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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도달지'가 아니라, 돌아다니는 '과정'이었다

by Life teller Andy

어느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프로레슬링을 흠모했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프로레슬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미친듯한 투지로 면접에 합격했지만 촌에서 올라온 그에게 도시 속 막내 프로레슬러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버텼다. 아니 벼텨졌다. 그를 가슴 뛰게 한 단 하나, 프로레슬링을 위해서. 몇 년 후, 그는 꿈에 그리던 프로레슬링의 무대에 선다. 하지만 그가 무대에 올라있는 동안 그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는 결코 켜질 일이 없다. 그는 경기가 다 끝난 링을 치우는 링 아저씨일 뿐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그는 삶을 살아간다. 아니 여전히 버텨내고 있다. 비록 그가 꿈꾸던 프로레슬러가 되진 못했더라도 그의 꿈은 그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프로레슬러가 꿈이었던 어떤 남자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꿈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닌, 꿈을 꾸기 위한 과정을 더욱 선명하게 비춰주었던 것 같다. 현실에 살아 숨 쉬는 누군가의 얘기는 아니다. 그저 허구 속 한 인물의 얘기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현실에 와닿는 기분은 왜일까. 아마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그러하기 때문이리라.

누군가의 시선에서 우리는 그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반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평범한 껍데기를 쪼개보면 다들 비범한 무언가가 속알맹이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꿈이라던 어떤 이는 공장에 취직해 부품을 만들고 있다. 우주를 탐구하는 우주비행사가 되길 바라던 누군가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다. 대통령이 꿈이라며 부모님의 가게 앞에서 웅변을 해대던 꼬맹이는 야근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러하고 삶이 그러하다. 각자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그 무언가와 지금 내가 마주하는 현실의 괴리를 좁히고 싶어서 열심히 꿈에 도달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타협에 이르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삶을 사는 것이라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꿈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단 한 번이라도 시도해 봤다면, 그리고 그 시도가 누군가가 보기엔 너무나 시시하고 미미해 보일지라도, 그 과정을 돌아다니는 뭉툭한 방랑은 반드시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그것이 결국 꿈을 꾸는 우리의 모습이다. 꼭 어딘가에 도달해야먄 그 꿈을 이룬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결과지상주의자가 있다면 그 말을 반박하기보다 그를 연민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나는 그런 모든 이들에게 소설『소년과 링아저씨 』적극 추천한다.




『소년과 링 아저씨』를 읽는 일은, 마치 오래된 일본 단편 영화를 한 편 보는 일과 비슷했다. 전혀 영웅적이지 않은 사람들, 조금은 어수룩하고, 자기 삶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인물들이 나와서 저마다 진지하게, 그러나 어쩐지 웃기게도 살아간다.

이 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뭔가 조금씩 결핍되어 있다. 프로레슬러가 꿈이던 링아저씨(링을 세팅하고 정리하는 사람), 프로레슬러를 동경하지만 주변 반대에 부딪히기만 하는 소년, 정체성을 잃고 무미건조한 가족의 어머니로서 삶을 살다가 우연찮은 계기로 레슬링을 배우며 쾌감을 느끼는 알파녀, 직장에 절어 살며 가족에게는 권위랄 것도 없고 오덕스러운 집착만 그득한 남자. 각자의 결핍은 레슬링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로 결속되어 그 갈래를 엮어간다.

그들 중 누군가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고 살다가 우연한 계기로 가슴 떨려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래도록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왔지만 정작 그 끝에서 멈춰 서게 되는 시련을 겪는다. 어떤 관계는 가까워졌다가 어정쩡하게 멀어진다.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이 한참 뒤에서야 자신의 집착이었음을 알게 되어 자신의 처지를 연민하는 인물도 있다. 정신없고 어수선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들만의 이야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어수선한 흐름이 싫지 않다. 오히려 그게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다. 그래서 그들 모두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소설의 작가이자 실제 프로레슬러인 타지리는 꿈을 하나의 ‘결과’로 그리지 않는다. 꿈은 그저 사람들이 계속해서 끌려가고, 때로는 버티고, 때로는 외면하려 하는 ‘방향’ 같은 것이라 보는 듯하다. 중요한 건 어디에 도착했느냐가 아니라, 그걸 따라가는 동안 진심이었냐는 점.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자기 꿈을 이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진지했고, 진실했고, 그래서 다 웃기고, 그래서 또 이상하게 찡하기도 하다. 아마도 작가 본인이 프로레슬러였기에, 프로레슬링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 속에서 자신이 쏟아냈던 땀과 노력이 삶으로 치환되는 순간순간들이 소중했기에, 그럼에도 자신이 꿈꾸던 최정상 프로레슬러라는 자리에는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에, 소위 웃픈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독자인 우리도 작가인 '타지리'의 서사를 어느 정도 알고 책을 읽게 된다면 더욱더 책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당신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이 되었을 때,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뭉글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뭉글함에서 “나는 지금 어떤 과정을 살아내고 있지?”라는 질문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길 바란다. 그리하여 결국, 아무것도 대단하지 않은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현실에 묵혀둔 감정을 꺼내게 되길 바란다. 슬그머니, 그러나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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