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우연을 믿으시나요?
각자 생각이 다르시겠지만, 저는 믿지 않습니다. 우연의 사전적 정의는,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입니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아직까지 저는 우연을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우연이라고 생각한 일들을 곱씹어보니 모두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 중 하나가 바로 제가 초기 스타트업을 들어가게 된 일이에요.
저는 수학강사였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병행한 수학학원 알바일이 제 생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제가 수학강사를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죠. 건축공학과를 나와서 고만고만한 기업에 들어가 직장을 다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학원은 그저 생활비를 벌기 위한 생계의 수단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이론을 알려주고 모르는 문제를 풀어주며 학급을 관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꼼꼼함을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수학적인 두뇌 회전은 강사의 우선순위 역량이 아니었습니다.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이과적 성향보단 문과적 성향이 더 중요했습니다. 모든 일이 서툴렀던 저는 한 달간 꽤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두 어달이 지나고 나서 원장님이 저에게 '진국'이란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 시간이 꽤 들더라도 충분히 본인 몫을 잘 해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붙여주신 거죠. 비록 정규직은 아니었지만, 뭔가 직장 상사에게 인정받은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저는 정식 강사를 전제로 학원에서 졸업때까지 계속 알바를 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제 삶의 옵션에 수학 강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결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원장님이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냥 조그만 수학학원 강사일이 뭐가 대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 삶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도 있던 그 당시 나이에서는 충분히 진중한 결정이 필요한 선택지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였죠.
물론 졸업하고 1년이 채 안 돼서 강사일을 그만두었지만, 그 당시 저에게 수학강사라는 선택지는 정말 우연히 다가온 선택지라고 생각했어요. 할 생각도 없었고, 원장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경험하지도 않았을 일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수학학원에서 한 사람을 만납니다. 네, 저를 스타트업의 세계로 인도하신 분이죠. 30대 중반에 통통한 몸, 촌스런 안경을 쓴 그는 고등부 경력직 강사였습니다. 붙임성이 좋은 분이라 저도 금방 친해질 수 있었죠. 야구, 술, 개그 코드 등, 여러모로 교집합이 많았는데 그 당시 거의 일주일 중 5일은 그 분과 술을 마셨어요. 그렇게 저는 그 형과 굉장히 농도 짙은 시간을 보내며 동고동락 했어요.
그러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그 형이 사실 친구와 함께 사업을 하고 있고, 사업이 꽤 잘 되고 있단 것이었습니다. '스타트업을 한다고요? 스타트업이 뭐예요?' 알만한 사람들은 알던 용어였지만, 집과 알바 그리고 학교 수업만 배회하던 저에게는 굉장히 생소했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 형은 강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사업에 몰입하게 됩니다. 의지하던 이의 갑작스런 부재로 저는 상실감이 꽤나 컸습니다. 너무나도 머나먼 타지였던 서울은 20대 중반의 저에게 외로움과 부적응의 집합체였습니다. 삭막함에 젖어있는 와중에도 돈은 벌어야 했죠. 이런 착잡한 상황에서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실로 '우연'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저에게는 그 형이 그러했어요.
그러다 한 달 즈음 지났으려나요, 여전히 서울의 삭막함과 우연적 만남을 떠나보내게 된 상실감에 절어있던 저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어요. 그 형이었죠. 그렇게 만난 술자리에서 형은 여느 때의 가벼운 모습과는 다르게 진지한 톤으로 저에게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그동안 봐온 저의 책임감과 성실함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멍했습니다. 어떤 사업인지는 과거 술자리에서 종종 듣곤 했지만, 제가 감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해오던 일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이었어요. 그런 저에게 그 형의 제안은 정말 '우연히 다가온 일'이었습니다.
갓 정식 강사가 되기도 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는 것이 너무나 생경하기도 했던 저는, 며칠간의 고민 후 형의 제안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아찔하고 무모한 선택이었는데요, 그 이유인 즉, '그 형과 일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서' 단 이 한 가지 이유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나름 명쾌한 해답이었습니다. 제가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 일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동력이었고 활력이었으니까요. 그것만이 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법이었을 겁니다 그때는! 그렇게 아무 연고 없는 땅에서 우연히 일하게 된 학원에서 우연히 마음을 의지할 사람을 만나 우연히 초기 스타트업의 문을 열게 된 저는, 4년 후 연봉 1억을 받고 나름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제 얘기를 읽고 '정말 이런 우연이 다 있다니!'라고 하시는 분들 있으신가요?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제 선택에 기원한 일들이라고 확언합니다. 저는 서울에 올라오기 위해서 삼수를 '선택'했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학원 알바를 '선택' 했고요. 정식 강사로서의 길도 (원장님의 제안이었지만) 제가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서 마음을 의자 할 그 형을 만나게 되었어요. 형과 술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겹겹이 쌓아가는 것 또한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끝으로, 초기 스타트업이라는 제안을 수락한 것 또한 (물론 제가 먼저 똑똑 두드린 것은 아니지만)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원장님과 그 형이 저에게서 '진국 같은 사람', '성실함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과연 제 앞에 그들이 제안한 길이 놓여 있었을까요?
네, 아마도 그럴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서의 모든 일들은 저에게 무수한 선택지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먼저이건, 누군가가 저에게 선택지를 제안했건 간에 이 모든 일들은 저의 결정 하나하나로 귀결되는 순간들이 쌓인 거대한 세계관이었습니다.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 또한 그렇습니다. 태어나 처음 놓인 길을 걷다 보면 발바닥에 굳은 살이 생기고 걸음걸이가 바뀝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앞에는 양갈래 길이 놓여있죠.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는 오로지 자신의 몫입니다. 그렇게 택한 길을 걷다 보면 또 그 길에 맞게 걸음걸이와 보폭이 달라지고, 장만해야 할 장비들이 필요합니다. 그러기를 여러 해 반복하다 보면 가는 길마다 마주치며 선택해야 할 길의 갈래가 매우 다양해집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선택할 길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분이 여태까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는 더욱 다양해질 인생의 난제들을 길들일 수 있는 역량을 쌓아 왔다는 뜻이니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하며 인생을 마냥 우연의 집합물이라 생각하는 사람 앞에는, 길이 펼쳐져 있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앞에 우연처럼 보이는 순간이 펼쳐지셨나요?
왜 우연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그 우연이라 생각하는 순간이, 여러분의 '선택'에 기원한 기적적인 '운명'같은 순간은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