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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다섯 번 같은 질문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시작이었다는 걸

by 공감수집가

소박한 돌잔치를 치렀다.

첫 손주인만큼 양가 모두 성대한 파티를 기대하셨다. 그러나 평소 아내와 얘기해 왔던 대로 가족, 친척만 모셨다.

사회자도, 뻔한 이벤트도 없이 조용히 진행했다.

감사하게도 낯을 안 가리는 녀석이라 모든 테이블을 돌며 인사하고 품에 안겼다.

보통 돌잔치에 가면 아기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 긴장한 탓에 우는 아기를 여럿 봤다. 아이의 성격 탓인지 우리의 의도가 적중한 것인지 기대 이상으로 컨디션이 좋았다. 생글생글 웃음과 애교 발사에, 걸음마 신공까지. 양가 어르신들의 맘을 들었다 놨다 하기에 충분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탓일까.

다음 날, 아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병원을 데려갈까 고민했지만 아내는 만류했다.

"아기 열 오르는 건 병원 가도 별다른 처방이 없어."


이때 울리는 전화.

"우리 왕자님은 뭐 하니? 왜 이렇게 조용할까?"

어머니의 전화에 아내가 답했다.

"어제 좀 고단했나 봐요. 힘이 없는지 누워 있네요."

"아가가?? 혹시 열도 있니? 에구. 어제 큰일 치르느라 힘들었나 보다."

"미열 정도 있는데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병원은 안 가봐도 되겠니? 내가 같이 가줄까?"

"아니에요. 병원 가도 해열제 말고는 딱히 해줄 게 없어요. 이미 해열제 먹였어요. 좋아질 거예요."

엄마의 성격을 아는 아내는 아차 싶었다. 아기 아프다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는 걸.


30여 분 뒤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아기 좀 어떠니? 병원 안 가봐도 되니?" 같은 말씀을 드렸다.


1시간 뒤 또 전화가 온다.

"열은 좀 내렸니? 내가 병원 데려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병원 가봐야 별 거 없어요. 집에서 지켜볼게요." 내가 말했다.

"그래? 아유 안쓰러워라."


30분 뒤 또.

"병원 안 가봐도 될까?"

"…네. 안 가요."


1시간 뒤.

"병원 다녀왔니?"

"엄마, 병원 안 간다고요. 이제 문 닫아서 가고 싶어도 못 가요. 그만 물어보세요. 알아서 할게요."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듣고 있던 아내가 나를 쳐다봤다.

"뭘 그렇게까지 말해?"


두어 시간 뒤.

"끝내 병원 안 갔어? 아가는 어쩌려고. 아유 내가 다녀올 걸 그랬다."

"… 걱정하시는 건 알겠는데요. 이제 그만하세요. 병원 얘기. 지겨워요. 안 간다고 몇 번 말했잖아요."

"걱정되니까 그렇지. 그러게. 밝을 때 다녀왔으면 좀 좋아."

이제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kelly-sikkema-HTF3_X-uasY-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Kelly Sikkema




엄마의 걱정 덕분일까. 다음 날 아이는 열이 떨어졌다.

나는 엄마에게 짜증 낸 것을 후회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끔찍하리 만큼 사랑하는 손주 걱정에서 시작된 거라 여겼다.

내가 아기였을 때 엄마는 수 백, 수 천 번 같은 말을 하셨을 거다 생각하며 넘겼다.

딱 세 번까지는 차분하게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나치다 싶으면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거나 다른 주제로 바꾸곤 했다. 나름의 대처법이었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이 몹쓸 병은 이렇게 천천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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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