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로 보이는 함 여사가 드라이버를 들고 화이트 티 박스로 올라간다. 당연히 거리가 얼마 안 나갈 것이라 생각하고 먼저 치라고 말했는데 폼이 예사롭지 않다.
“굿 샷!”
조인 플레이의 남성 세명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넘친다.
약 190미터 가까이 나간 것 같다.
기가 죽었는지, 두 번째로 티 박스에 올라간 정 사장의 공이 오른쪽 산으로 올라간다. 세 번째의 김 이사는 왼쪽으로 내 보내며 무척 쑥스러워한다.
내 샷도 공이 위로 높이 뜨기만 하고 함 여사보다 30 미터는 뒤에 있는 내 공을 보면서 할 말을 잊어버렸다.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300미터 넘게 남았어요.”
“캐디 언니, 3번 하이브리드 주세요.”
‘자, 티 샷의 실수를 만회해 보자.’
해저드를 건너며 왼쪽 페어웨이에 잘 떨어졌다. 거리도 190미터 정도는 충분히 보낸 것 같다.
함여사는 풀 스윙을 하는 루틴에 일정한 리듬을 보여준다. 하체가 견고하게 지탱해 주고 스윙에 무리가 없다. 세컨드 샷을 치고 나니 130 미터 정도 남긴다.
다른 두 남성은 다시 해저드에 공을 빠뜨리고 해저드 샷을 한다.
130미터의 거리를 남기고 아이언을 잡은 함 여사는 아이언 샷의 루틴도 똑같다. 단지 아이언 헤드의 무게를 충분히 이용한다. 가볍게 치는 것 같지만 채가 툭 떨어지며 공은 잘 찍혀서 그린에 안착한다.
나도 아인언 샷을 그린에 안착시켰다.
“나이스 온입니다.”
캐디의 말 대로 나이스 온이다. 멀리에서 보니 거의 붙어 있는 것 같다. 그린에 올라가서 보니 2미터 정도의 오르막 퍼팅을 남겨 둔 상태이다.
함 여사는 역시 퍼팅도 잘한다. 두 발을 모으고 정확하게 방향을 잡고서 연습 스트로크를 하고 퍼팅 스트로크를 하는데 홀 컵을 스치고 지나간다. 퍼팅 루틴도 일정하다.
“그린이 너무 느려요.”
잘 안 구르는 그린이다 보니 원하는 대로 공이 구르지 않는다. 그래도 함 여사의 공은 거의 홀 컵을 스치며 지나간다. 홀 컵 주변을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내 차례다. 조금 짧다.
“나이스 파~!”
함 여사는 다른 사람의 타 수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9홀을 마칠 때까지 버디 하나에 보기 4개로 3 오버를 기록한다. 그럼에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린 빠르기만 적당했다면 두, 세 타는 더 줄였을 퍼팅이 두세 번 있었다. 나도 39타로 동 타를 기록했지만 샷의 정확도나 숏 게임은 나보다 훨씬 낫다는 점을 인정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함께 조인한 두 분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샷을 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고 극찬한다.
“혹시 프로 출신이신가요? 무섭게 치시네요.”
함 여사는 조금 민망한지 고개를 저으며 웃어넘긴다.
“대회에 나가도 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는 김 이사의 말에 함 여사가 웃으며 말한다.
“지난달에 서원 힐스에서 열린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 보았는데요, 저보다 잘 치는 사람이 참 많더라고요. 그날 1언더파가 우승했는데 저는 3 오버파 쳤습니다. 제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게임이었습니다.”
전반의 흐름은 그대로 이어진다. 전반과 똑 같이 첫 파 5홀에서는 화이트 티에서 티 샷 하고 우드와 롱 아이언으로 3 온 해서 파를 기록한다.
갈수록 기록이 좋아진다. 9홀 두 바퀴째를 치면서 똑같은 루틴으로 똑같은 샷을 하면서 더 나은 스코어를 기록한다. 칩 샷으로 버디를 기록하며 1 오버를 친다. 마지막 8번과 9번 홀의 보기가 아쉬웠지만 후반 9홀 가운데 5홀은 나이트 경기를 했으니 약간의 불리함을 감안하면 후반에는 이븐 파를 칠 실력이었다.
동반자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대단하다.’
‘무서운 여자다.’
‘정말 골프 잘 친다.’
캐디가 정리해 준다.
“제가 지금까지 베스트 밸리에서 지켜본 여성 골퍼 가운데 가장 잘 치는 분인 것 같네요.”
잘 친다는 것이 타수가 좋다는 것도 있지만 일관성과 본인이 샷을 하고 나서의 만족도, 리커버리 샷의 정확성 그리고 그 사람의 매너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나온 말이라 본다.
공을 잘 치는 사람을 보면 나도 저렇게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을 잘 치는 사람의 샷을 보면서 그 루틴을 다시 생각하고 나도 저런 루틴을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프로치 하는 것을 보면서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생각하며 짧은 어프로치 샷 하는 것도 배운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하나라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골프 잘 치는 사람과 라운딩을 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일 잘하는 사람’은 공을 잘 치는 사람처럼 좋은 성과를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성과만 좋다고 꼭 일을 잘한다고 할 수는 없다. 성과를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도 좋아야 한다. 그래야 어떤 환경에서도 일관성 있게 일을 추진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노력에 상관없이 비즈니스 환경 때문에 좋은 성과를 올린다면 비즈니스 환경이 바뀌면 똑같은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일관성은 내 몸에 체득되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온다.
‘무서운 여자’는 샷이 미스가 나면 다시 그 샷을 돌아본다.
전 홀에서 오랜만에 쓰리 퍼팅을 해서 보기를 한 함 여사는 퍼팅을 마친 뒤 다시 한번 퍼팅을 해 본다.
그다음 홀에서는 퍼팅에 더 시간을 보낸다. 라이를 일일이 확인하고 그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중간에서 꺾이는 부분까지 다시 살펴본다. 퍼팅의 프리 샷 루틴도 다시 해 보고 더 이상 쓰리 퍼팅을 만들지 않는다.
‘일 잘하는 사람’은 실수에서 배운다.
사람과의 관계를 잘 못 가져갔든지, 제품의 품질 불량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못했든지, 아니면 부하직원의 관리나 피드백 제공을 제대로 못했든지 잘 못한 점을 인식하는 순간 이를 발전의 기회로 삼는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결점 없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
‘무서운 여자’는 자기 자신을 통제할 줄 안다.
‘무서운 여자’는 버디를 만들어 내면서도 흥분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버디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음 샷을 준비한다. 냉정함으로 다음에 일어날 수 있는 실수를 예방한다.
‘일 잘하는 사람’은 자기 통제를 잘한다.
고객 앞에서는 아무리 열이 받아도 내색하지 않는다. 속은 썩을지라도 얼굴색을 바꾸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쌓일 것이지만 나름대로 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을 통제한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 것은 선수의 기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고 한 템포 쉬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서운 여자’는 아무리 어려운 샷을 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파 4 홀에서 티 샷이 벙커에 빠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어려운 샷을 온 그린 시키며 차라리 성취감을 느낀다.
‘일 잘하는 사람’은 도전한다.
어렵다고 포기하기보다는 어려운 곳에 기회가 있음을 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어려운 상황을 기회로 본다. 어려운 상황에 빠지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누구는 벙커 탈출이 목표이겠지만 함여사는 붙여서 버디를 노린다. 경험이 있고 실력이 있는 ‘일 잘하는 사람’은 도전한다. 거기서 성과를 올린다.
‘무서운 여자’는 당당하다.
다른 사람의 칭찬에 어색해하지 않는다. 자신의 샷을 믿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성과를 믿기 때문에 당당하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행동한다. 결국 성과를 만들어 낸다.
‘일 잘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있다.
누구를 만나든지 설득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하고 있다면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좋은 롤 모델이 되려고 애쓰고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하는 ‘무서운 여자’ 함 여사 같은 사람이 되어 있게 된다.
타수는 좋은데 매너가 없는 사람하고는 다시 치고 싶지 않다.
골프를 매너 게임이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공을 잘 치며 좋은 매너를 보여 주는 사람은 여러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따라 하고 싶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