만 악인은 없다는 것을.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나 복잡하고 입체적이어서 특정한 누군가를 감히 악인으로 칭할 수 없습니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고, 그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승리를 쟁취하고 실패를 피하고자 하는 개개인만이 있을 뿐입니다. 어디까지나 조직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모습일 뿐입니다. 자신이 회사에서 불합리한 상황에 빠졌다고 해서 사건의 원인을 돌아보지 않고 타인을 악인으로 규정하는데 치우치다 보면 결국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는 자기 자신을 뒤늦게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 누군가에게 악인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겐 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상황이 갑작스럽게 바뀌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네, 이런 제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실 수 있을 만큼 깊은 상처를 입은 분들 또한 존중하고 이해합니다. 우선은 자신의 상처를 헤아리는 일조차도 쉽지 않을 테니까요.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터일 뿐입니다


딱 하나 여전히 제가 서운함을 가지고 있는 게 있다면, 저를 내쳤을 때, 제가 내보내졌을 때의 그 상황이 저와는 단 한 가지도 논의된 바는 전혀 없는, 오로지 저를 내보내기 위해 짜인 치밀한 각본에 근거한 재판 대였다는 것은 여전히 제 안에 서운함으로 남아있습니다. 5년이란 시간을 저는 누가 뭐래도 헌신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을 주홍글씨로 새겨두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마음이 아픈 일이에요. 아마 앞으로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흉터로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해 보이고요. 

 하지만 그뿐입니다. 그저 삶을 살아오며 생기는 하나의 평범한 흉터일 뿐이에요. 그 당시는 너무나 괴롭고 치유하는데 꽤나 긴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그저 하나의 흉터일 뿐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흉터를 시야에 담아두면서 묵묵히 성장을 조금씩 해나갈 것입니다. 가끔은 흉터가 아려와 잠 못 자기도 하고, 흉터 근처가 간질거려서 계속 긁어 댈 수 있겠지만 흉터가 저에게 해낼 수 있는 일은 그뿐입니다.



여러분은 깊게 파인 상처를 그대로 남겨두실 건가요?

상처가 나아지는 건 흉터가 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고통스럽더라도 흉터 지는 것을 망설이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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