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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May 14. 2022

가난은 불편한가 부끄러운가?

가난이 힘든 것은 불편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더 그렇다.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나온 한 장면에 이런 대사가 있다.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

 솔직히 어떤 면에서는 그게 맞다.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와 그에 걸맞은 권한이 있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셈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불편한 것

 난 이 말이 반쪽짜리라고 생각한다. 가난은 부끄럽고 또한 불편하다. 그 둘 중에서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개인적으로 부끄러움이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에게 가난을 생각하면 불편함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정상이다. 하루에 1,000만 원을 쓰는 사람이 하루에 500만 원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오면 불편한 게 맞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이 힘든 건 배고픔이 아니라 쪽팔림이 더 아프기 때문이다. 둘 다 모두 힘겹지만 고통의 크기는 쪽팔림에서 더 크게 다가온다. 난 이 말이 제법 편견스럽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또한 어느 쪽의 무게가 훨씬 더 치우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 부끄러움의 고통이 너무 커서 자살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크게 덮치는 것이다. 가난이라는 실체적 상황도 힘들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 상태가 더 힘든 거다. 요즘 말로 '현타'가 오는 셈이다.

 '내가 고작 공과금 몇만 원도 낼 수 없는 그 정도 수준의 인간이고, 삶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다. 그 생각의 핵심이 뭘까? 몇만 원이 없어서 낼 수 없다는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을 겪고 있는 자신의 삶의 가치가 그 자체로 부끄럽고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이가 둘이 되었을 때, 난 변변한 직장도 없이 불규칙한 수입이 생기는 프리랜서였다. 정말 프리랜서라는 단어는 그럴듯해 보여도 그냥 일용직 수준의 일을 하는 상태였다. 두 자녀에게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것도 버거웠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가족을 굶지 않고 잘 살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어느 날 밤에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난 그 후 공황장애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치료를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돈을 잘 벌지 못하는 것, 그 자체보다는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는 상황이 부끄럽고 또한 무서웠다.  


 한 번은 하던 일의 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되고 추심 집행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초인종 소리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난 가족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밖에서 두드리다가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자 문 뜯으세요." 뒤쪽에 있던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빠루를 들고 있던 남자가 앞쪽으로 다가선다. 틈을 벌리고 집게발 같은 것을 집어넣어서 자동 잠금장치의 버튼을 누르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다. 난 두 가지가 두려웠다. 그들이 들어와서 뭔가 하는 것이 힘든 게 아니라, 안에 사람이 없는 척했다는 자체가 쪽팔렸다. 그리고 가족들 얼굴을 보는 것이 쪽팔렸다. 그래서 문을 열었다. 일명 '빨간딱지'가 여기저기 붙기 시작했다. 난 집에 있는 물건에 압류딱지가 붙는 것보다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자체가 수치스러웠다. 또한 어린 자식들에게 제일 부끄러웠다.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아마도 내가 초등 4-5학년 즈음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 한 달에 두 번씩 찾아오는 아저씨가 있다. 난 그 아저씨가 제일 무서웠다. 쌀집 주인아저씨다. 쌀 외상값을 받으러 오는 분이었다. 무서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외상으로라도 쌀을 안 줄까 봐 그랬을까? 그렇게 굶게 될까 봐 그랬을까? 아니었다.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들을까 걱정이었고, 집 앞 골목을 지나가는 이웃 주민이 들을까 봐 겁났다. '쌀이 떨어져서 밥을 못 먹을까'보다 '누군가 이 상황을 알게 될지'가 더 무서웠다.  '혹시라도 학교 친구 중 누군가 알게 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다.


 초등 5학년 때 같은 반에 고아원에서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난 그 친구 이름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 물론 여기서 실명을 거론할 필요는 없지만.
 당시에 초등교육은 의무교육이었다. 하지만 육성회비라는 이름으로 돈을 내는 항목이 있었다. 얼마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지만 큰돈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학부모들이 내는 일종의 학부모 회비 정도의 개념이 아닌가 싶었다. 구글에서 검색을 해보니 '자녀교육을 위한 학부모의 자진 협찬 형식으로 마련하는 회비'라고 되어 있다. 대략 한 달에 1,000원에서 많게는 5,000원 정도. '법적으론 뇌물죄에 해당하는 불법이지만, 그래도 걷었던 부정한 돈'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쌀 외상값이 쌓여 있는 그런 형편이었다. 그래서 육성회비를 내지 못했다.
 우리 반에서 육성회비를 못 낸 사람은 나와 고아원에서 다니는 친구 2명이었다. 학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단 2명만 육성회비를 못 냈다. 그런데 문제는 육성회비를 내지 않은 사람을 담임교사가 불러 내어서 매질을 했다. 요즘 같으면 구속감이다. 하지만 그 교사는 매일 불러내어서 때렸다. 나와 고아원 친구 두 명의 아이, 고작 12살의 어린아이 둘을 말이다. - 난 그 교사의 이름을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심지어 나는 그렇다 쳐도 고아원에서 다니는 아이는 그걸 내지 않는 게 정상 아니었던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진짜로 그 돈을 내지 못한 사람은 내가 유일했던 셈이다. 난 매일같이 그렇게 맞았지만 맞는 아픔보다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 더 무서웠다. 그랬다. 난 불쌍한 아이였고, 가난하고 엄마가 없는 아이였다.


 난 여전히 가난이 무섭다. 배를 곯거나 내가 얻고 싶은 것을 못 얻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누군가 그렇게 하든 나 스스로 그렇게 하든 수치스럽게 되는 것이 무섭다.

 당신은 어떤가? 가난은 그저 불편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 부끄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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