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토록 기다리던 초등학교 예비소집일. 딸 앵두는 머리띠를 머리에 얹은 뒤 자신이 예쁘냐고 수도 없이 확인한다. 옷도 평소 가장 좋아하던 분홍색 원피스를 입었다. 초등학교는 걸어서 10분 거리.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고 육교를 한 번 건너면 초등학교 정문이 보인다. 정문 앞에는 태권도장, 학습지, 공부방 광고 전단지를 나눠 주기 위해 줄지어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운동장을 지나 본관 건물에 들어서니 면담 장소가 적힌 종이가 빨간 벽돌에 나란히 붙어있다. 앵두의 이름을 확인한 뒤 해당 교실로 이동한다. 신발장, 식당, 휴게실(아이들이 적어서인지 이런 공간도 생겼다) 등등 모든 것이 앵두에겐 신기하다.
선생님과의 짧은 면담을 마치고 학교를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본격적인 고민의 시간. 앵두의 등하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30년 전에는 자동차가 얼마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끼리만 다녀도 위험하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더구나 우리는 맞벌이 부부. 하원 후에 앵두를 혼자 집에 둘 순 없기에 학원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한국 대다수의 학부모들에게 공통 사항이기에 해답은 몇 개의 선택지로 정형화되어 있었다.
1. 돌봄 교실 이용
방과 후부터 5시 30분까지 아이를 돌봐준다. 다만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우선권이 주어진다.
2. 방과 후 교실 이용
영어, 수학, 컴퓨터, 배드민턴 등 자신의 기호와 필요에 맞게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유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학부모들은 육아를 해결할 수 있다.
3. 다양한 학원들
공부방도 있고 태권도장도 있고 개별 과목을 가르쳐주는 학원도 있다. 좋은 점은 학원에서 하교는 물론 학원에서 학원까지 이동시켜 주며 퇴근 때까지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봐준다는 것.
학교 정문에서 받아온 전단지를 하나하나 보던 중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태권도장에서 태권도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초등학교 신입생들을 위해서는 학교 생활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변기 이용하는 법도 알려준다) 심지어 바로 옆에 공간을 마련해 두고 공부방을 운영하는 태권도장도 있다. 줄넘기 프로그램은 덤이다. 태권도장이 아니라 종합육아지원센터인 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50미터 반경 이내에 태권도장이 3개나 있는 것을 보면 태권도장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 3개 중에 하나를 정해야 하니 앵두 손을 꼭 잡고 집에서 먼 순서대로 태권도장을 방문했다. 첫 번째 태권도장은 공부방과 같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방학이란다.
두 번째 태권도장에는 아이들 20명 정도가 줄넘기를 손에 쥐고 열심히 뛰고 있었다. 도장이 꽤 넓었는데 아이들로 꽉꽉 채워져 공간이 부족해 보인다. 사범도 2명이나 배치되어 있다. 신발을 갈아 신고 목을 빼꼼 내미니 나이 있어 보이는 여성 분께서 상담 온 거냐 묻는다.
등하원은 언제 어떻게 시켜주는지,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비용은 얼마인지 이것저것 묻는 와중에 꽤 유용한 정보도 많이 알려주신다. 그리고 원하면 아이들을 계속 태권도장에서 놀게 할 수도 있단다. 바쁜 부모들을 위해 놀이기구로 이뤄진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사범님들의 보호하에 아이들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남은 하나의 도장을 가봤더니 그곳도 문을 닫았다. 방학이란다. 앵두 친구 엄마와 친척을 통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집에서 좀 먼 곳에 있는 태권도장이 가장 괜찮다고 한다. 전단지를 봤을 때도 그곳이 제일 맘에 들기는 했다. 태권도 수업은 2시 부터지만 그 이전부터 아이들을 케어해 주니까. 태권도가 끝나고 3시가 되면 장모님께서 데려와 본인이 원하는 학원(앵두는 우선 영어는 강하게 거부했다. 피아노도 이미 때려치운 지 오래이다. 남은 선택지는 몇 개 되지 않는데 그나마 공부방과 미술은 좋아한다)에 보내거나 집에서 쉬면 된다.
오늘의 결론 : 초등학생 학부모로서 태권도장에 안 보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