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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Sep 08. 2024

연봉 1억을 놓아주겠습니다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권고사직을 당하던 날, 회의실을 나오고 눈물샘에서 흘러넘치려는 눈물을 감히 주어 담을 수 없었습니다. 5년 간의 희로애락이 눈물에 머금어져 제 뺨을 타고 흘러내려갔습니다. 흘러내린 눈물은 자유롭게 공기 중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다시 뺨 속으로 스며들어 갔습니다. 회의실로부터 제 자리까지는 불과 스무 걸음이 안 되는 거리였지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머릿속에 뿜어져 나오는 회사 안에서의 순간들이 너무도 느릿느릿 제 앞을 스쳐가느라, 제 자리에 당도하기까지의 시간이 영겁 같았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내일부터는 저의 자리는 회사에 존재할 수 없었기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이더라도 감당해내야만 했습니다. 자리에 널브러져 있던 잡동사니들을 정리할 박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챙길 것들보다 버려야 하거나 그대로 놔두고 가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챙겨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그리고 그대로 놔두어야 할 파일과 각종 프로그램을 살폈습니다. 다행히도 챙겨야 할 것들은 그리 많지, 아니 거의 없었습니다. '다행'이라는 표현은 지금 시제에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그 당시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죠. 5년 간 애정하던 곳에서 무수한 날 동안 땀과 눈물, 노력과 열정, 헌신과 성장, 시행착오와 성과, 그리고 사랑까지도 쏟아부었기에 떠나갈 때도 분명 내가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을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떠나야 할 때 제가 챙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다행이라 여기지만 그때 당시 저에게는 너무도 공허한 현실이었습니다.

 이미 저녁 7시경을 향해가는 시간이어서 그럴까요, 회사 사람들은 대부분 퇴근하고 없었습니다. 회의실에서 저를 압도하던 대표와 다른 인원들은 이미 출구를 통해 빠져나간 듯 보였습니다. 사무실 안에는 온전히 저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더 이상 눈물이 삐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얼굴과 눈이 부어있을 즈음, 컴퓨터 전원을 끄고 그렇게 저의 업무 전원도 꺼짐 버튼을 눌렀습니다. 다시는 열어볼 일이 없을 회사의 현관문을 열고, 어두컴컴해진 복도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사무실 전경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게 뒤를 돌아보면, 참고 있던 눈물이 퉁퉁 부은 눈을 기어이 뚫을 기세로 터져 나올 것 같아서 계속 땅만 보고 걸어갔습니다.



 이 일이 21년 12월 어느 날 밤의 일입니다. 참, 오래도 걸렸습니다. 드디어 저는 2년 하고도 약 9개월이 지난 지금 저의 과거를 놓아주려 합니다. 퇴사 직후부터 약 3개월은 그동안 바삐 달려오며 채우지 못했던 제 마음속 연료를 채우고, 마모된 엔진을 수리하는데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돈 생각 없이 저를 보살피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3개월은 갑작스러운 작금의 상황에 좌절하고 남을 원망하며 증오하는데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을 통해 5년 간의 모든 것들을 정리했다 굳게 믿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나아갔습니다. 

 과거보다 훨씬 낮고 안정적이지 못한 수입은 심적 조급함을 불러일으키고 모든 것을 미련 없이 정리한 줄로만 알았던 과거의 것들을 다시 상기시켰습니다. 1억이라는 연봉이 나에게 선사하는 행복감과 감사함보다 과거의 영광에만 젖어 들어 현재의 상황을 비관하는 상황이 빈번해졌습니다. 

 겨우겨우 제 과거의 저를 인지하고 사실과 잘못 그리고 현실을 인정하며 하루하루 조금씩 삶의 방향을 탐색하게 된 것이 퇴사 후 1년 반 만의 일입니다. 그 여정의 마지막으로 제 과거의 일거수일투족과 주요 사건들을 돌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전히 놓아주지 못했던 지난 과거의 제 연봉 1억을, 이제야 정말 제대로 놓아줄 수 있게 되었네요.



다행입니다. 과거의 인연들이 우연이 아니라 기적적인 필연의 시작점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저에게 '노력'이라는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태어나 경험해 보지 못할 값진 경험들을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감정을 다스리는 법이 미숙했던 저를 알고, 성숙해질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다시 활력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회사는 성과만큼이나 감정과 애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나와 타인의 편견 없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얻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돈이 아닌 제 삶 본연의 의지에 답이 있음을 알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저는 성공보다 성장하는 삶에 더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어서.


이제 연봉 1억을 놓아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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