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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un 27. 2024

아직까지도 술을 못 끊고 있다.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술을 못 끊고 있다. 사실 술을 끊어야 되는 이유보다 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더 크긴 하다. 건강을 버려서라도 난 나만의 해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술을 매일 끊임없이 마시는 것이 건강에 아주 좋지 않겠지만 나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에게 있어 술을 마신다는 행위는 분위기를 읽고 음악을 듣고 그러면서 난 나만의 해방감을 느끼는 거구나라고.


술을 마시는데 뭐 그렇게 거창하게 표현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술을 마신다는 행위가 단지 정말 술을 마시기만 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혼자 술을 마셔서 그런지 술을 마시는 그 분위기와 흘러나오는 음악과 온도, 내 눈으로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가득하고도 분명하게 남기 때문이다. 예전 큰 집에 살 때만 하더라도 각자의 방이란 것이 있었고 그 방에서는 문을 닫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니코틴이 없는 전자담배를 마음껏 피울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내 방안 연기로 가득 찬 그 모습도 너무 좋았고 그 연기 속에서 은은하게 비치고 있는 캔들도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렇게 전용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차분한 음악들은 또 그 분위기와 얼마나 어울렸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멋진 모습들의 향연이었다.


사진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너무 옛날 사진이라 그런지 예전 핸드폰에 사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없다. 그때 아마 캔들을 선물 받고 너무 고마운 마음에 정말 공들여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게 꽤나 오래전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을 보니 2021년까지 넘어가는 사진들을 보면서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구나 라는 생각마저도 하게 했다.


옛날 사진첩에는 옛날 집에서 무수히 마셔대던 소주병들의 사진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술을 본격적으로 혼자 낮밤 가리지 않고 마셨을 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편의점에서 병으로 된 소주병을 몇 개씩 사 와서 먹다 보니 병을 처리하는 게 너무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방 한편에 줄을 세워서 소주병을 나열해두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병 처리가 귀찮아서 페트병으로 사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1L짜리 페트병 소주가 나와서 그걸 하루에 한 두 개씩은 먹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자비했다 싶다.


물론 지금도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어려서 간이라도 쌩쌩했을 것이고 체력적이나 몸에 이상 같은 건 하나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고 끊지 못하게 된 이유는 아르바이트나 취업이 되지 못하는 상황과 취업이 되더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평생 명령 아래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크나큰 자괴감이 생겨서 일을 찾지도 않고 아침저녁으로 계속해서 술만 마셔댔다. 그때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방문이 굳게 닫혀있는 걸 보고도 모른 척했던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은 나이도 들었고 그때보다는 인생의 노하우를 조금이나마 터득한 것들이 있어서 감정적으로 일희일비하지는 않게 됐다. 하지만 이제는 몸에 이상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몸 내부가 아닌 외부에도 하나 둘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평생을 햇빛 알레르기라고 알고 있었지만 햇빛 알레르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도 너무 충격적이었고 3-4kg 감량을 하고 피검사를 했을 때 간 수치가 정상이라고 한 것도 사실은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의심에 의심을 하고 있다.


즐겁지가 않다. 행복하지가 않다. 물론 어떤 즐거운 일이 있었을 때는 즐겁고 행복한 일이 있으면 행복하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행복과 즐거움이 오래가질 않는다. 물론 그때그때마다 행복하고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 일상에서의 큰 문제들이 없고 물 흐르듯 지나갈 수 있는 사람과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루하루가 큰 일 없이 흘러 보낼 수는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이라 아주 작은 자극이나 단어, 말투, 행동들에 굉장히 민감하고 예민해서 상대방들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다 떠나버리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보통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게 옳을 때가 더 많다. 그러니까, 나를 자극시키지 않으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인데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착각을 하고 오해를 한다. 내가 뭘 했다고 그래?라고 하면서 나에게 오히려 예민하다는 프레임을 씌워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민감하고 예민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건 항상 나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술이라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그 행위를 빼고 설명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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