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후 4년 동안 저는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어도 주저하지 않았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고통스러운 날들이 지속되었지만, 쓰라린 상처 위에는 어느새 '끈기'라는 연고가 발라져 딱지가 생기고,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죠. 저의 성장통에는 끈기가 항상 함께 했습니다. 그 덕분에 불모지 같은 척박함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마침내 4년 차에 저는 연봉 1억을 달성했습니다. 길다면 길었던, 짧다면 짧았던 4년. 성장과 성장통이 겹겹이 쌓여 응축된 시간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무언가가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연봉 1억은 제 경력의 정점이었지만, 동시에 내리막길의 시작점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4년 간 반복해 온 노력과 성장을 다짐했지만, 막상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호기롭게 전쟁터로 나가 얻어온 영광의 상처들은 이젠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은 고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내가 했던 모든 노력이 무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100을 노력하면 100 이상의 보상과 희열이 있었지만, 이제는 100만큼 노력하기보다는 노력의 양과 질을 낮추고 몸을 사리게 되었습니다.
연봉 1억이라는 큼지막한 보상을 받고 더욱 열심히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지는 못할 망정 자꾸만 뒤로 숨어버리는 저.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퇴사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더 이상의 무언가를 감당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연봉 1억이라는 돈을 받고도 행복보다는 그 숫자가 주는 쾌락에 자꾸만 절여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항상 쓰라린 상처에 발랐던 끈기 연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끈기가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상처는 딱지가 생기기도 전에 더 큰 생채기를 온몸에 내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던 새로운 경험은 이제 두려움 덩어리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순되게도 통장에 꽂히는 연봉 1억을 보고 나면 그 기분에 취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연봉 1억의 뒤편에 숨어서 자꾸만 제 업무를 회피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일을 하기 위한 엔진이 가슴속에 장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엔진의 성능에 맞게 적정 속도와 수명이 정해져 있습니다. 저에게도 저만의 엔진이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길을 달리면서 저만의 속도로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해처 나갔고 4년 간 단 한 번도 엔진 상태를 점검해보지 않고 계속 달려만 갔습니다. 이미 더 이상 달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찌꺼기가 쌓이고 무디게 마모된 저의 엔진이었기에, 속도를 더 내보려 해도 당연히 무리였던 것이죠. 그 와중에 연봉 1억으로 외관만 바꿀 뿐이었으니, 빚 좋은 개살구밖에 더 될 리가 없었습니다.
주체하지 못할 속도로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만큼 감사한 일은 없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엔진의 마력이 아직 그 속도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이기 때문이죠. 저는 아쉽게도 저의 엔진이 이제 더 이상은 힘을 내지 못할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퇴사를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의 속도 게이지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면서, 그때의 저에게 미처 해주지 못했던 말들을 곱씹어보려 합니다. '성장통'이라 여겼던 그 고통이 사실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만의 엔진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의 엔진은 지금 안녕하신가요?
혹시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심신이 보내는 이상신호를 무시하고 있진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